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자 짜티탄튀, 한국 남자 장수진 씨 부부-
고광영
인문정신연구소 네트워커·자유기고가
베트남 댁 짜티탄튀(28세) 씨를 만나러 가는 날, 날씨는 쌀쌀하고 하늘은 흐릿하다. 보통 때 같으면 우울한 느낌마저 들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짜티탄튀 씨가 유난히 눈을 좋아한다는데 함박눈은 아니지만 눈발이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쾌하고 따뜻한 만남이 될 예감이 든다.
전철역에서 7~8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서울 성수동의 한 연립주택. 지하 셋방으로 통하는 쪽문 사이로 보이는 얼굴, 키가 작다. 약 150센티 정도. 피부색이나 골격으로 봐서는 우리와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힘든 좁은 통로를 거쳐 방으로 들어간다. 약간 어둡다. 그러나 또렷하게 보이는 선반 위의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공양물은 사과 2개, 조화 한 송이, 향 한 개비. ‘남편분이 독실한 불교신자이냐고’ 물으니 반쪽짜리 신자라고 웃는다.
“저는 원래부터 불교신자예요. 베트남에 있는 우리 가족 모두 절에 다녀요. 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도 제가 시집 올 때 모셔왔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부처님께 인사하고, 자기 전에 그리고 또 틈틈이 인사해요.”
명색이 불자를 자부하는 나, 한 방 되게 먹는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농촌으로 이사하는 것도 어지간한 결심이 아니고는 힘든데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과 결혼하러 온 그 배짱과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다 싶기는 해요. 하지만 그때, 2007년에는 별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주변에 한국 사람과 결혼한 사람들도 꽤 있었고,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많이 진출해 있어서 낯설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어요. 한류 붐도 대단했고요. 한국이 동경의 대상이었던 거지요.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그 무엇보다 2세 때문이었어요. 결혼하면 애를 낳을 것 아니에요. 이왕이면 삶의 질이 좋은 데서 낳아서 제대로 키우고 싶었어요. 제가 학교 선생님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루지를 못했어요. 애들이 공부 잘해서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어디나 차이가 없나보다. 아무리 의지가 굳어도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담담한 표정이다.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하죠. 적응 못해서 힘들게 이룬 가정이 깨진 경우도 적지 않아요. 양쪽 다 문제가 있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좀 더 포용력이 있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한국 사람에게는 이곳이 홈그라운드이고, 외국에서 온 사람들한테는 낯선 타향이잖아요. 한국의 문화, 생활습관에 익숙해질 때까지 느긋하게 지켜봐 줬으면 좋을 텐데…….
한국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너무 급해요. 빨리 한국 사람이 되라, 한국말도 빨리 배우고, 된장·김치도 먹으라고 채근이 심해요. 말이 쉽지 외국인에게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음식을 예로 들면 한국 사람들도 베트남 음식 잘 못 먹어요. 당연한 거죠. 조금만 이해하고 기다려주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너무 서두르니까 갈등이 생겨요. 생각해보면 아주 사소한 것인데 이것이 쌓이다 보면 큰 문제가 되요.
저의 경우는 다행히 그런 일이 없어요. 시댁에서 잘 이해해 주고, 얼마 전까지는 시집 안 간 시누이하고 같이 살았어요. 지금도 사이좋게 지내요. 아이들 아빠도 착하고 성실하게 일 열심히 하고……. 집밖에 나가면 문제가 좀 있기는 해요. 생김새는 한국 사람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한국말 잘 알아듣지 못하고 말도 잘 하지 못하니까 이상하게 봐요. 베트남에서 온 것을 알고는 얕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제가 밖에서 베트남 말 하는 거 싫어해요. 여기는 한국인데 왜 베트남 말 하냐고 하기도 하고. 지금은 좀 이해하는 것 같아요. 집에서는 간단한 것은 베트남 어로 말하기도 해요.”
이때 손님이 왔다는 전갈을 받은 남편 장수진 씨(42세)가 곧 오겠다고 한다. 남편이 오기 전에 흉 좀 보라고 꼬드겨 본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 술친구가 너무 많아요. 신혼 초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밤늦게까지 마시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애들 아빠는 친구들하고 술 한 잔 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그러고. 그래서 부부싸움도 했어요. 바가지를 많이 긁어서인지 요즘은 많이 자제하는 편이에요.”
남편 장수진 씨가 도착했다.
“결혼이 많이 늦었네요.”
“작은 금형공장을 하고 있는데 3D 업종이다 보니 일손도 달리고 먹고 살기 바빠서 혼기를 놓쳤어요. 그나마 결혼을 서두른 것도 아버지 때문이죠. 경북 예천에 사시는데 몇 년 전에 다리를 크게 다치셨어요.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혼자 계시다 보니까 마음도 약해지셔서  불안해하시고, 저도 불효자라는 생각에다가 처량한 느낌마저 들더군요. 결혼해야겠다는 절박함을 느꼈죠.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알음알음으로 저분(두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고 아직 한국말이 서툰 짜티탄튀 씨를 돕기 위해 이날도 동행한 보살님)을 만났어요. 지금도 가끔 우리 집을 방문해서 어떻게 사는지 살펴보고, 상담도 해주는 고마운 분이세요.
집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첫 대면인 나를 보고 ‘씩’ 웃는데 충격이랄까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얼굴에서 광채가 났어요. 그 순간 ‘이 사람이다’ 하는 확신이 섰어요.”
아무리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해도 살다보면 갈등이랄까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갈등이나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있었죠. 예를 들면 밖에 나갈 때도 양말을 잘 신지 않는다든지, 더운 나라 출신이라 추위에 약해서인지 애들한테 옷을 너무 많이 껴입히곤 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이런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 이해해요. 사실 같은 나라, 한 식구도 습관이나 기호가 다 다르잖아요. 자기만 일방적으로 옳다고 주장하고, 자기만 따르라고 하면  불화만 있을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요. 다르니까 오히려 좋은 점도 많아요. 자기가 미처 몰랐던 단점은 물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삶이 더 풍부해진다는 거죠.
이 사람한테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쉬는 날 정색을 하고 말해요. ‘왜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도 잘하지 않느냐, 왜 자주 찾아뵙지 않느냐’. 정말 놀랐고 고마웠어요. 한번은 내가 처갓집에 돈 좀 부쳐주자고 했어요. 그때 이 사람이 ‘그럴 필요 없다.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며 ??아끼고 저축해서 애들 교육 제대로 시키자’고 말했어요. 마음이 참 바르고 곱잖아요? 아이들이 생기기 전에는 놀면 뭐하냐며 한 푼이라도 번다고 공장에 다니기도 했어요.”
가만히 웃고만 있던 짜티탄튀 씨가 끼어든다.
“우리 애들 참 예뻐요. 큰딸 나영이는 네 살인데 뽀로롱 노래 잘해요. 아들 대영이는 두 살인데 너무 귀여워요.”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묻어난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것만은 사람들에게 꼭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
“국제 결혼한 사람들이 이 땅에서 한국 사람으로 잘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녀들이 학교나 사회에서 왕따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달라서 불편한 것보다 다르니까 더 행복할 수 있어요.”
길을 나서는데 로마시대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네
우리 또한 사랑에 굴복할 수밖에 없으리
이를 ‘노력은 모든 것을 이긴다.’라고 살짝 패러디 해본다. 부디 힘내시길.
하늘은 흐리지만 마음은 쾌쾌청청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