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필
한국일보 기자
또 해(年)가 저뭅니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팔락이게 하는 겨울의 찬바람에도 거리의 인파들은, 예전만큼 흥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해의 마지막 빨간 날을 함께 보낼 좋은 이와의 따듯한 시간과 오래 기억될 새로운 추억에의 기대로 물결처럼 일렁입니다.
이즈음 사람들은 펼쳐 들었던 일과 공간을 정돈하고, 이런저런 모임들을 통해 알고 지내온 이웃과 동료들을 챙기고, 또 특별히 아끼는 이들과 조금은 은밀하고 배타적인 시간을 갖고자 궁리하게 됩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과 그와 다르지 않을 내일이 일상으로 쌓여갈 따름임을 겪어 알면서도, 막연한, 그리고 막연해서 더 애틋한 기대들이 마치 달(月)의 인력처럼 마음들을 끌어당겨 이렇듯 출렁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인력이 극대화하는 연말은, 그래서 얼마간은 감상(感傷)에 젖어도 좋을 것 같은, 그런 때입니다. 
하지만 연말은, 그 일렁이는 표면 아래로 내년에 ‘내’가 앉을 자리의 높이와 ‘우리’에게 주어질 재화의 부피를 둘러싼 어지러운 다툼의 해류들이 부딪치고 꺾이고 소용돌이치는 때이기도 합니다.
제가 일하는 신문사에는 벌써 각 기관ㆍ단체ㆍ회사의 인사이동 자료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제는 짐을 챙겨 떠나야 할 전임자의 지워진 이름 위에 승진 인사의 명단이 덮여 발표되고, 신규 채용인사의 부피만큼 밀려난 이들의 이름들이 차곡차곡 쌓일 것입니다.
예산도 마찬가지지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듯 몸싸움의 추태까지 부려가며 국회 -엄밀히 말하자면 여당-가 저지른 내년 예산안 날치기 통과는 상징적인 예일 것입니다. 무릇 모든 승패는 긴 시간의 과정이지만, 그 결과를 가르는 것은 대개 이맘때입니다. 그러고 보면 연말은 참 가혹한 시기이고, 인간의 편협과 옹졸과 욕심이 끝 간 데 없이 치솟아 표면으로 드러나는, 소란스러운 때이기도 합니다.
5년 남짓 전에 제 선배 한 분이 전남 해남의 바닷가 사찰로 송년 산사체험을 다녀왔다며 손바닥에 덮일 만한 크기로 동글동글 잘 마모된 돌 하나를 제게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뭐냐고 묻자, 그의 대답.
“보면 몰라? 돌이야.”
“웬 돌이냐고 묻는 거잖아요?”
“누름돌. 마음을 누르는 돌…. 바닷가에서 주워왔어.”
흑요석처럼 까만 바탕에 군데군데 희끗희끗 잿빛 무늬가 박힌 그 돌의 질감이 좋아서, 저는 책상 위에 얹어두고 서진(書鎭)으로 쓰다가, 지난 가을 풋고추간장장아찌를 담그면서 고추가 장 속에 푹 잠기도록 누르는 용도로 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마음을 누르는 데는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돌을 쓰다듬으면 왠지 모를 적막감이 번지는 느낌은 서너 차례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저는 2박3일 일정으로 충남 공주의 전통불교문화원이라는 데를 다녀왔습니다. 강연을 듣자는 계획도, 뭔가를 체험하겠다는 뜻도 없이, 그냥 조용히 쉬고 싶다는 바람에서였습니다. 태화산 자락의 깊고 볕 좋은 자리에 널찍하게 앉은 문화원은 과연 고요했습니다. 바람에 맞서지 않으려는 듯 나지막하게 옹기종기 앉은 건물들과 너른 공터, 불교와 전통의 기품을 넉넉히 지니면서 소박하고 겸손하게 꾸민 툇마루와 방, 길, 그리고 정갈한 음식들…. 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적막이었습니다. 겨울이 깊어 산새 울음소리조차 드물던 그 곳에서 저는 모처럼 아주 좋은 잠과 휴식을 누릴 수 있었고, 별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불순물 없이 제 생각에 젖어들 수 있었습니다. 요컨대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낮에는 마곡사 경내를 걷고 부처님께 절 올리고, 태화산 소나무 숲길을 따라 꽤 긴 등산도 했습니다. 솔잎이 해를 거듭하며 쌓여 곱게 부식한 위에 또 새로운 솔잎이 떨어져 쌓인 어떤 길은, 솔잎융단길이라는 이름처럼 융단을 깔아둔 것 같아서 제 발자국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고요한 적막에 휩싸여 걸으면서 저는 선배가 건넨 그 누름돌을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가 해남의 절에서, 그 송년의 바닷가에서 경험하고 온 것이 바로 이 고요와 적막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돌은 고요의 상징이었을까. 유기물 무기물 할 것 없이 쌓이고 쌓인 것들을 단단하게 다지고 곱게 다듬어놓은 시간의 흔적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솔잎융단길, 이 고요, 이 바람이 그 돌의 다른 형상은 아닐까. 마음을 누르는 것은 굳이 특정의 형상을 지닐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침묵 속에 저의 태화산 겨울 산행은 이어졌습니다. 원로시인 김종길 님이 어느 시에서 “시(詩) 삼백을 통틀어 공자가 생각한 그 한 마디”라고 했던 ‘사무사(思無邪)’, 곧 사특함이 없는 생각의 “천진스러운 잔치”가 바로 산행의 묘미였노라고 자랑하고 싶어지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늦은 밤 문화원 선(禪)체험 수련생들 틈에 끼어 서강대 서명원 신부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는 간화선 수행의 의미를 설했는데, 공부가 짧은 저는 그의 강연을 충실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기억에 담아온 한 구절은 있습니다.
“(간화선이란 한 마디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나의 시야를 넓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서 신부는 불어를 모국어로 쓰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신부가 된 뒤 불교철학으로 학위를 받은 불교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선이란 다른 시선들을 지님으로써 시야를 넓히는 것이라는 서신부의 말은, 혈통과 신앙과 신분이 길항하는 경계를 따라가며 그 경계를 넓혀 온 그의 생애의 지혜가 불교철학적 지식과 선 체험의 깊이로 만나 여문 말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생사윤회의 바퀴를 돌리는 것이 집착이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어 남기는 것이 곧 업(業)”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1953년생인 그는, 그러면서 “제가 살아가는 이 현실에 충실하면서 홀가분하게 떠남을 준비하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 신부의 평온한 어조와 표정이 저를 비롯해 듣는 이들의 마음까지 홀가분하게 해주는 듯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마음(집착)을 오래 슬기롭게 잘 눌러온 이들의 표정이 저러하리라’ 생각하며, 잠깐 그를 부러워했습니다.
되돌아온 서울의 연말은 여전히 들떠 있고 소란스럽습니다. 그 들뜸과 소란 속으로 언뜻언뜻 스며드는 감상의 시간도 그리 낯설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현실에 충실하되 언제든 놓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모순의 길, 곧 선의 길이 또 어쩌면 우리들 삶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결국 서신부의 말도 세상은 모순된 것들이 모순이라며 서로를 배척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서로를 감싸 안을 때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게 감싸 안는 품이 넓어지고 깊어져 문득 더 싸안을 것이 없어지는 순간, 품의 안과 바깥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을 서신부는 집착 너머, 윤회 너머의 경지라 했던 것인가 봅니다.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지닌 품이란 펼칠수록 넓어지고 품을수록 무한히 깊어지는 것인가 봅니다.
겨울 숲처럼, 부처님 품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