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돈
한의학 박사
원광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
햇살고운한의원 대표 원장
현대의학의 발달사에서 약이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
현대의학은 약학과 서로 보조를 맞추어 발전해 왔고 항생제, 소염진통제, 스테로이드제, 면역억제제 등 병증을 극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약이 개발되면서 인명을 빼앗는 많은 질병을 극복해 왔다.
그 결과 “병은 약으로 고친다”는 쪽으로 의료의 방향이 결정되면서 질병치료에 많은 약물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약에 의존하는 이러한 방법은 병을 고칠 수 없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항생제 소염제 등의 약물이 발달하여 몸에 격렬한 염증이 생길 경우 효능이 강력한 약을 사용하면 즉각적으로 진정된다. 불쾌한 증상이 진정되면 환자들은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의사도 치료가 잘 되었다고 착각해서 그런 증상이 재발하면 또다시 약물을 투약하여 병증을 치료하게 된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약물을 투약하다 보니 약에 대한 내성을 초래하여 이제는 항생제가 전혀 듣지 않는 병까지 생겼다.
항생제는 병원균에 의한 감염증을 치료하는 약물로, 감염 증세에 뛰어난 효능을 보인다. 그러나 항생제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균주들이 살아남거나 돌연변이를 통하여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을 가진 균주들이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점점 더 항생제에 내성이 강해진 병원균들이 생겨나게 되며 이 때문에 치료를 위하여 더 강력한 항생제를 사용하게 되는데, 그러다 결국은 어떤 강력한 항생제에도 저항할 수 있는 박테리아가 생겨나기도 한다. 이를 슈퍼박테리아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항생제의 남용과 오용으로 인한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이 슈퍼박테리아를 퇴치한다고 해도 또 다른 슈퍼박테리아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감기의 경우를 보자.
감기에 걸리면 목이 간질간질하고 콧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리며 결국에는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다 갑자기 열이 오른다. 열이 나는 것은 백혈구 속의 림프구가 감기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감기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몰아내기 위해 몸은 체온을 높인다. 즉 열이 나는 게 아니라 일부러 몸에서 열을 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한을 느끼는 것도 빨리 열을 높이기 위해서 몸이 반응하기 때문이고, 콧물이나 설사도 체내의 바이러스를 몰아내려는 반응이다. 이렇게 바이러스와 싸워 승리가 눈앞에 보이면 열을 높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평소의 체온으로 돌아온다. 열이 있는 때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몸에 열이 날 때, 해열제를 사용하면 몸이 필요로 하고 있는 열이라는 전력을 억지로 빼앗게 되어 그 결과 방어태세가 약해져 감기는 낫기 어려워지고 재발이 잦아진다.
우리 몸에 나타나는 괴로운 증상은 스스로 낫기 위한 치유반응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감기로 열이 나면 해열제를 복용하는 등 증상(치유반응)을 멈추게 하는 것이 치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병을 고치려면 먼저 약을 찾기 전에 환자 자신이 치유반응을 돕는 것이 좋다.
흔히 볼 수 있는 아토피질환도 마찬가지다. 피부로 나타나는 가려움이나 발적 같은 증상은 체내에 정체되어있는 독소를 체외로 배설하려는 자연적인 치유반응인데,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제와 같은 강력한 대증요법을 쓰면 표면적으로 증상이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복적인 약물투약이 치유반응을 억제하기 때문에 항병능력이 떨어져 치료하기 어려워지고 결국에는 진짜 난치병이 되어버린다.
상기한 내용은 약이 필요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약에만 의존해서는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지, 절대로 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거나 병원의 치료를 전부 나쁘다고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증상이 심할 때는 약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병증에 따라서는 단기간에 약을 사용하여 치료를 진행해야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필요 이상의 약물의 오?남용이 오히려 질병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경우나 비일비재하다.
어지간한 병이면 약을 끊어야 병이 낫는 것을 돕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