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현대불교신문 편집국장
일본에는 1200년이나 된 시코쿠 순례길이 있다. 홍법스님이 수행하던 길을 뒷사람들이 따라 걷다보니 순례길이 되었다고 한다. 88개의 천년고찰을 잇는 길인데, 1200km에 이른다고 한다. 제주도보다 10배 정도 큰 시코쿠 섬 전체가 순례길인 것이다. 시코쿠 순례길 중 가파른 산길에 다음과 같은 표지판이 붙어있다고 한다. ‘지금은 이 길밖에 없다. 뚫고 나가는 수밖에.’ ‘힘내세요. 한 발 한 발이 중요.’ ‘서두르지 마세요. 나에 맞는 속도로.’
새해를 시작했다. 동해 바다에 말갛게 몸을 씻고 솟아오른 태양은 찬란했다. 우람하고 우렁찬 백두대간 능선을 덮은 백설은 눈부셨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새해를 찬란하고 눈부심으로 맞이했다.
새해 첫날이라고 하여 어제와 다르진 않다. 인간은 지혜로워 시간의 마디를 만들어 새 출발의 계기를 만들었다. 혹시 길을 잘못 들지나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때로는 길을 잃는다. 이 길이 맞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갈 길을 가늠해보지만, 방향을 도무지 모를 때가 있다. 너무 힘이 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새해는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다. 어느 지점에 방향을 두고 나아갈까.
지난해 3월 법정스님이 입적에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상사에 모여 법정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법정스님은 마지막 가는 길까지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수의도, 관도 만들지 말라하셨다. 장례식 같은 의식도 치르지 말라 하셨다. 후학들은 유언을 받들었다. 대나무 평상 위에 평소 입었던 승복을 수의로 삼아 가셨다. 다비를 앞두고 치른 간단한 의식조차 고인의 뜻을 거스를까 조심스러웠다. 비구 법정은 그렇게 소박하게 가셨다. 새해 새 출발을 하며 법정스님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스님의 가르침을 지남(指南)으로 삼고 싶은 까닭이다. 무소유 그리고 자연이 전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라고 말하던 칼칼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삶의 고비 때마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로 남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일 때문이 아니다. 일의 버거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원만하게 인간관계를 풀지 못할 때인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은 깨달음이다. 무엇이 깨달음인가.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음 후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에게 최초의 설법을 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초전법륜(初傳法輪)으로 부르는데, 이때 한 설법 내용이 사성제(四聖諦)이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이 네 가지 기본적인 진리를 터득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사성제에 불교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고성제란 태어남과 늙어감과 병들고 죽는 것이 모두 고(苦)요, 우울함?슬픔?고통?고뇌?고민?미운 사람과 만나는 것도 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도 고다.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고다. 요컨대 집착의 원인이 되는 다섯 가지 응어리 모두가 고인 것이다. 집성제는 고가 일어나는 원인을 밝힌 것이며, 멸성제는 괴로움이 무명에서 연기한 것이기에 무명의 멸진을 통해 괴로움은 근본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도성제는 고의 소멸로 이끄는 길로서 법을 잘 결택하여 관찰하는 것과 생각할 바와 생각 안할 바를 마음에서 잘 분간하는 것 그리고 네 가지 선한 구업(口業)과 세 가지의 선한 신업(身業), 정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의식주를 구하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물러섬이 없이 마음을 닦는 것과 생각할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 마음을 한 곳에 바르게 집중하는 삼매를 행함은 곧 고의 멸진에 이르는 도이다.<홍사성 주편, 불교상식백과,불교시대사, 457-458쪽>
대승불교에 이르면 공성(空性)의 체득을 강조한다. 즉 ‘나’란 수많은 인연에 의해 맺어진 찰나적인 존재이므로 나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조화로움이 삶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이 가르침은 늘 작동 불량 상태에 빠진다. 너와 나를 나누고, 겨루어 누르겠다는 경쟁심이 발동한다. 당장의 실적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진행과정을 점검한다. 목표치에 이르지 못했을 때에는 질책을 받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일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직업에 회의를 느껴 우울한 날들을 보내기도 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 사표를 내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또 상사의 지시가 부당하거나 부담스럽더라도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이것도 많이 하는 거짓말의 두 번째라고 한다. 오래 전 ‘회사인간’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한 인간의 정체성이 회사라는 조직이 원하는 형태로 바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어쩌랴. 뾰족한 수가 없다. 직장을 떠나서는 생존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니 참는 수밖에. 일과 자신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불가능할까.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많은 직장에서도 일과 개인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요즘 ‘가정친화적 직장’이라는 용어가 나오기도 한다.
시코쿠 순례길의 응원가는 시코쿠에만 있지 않다. 법정스님의 가르침 또한 책에만 있지 않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법당에만 있지 않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하루에도 여러 번 만난다. 구십 넘은 나의 노모는 전화할 때마다 고등학교 다니는 손자에 대한 당부를 빼놓지 않으시는데, “공부하라고 너무 다그치지 말아라. 건강이 최고다. 남 못할 일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 말씀을 얼마나 자주하셨는지, 아이가 학교 갈 때마다 떠오른다. 나에 대해서도 “이기려고만 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는 학교 가는 아이에게 “재미있게 하고 와”라고 말한다.
나는 아마 올해 힘들 때마다, 흔들릴 때마다, 갈 길 몰라 헤매일 때에 시코쿠 산길의 짧은 응원 문구와 승복을 입고 대나무 평상에 누워 떠나시던 법정스님의 모습, 부처님이 이르신 사정제의 가르침,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하여 초심을 늘 되새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