승한 스님
북한산 중흥사 총무

새벽 예불 뒤 명상을 한다.
가슴으로 세 번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우주 삼라만상이 가슴으로 다 들어온다.
이번엔 배로 숨을 쉰다.
중심이 배로 내려간다.
열까지 센다.
숨결이 느껴진다.
코끝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결이 잔잔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나는 사라지고 숨 쉬는 놈만 남아있다.
코끝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만 살아있다.
숨을 쉬는 배만 살아있다.
숨 쉬는 배가 말한다.

‘내 몸은 무상한 것이다.
내 몸은 무상한 것이다.
한때 생겨난 것이다.
찰라생 찰라멸하는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숨 쉬는 배가 또 말한다.

‘이 느낌은 무상한 것이다.
이 느낌은 무상한 것이다.
한때 생겨난 것이다.
찰라생 찰라멸하는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숨 쉬는 배가 또 말한다.

‘이 마음은 무상한 것이다.
이 마음은 무상한 것이다.
한때 생겨난 것이다.
찰라생 찰라멸하는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숨 쉬는 배가 또 말한다.

‘이 상황들은 무상한 것이다.
이 상황들은 무상한 것이다.
한때 생겨난 것이다.
찰라생 찰라멸하는 것이다’

어느덧 쉼 쉬는 놈도 사라지고, 숨도 사라지고, 배도 사라졌다.
텅 빈 충만.

문득, 아침 새소리가 충만을 깨운다.
법당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새들이 뛰어다닌다.
가볍다.
새들은 무슨 신을 신고 살까?
나는 무슨 신을 신고 살까?
동시 한 편을 쓴다.

새들은
무슨 신을 신고 살까?
높고 푸른 하늘
종종종
잘도 걸어가네.

강물은
무슨 신을 신고 살까?
넓고 푸른 들판
잘잘잘
잘도 흘러가네.

바람은
무슨 신을 신고 살까?
높고 험한 산
휘이잉
잘도 넘어가네.

마음으로 맑은 햇살 한 줌이 흘러든다.
새들을 따라 맑은 마음들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폴짝폴짝 건너간다.
다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