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호 철학박사·동국대불교학과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자에게는 한 순간도 길듯이,
올바른 진리를 모르는 자에게
생사의 길은 멀고 멀어라.
이 경구는 오랫동안 널리 애송되어 온 < 법구경> 의 한 게송이다. 여기‘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고’는 다름아닌 올바른 진리를 알지 못해 어두운 긴 긴 밤을 정처없이 떠도는 우리네 인생의 상황을 의미한다. 이를 <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 >에서‘무명장야(無明長夜)의 중생’이라 하는 데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광야를 지나다가 갑자기 나타난 사나운 코끼리에 쫓겨 급히 달아나면서 피할 곳을 찾았다. 이 때 한 오래된 우물을 발견하고 그 곁의 나무에서 뻗은 넝쿨을 잡고 내려가 우물에 몸을 숨겼다. 그 때 마침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그 넝쿨을 번갈아 갉고 있었고, 그 우물 사방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를 물려하였으며, 우물 밑에는 독룡(毒龍)이 있었다. 그는 그 독사가 몹시 두려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무넝쿨이 끊어질까 걱정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무에는 벌꿀이 있어서 다섯 방울씩 입에 떨어지고 나무가 흔들리자 벌이 흩어져 내려와 그를 쏘았으며, 또 들에서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우고 있었다.”
여기서 부처님은 광야란 무명장야 즉‘끝없는 무명(無明)의 긴 밤’에 비유하고, 사람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비유한 것이다. 우물은 생사에, 우물에 드리운 나무 넝쿨은 목숨에,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는 밤과 낮에 비유한 것이다. 나무 넝쿨을 갉는 것은 찰나찰나로 목숨이 줄어드는 것에 그리고 네 마리 독사는 4대(大)에, 벌꿀은 5욕(欲)에 각각 비유한 것이다.
벌은 삿된 소견에, 불은 늙음과 병에, 독룡은 죽음에 또한 비유한 것이다.
우리는 이 대명천지(大明天地)에 무슨 무명장야(無明長夜)라고 반론할 수 있다. 하지만 지혜 있는 자, 진리를 깨우친 깨달은 자의 안목에 의하면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범부중생은 모두‘밝음이 없는 어두운 긴 밤’동안 정처없이 여기저기 헤매며 윤회하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명은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초기불교 이래로 중생이 생사윤회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때문에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이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인데, 무명의 구체적인 내용, 무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부처님 가르침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생사윤회의 고통 속에 밝은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다름아닌 무명의 번뇌에 가려있다. 그렇기에 무명은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도 쓰이며 경전에서“모든 번뇌 가운데 가장 큰 번뇌는 무명이다”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일반적으로 무명은 탐진치(貪瞋痴) 삼독 가운데 마지막‘치’(무지, 몽매, 어리석음)의 동의어로 경전에 따라서는 탐진치를 열거할 때‘치’대신에‘무명’으로 바꾸어 설해지기도 한다. 눈이 가려지고 어리석어‘있는 그대로 여실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무명이라 한다. 좀 더 교리적인 설명으로 무명은 삼법인과 사성제의 진실에 어두운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5온의 발생과 소멸에 대한 무지, 4전도((顚倒)에 대한 무지를 말한다. 4전도란 무상한 것을 항상한 것으로, 괴로운 것을 즐거운 것으로, 부정(不淨)한 것을 정(淨)한 것으로, 아(我)가 없는 것을 자아라고 아는 것이다.
특히 무명은 12연기법에 있어 첫 번째로 제시되는데 이 때 무명은 사성제법에 대한 밝은 봄이나 앎이 없는 이유 때문이다.
초기경전에서 나타난 무명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정의가 시설된 경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무명이라고 말들 하는데, 무명이란 어떤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이은 답변은“무명이라는 것은 과거에 대하여 앎이 없고[無知], 미래에 대하여 앎이 없으며, 과거·미래·현재에 대하여 앎이 없고, 불·법·승 삼보에 대하여 앎이 없으며, 괴로움[苦]·괴로움의 발생[集]·괴로움의 소멸[滅]·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에 대하여 앎이 없고 선(善)·불선(不善)·무기(無記)에 대하여 앎이 없으며, 안에 대해서도 앎이 없고 밖에 대해서도 앎이 없으며, 혹은 이러저러한 일에 대하여 앎이 없고 어둡고 막히면, 이것을 무명이라고 한다”고 나타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무명이란 세상의 일반적인 기술이나 학문 등의 앎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생의 문제에 있어 궁극적인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올바른 세계관이나 인생관 그리고 가치관이 없는 것을 말함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선악과 선악의 과보를 그리고 삼보에 대한 앎이나 연기와 사성제의 이치를 모르는 것을 무명이라 하고 있다.
무명은 12연기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일으키는 첫 번째 이유로 강조된다. 우리의 삶을 행복하지 않게 하는 중요한 이유로 제시된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비유적으로“무명이란 마치 석가래가 대들보에 의지하듯이 모든 좋지 않는 것들이 무명에 뿌리하고 있으며, 무명에 이른다. 무명으로 결합하여 모든 좋지 않는 것으로 나아간다”라고 하여 무명이 우리 인생에 미치는 큰 영향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무명을 병에 비유하기도 한다. 곧 무명이 사람을 다치고 상하게 하는 것을 병이 사람을 해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이에 비해 무명이 사라진 명(明)의 상태인 지혜, 또는 그 지혜의 내용은 병을 치유하는 약에 비유된다. <성읍경> 에서는 무명에서 밝은 명(明)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광야를 헤매는 사람의 비유로 설명한다. 즉 들판을 헤매다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열반·해탈의 길을 만나는 것을 마치 오래된 왕궁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로 비유한다. 이러한 초기경전의 가르침을 잘 정리한 유명한 수행서인『청정도론』또한 무명의 중생을 좀 더 실감나게 정리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 (모든 중생이) 무명에 의해 눈이 어두운 것은 마치 봉사가 땅을 걸을 때 길이건 길이 아니건, 솟아올랐건 패인 곳이건, 편편하건 편편하지 않건 막무가내로 걷는 것과 같이 복과 덕이 있는 행위도 하고 그렇지 않는 행위도 하게 된다. 그래서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태어나면서 봉사인 사람을 이끌어줄 사람이 없어 어떤 경우는 길로 가고 어떤 경우는 길이 아닌 곳으로 가듯이 윤회하는 우매한 사람은 이끌어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복과 덕이 있는 행위도 하고 그렇지 않는 행위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치를 참되게 알고 진리를 통찰할 때 무명은 그치고 온전하게 다닐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 법으로 무명을 제거하여 밝고 참된 행복의 세계를 여는 가르침으로 8정도가 제기획 / 주요대선후보 불교공약 점검시되고 닦는 것이 권장된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불교의 궁극적 경지는 바로 무명을 제거 하는 것에 의해 성취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일치한다. 생사윤회의 고통이 있게 하는 것은 무명이고, 생사윤회의 고통을 끊게 하는 것은 반야지혜이고 명(明)이다. 무명으로 모든 조작·왜곡·곡해·동요·혼란·번민 등이 일어난다. 무명과 명은 서로 대비되는 것으로 밝음이 약해지면 어두움이 짙어지고, 밝아지면 어두움은 사라진다.
즉 무명이라는 어두움은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렇기에 의미심장하게도 부처님은 따로 어두움을 나타내는 말보다는‘밝음’의 말을 중심으로‘밝음이 약해진 또는 없는 상태’로서 무명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희망찬 불기 2552년 새 해를 맞았다. 밝은 해가 뜨면 어두움은 일시에 사라진다. 이를 부처님은 경전에서“무명의 제거는 명이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 이것은 마치‘빛’이 일어나‘어두움’을 사라지게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비유하신다.
그렇기에 12연기의 첫 번째인 무명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 스스로 어두운 조건을 제거해버리는 노력을 한다면 고통이 다한 밝고 행복한 삶을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의 가르침인 것이다. 부디 올해는 모두가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길로, 무명과 번뇌로부터 해탈의 길로, 향하여 다 함께 밝고 빛나는 행복한 삶이 되기를 두 손 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