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 23일 서거했다. 주말 아침 TV자막을 통해 처음 전해진 비보는 나라 전체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세계적으로도 긴급뉴스로 타전됐다. 더 더욱 충격적인 것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대통령을 지낸 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건국 이후 처음이다.

어느 인생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도 파란만장한 영욕의 삶을 살다갔다. 어린 시절 어렵게 자랐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필자가 노 전 대통령을 알게 된 것은 13대 국회 출입기자를 하면서부터다. 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5공 실세인 허삼수 의원을 누르고 국회에 처음 등단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다. 이어 5공 청문회에서 속시원하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13대 국회는 출발 당시 여소야대 의석 분포를 보였는데, 90년 3당 합당이 되면서 여대야소로 정국판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을 거부하고 이기택, 김정길 전의원 등과 민주당을 이끌었다. 말이 당이지 의원수가 10명도 안될 정도로 적었기 때문에 기자들은 꼬마 민주당이라고 불렀다. 당시 야당 담당기자는 여의도 백화점에 위치한 평민당을 주 출입처로 삼고, 꼬마 민주당은 현안이 있을 때 챙기는 정도였는데 기사반영도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다. 5공 청문회 스타 의원의 이미지와는 달리 정국 흐름에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시기였다. 당시에는 5당 합당을 둘러싸고 YS-DJ간의 기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는데, 92년 대선을 앞둔 전초전이나 다름없었다.

꼬마 민주당에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던 노무현은 98년 DJ깃발 아래 종로에 도전해 금배지를 달았다. 그 사이 꼬마 민주당은 평민당과 합당해 마포당사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평민당은 이에 앞서 재야 민주연합측을 끌어들여 신민당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있었다.
노무현은 2000년 지역주의 극복을 내세우면서 정치적 고향 부산에 출마했다. 하지만 허태열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이 패배는 그 이후 엄청난 바람을 몰고 왔다. 영호남 지역주의에 지친 표심을 파고들면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되고 급기야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파란만장한 이력은 계속된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열린우리당 지지발언 등 선거법 위반 혐의를 걸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지만, 되레 메가톤급 역풍을 불렀고 결국 제3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의회 독주에 제동을 걸며 과반을 차지하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 대북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무모하리만큼 진행된 실험은 그칠 줄 몰랐고, 청와대발 충격 발언은 민심이반과 열린우리당 지지율의 급전직하로 이어지면서 국정난맥상을 초래하는 자충수가 되었다.
거듭된 재보선의 패배로 의회 과반을 잃고, 뿌리째 흔들리던 열린우리당은 결국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참패했다. 사실상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지만 당시 박근혜 대표에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대통령 권좌에 있는 동안에도 바람 잘 날이 없었지만, 퇴임 이후에도 박연차 뇌물게이트로노 전 대통령은 거의 유일한 자산이었던 도덕성마저 바닥을 보이면서 사지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도 말은 아끼면서도 명분과 원칙을 중시하는 노 전 대통령이 망신주기식으로 진행된 수사과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만, 정신질환 병력이 없는 노 전 대통령의 자살배경과 정신상태를 예단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의 성격이나 행적으로 볼 때 그동안의 수사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데 대체적인 의견을 같이한다. 공개된 짧은 유서에도 너무라는 단어가 3번 정도 반복되는 점을 볼 때 심적 고통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검찰이 구속여부를 결정할 시점이 다가오면서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정신과 전문의들의 분석이다. 즉 자신은 부정부패를 타파하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정권을 만들었는데 그러한 자신의 노력이 무너지면서 심적 타격을 크게 받았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여기에다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배경도 얽힌다는 분석이다. 즉 유서 내용을 보면 주위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딸에게로 수사가 집중되는 등 가장 사랑하는 자녀까지 어려움을 겪게 되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 같다는 시각이다. 이러한 분석을 종합해 보면,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고, 자신의 사회적-도덕적 위상이 와해되면서 자살을 하는 무통제-무규범적 자살(Anomic suicide)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연예인 자살사건 등으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사건이 또 다른 사회문제를 몰고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OECD국가 가운데 한국의 자살사망률이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국내 관련통계도 자살사망률이 평균사망률 보다 높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는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지지그룹이 적지 않기 때문에 자칫 추종자살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회적 우려와 당부가 높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생명이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깨달음의 궁극적인 목적도 생명을 아름답게 하는 것임을 말씀하셨다. 쌍유타 니까야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 한 구절을 소개한다.

“마음 먹고 곳곳을 헤매고 다녀봐도 자기 자신 보다 소중한 사람은 어디에서든 단 하나도 찾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각기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헤치면 안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천주교 영세를 받았지만, 어머님의 영향을 받아 불교와 친숙하다고 말했다. ??어머님은 부처님을 모셔놓고 매일 불경을 독경하셔서 그 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극락왕생을 부처님 전에 간절히 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