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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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적인 내면이 절실해진 시대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와호장룡은 무술 영화지만 선(禪)적인 깨달음을 주는 영화다. 와호장룡의 한자적 의미는 웅크린 호랑이와 숨어있는 용을 말한다. 진짜 고수는 밖에 나와 설치지 않고 숨어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이렇게 설쳐대는 내 감정과 마음이 아닌 내 안의 부처야말로 나의 주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한 와호장룡은 무엇이 진정으로 강한 것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칼이나 육체적인 힘보다 더욱 더 강한 것은 마음이요, 유보다 강한 것은 무이다. 힘보다 강한 것은 부드러움이다. 결국 와호장룡은 선과 도가의 사상을 영상에 담아냈다.
왕두루의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리안 감독이 연출했고, 주윤발과 양자경, 장쯔이, 장전 등 호화배우들이 화려한 무예를 선보였다.
19세기 청조 말엽 혼란기의 중국. 당대 최고의 문파인 무당파의 마지막 무사 리무바이(주윤발 분)는 뛰어난 무공을 소유한 여무사 수련(양자경 분)과 평생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사부가 자객 푸른 여우에게 목숨을 잃자, 강호를 떠날 결심으로 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보검 청명검을 수련에게 맡긴다.
수련은 무당파와 인연이 깊은 베이징의 호족 페이러에게 청명검을 전해주려던 자리에서, 고관 옥대인의 딸 용(장지이 분)과 첫만남을 갖는다. 강호의 삶을 동경하며 용은 끊임없는 정략결혼의 강요 속에서, 자신을 납치했다 풀어주며 ‘언젠가 꼭 다시 데려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마적단 두목 호(장진 분)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호가 찾아왔을 때, 용은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모가 정한 결혼을 앞둔 용에게 사막에서 인연을 맺은 호가 찾아온다. 소호는 용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하지만 거절당하자, 결혼식 날 용이 자신의 여자라고 외치며 소동을 일으킨다. 용은 결국 결혼식을 치르지 못하고 달아난다. 강호에 나선 용은 청명검을 가지고 마음껏 무술 실력을 과시한다.
한편 정체 모를 자객이 청명검에 손을 대고, 수련은 범인의 뒤를 쫓아 결투를 벌이지만, 결국 검을 놓치고 만다. 그 사건의 조사를 위해 파견된 수련은 용을 의심하게 되고, 실제로 용의 유모로 위장한 푸른 여우에게서 대단한 무공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련과 함께 청명검을 찾아 나선 리무바이는 용이 자신의 무술을 보이고자 보검을 훔쳤으며, 그녀가 무당파의 무공을 전수받을 수제자라는 것을 직감한다. 용을 찾아 나선 리무바이와 수련은 푸른 여우와 대결하고, 리무바이는 푸른여우를 죽여 스승의 원수를 갚지만 자신도 독침을 맞는다. 리무바이는 수련의 품에서 평생 그녀를 사랑했노라 고백하면서 숨을 거둔다.
이 영화는 중국 본토에선 흥행이 완벽히 실패해버렸지만, 정작 서양에선 동양미의 극치를 보인 영화로 최고의 찬사를 받고,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에서 개봉됐을 때 <굿모닝 아메리카>의 영화평론가 조엘 시겔은 자신의 리뷰에서 “첫 번째 결투 장면이 끝났을 때, 방을 꽉 메운 고집쟁이 평론가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들의 펜을 떨어뜨린 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런 광경은 정말 처음이었다.”고 시사회 풍경을 전하고,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아름다운 영화들 중 하나”라고 칭찬했다.
와호장룡의 어떤 ‘동양적인 것’들이 서양인들을 감동으로 몰아넣었을까. 와호장룡의 등장인물을 보면 음양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요한 내면의 소유자이자 무림의 고수이면서도 자신을 결코 드러내는 법이 없는 리무바이는 음의 상징이다. 사랑이란 음양의 조화다. 한 사람이 소극적이면 다른 사람이라도 적극적이어야 무슨 사건이 일어나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통속적인 사랑 방정식이 와호장룡엔 없다. 리무바이가 사랑한 수련 또한 음적인 여성이다. 좋고 싫은 것을 내색하지 않은 전통 동양의 여성이다. 그녀 역시 무술의 고수이지만 함부로 까불지도 않는다. 둘 다 음적이니 그들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다. 하지만 겉으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육체적인 사랑이 결국 허무의 낙망으로 끝나는데 반해 이들의 사랑은 깊이 모를 심연으로 안내한다.
리무바이와 수련과 달리 용과 호는 둘 다 양이다. 용도 천방지축이다. 마적단 두목 호도 자유분방하다. 둘 다 구속을 싫어하고, 무엇이든 안에 담아두지 않는다. 둘 다 양이니 만큼 이들의 사랑도 결국 이뤄지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를 본 이들은 리무바이와 용이 사랑하는 것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리무바이는 고수로서 하수인 용에 대한 연민으로 그를 이끌어 줄 뿐이다.
와호장룡에선 자신의 내면을 비춰줄 호수 뿐 아니라 유연함의 상징인 대나무에서 무예가 백미다. 한 폭의 선화(禪畵)다. 대나무는 유연하면서도 잘 부러지지 않는다. 능히 그 부드러움으로 천방지축 강함을 뽐내는 용의 공격을 받아내는 리무바이의 무예는 그야말로 삶의 예술이다.
음양에선 양적인 것도 음적인 것도 최선이나 최악은 아니다. 둘의 조화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모두가 자신을 내보이고,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뿜어내면서 타인과 타 생명을 질식시키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음적인 내면이 더욱 절실해진다.
그래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지 않는 리무바이와 수련의 대응이 돋보인다. 철부지 용이 수련이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면서도 내색조차 못했던 리무바이를 죽게 했을 때조차 수련은 용을 죽이려 들기보다는 화를 내지도 원망의 내색도 하지 않고 이 말만 해준다.
“비록 네가 인생에서 결정한 길이 어느 것일지라도 너 자신에게만은 솔직하거라.”
이 말을 들은 뒤 호와 하룻밤을 보낸 용은 ‘함께 살자’는 호의 청을 거절하고 운해 속에 몸을 던진다. 그것은 자살이라기보다는 삶의 해탈이자 새로운 탄생을 예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을 버리기는커녕 자신을 내보이기 위해 천방지축 날뛰던 용이 그런 운무의 심연 속으로 던지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용이 덤벼들 때 부드러운 리무바이가 했던 말에 따라 용은 모든 것을 벗고 몸뚱이를 던질 수 있었을까. 흔들리는 대나무 위에서 한줄기 바람처럼 사뿐 사뿐 몸을 던지던 리무바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움켜쥐어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오직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야만 우리는 실제적 존재를 진짜 소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