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한국의 현대시기에 해외 불교 포교에 나선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숭산 행원(崇山行願, 1927~2004) 선사가 꼽힐 것이다. 그는 1966년(당시 40세)에 일본 동경 신주꾸(新宿)에 ‘재일 홍법원’을 개원하여 포교를 시작했다. 숭산 선가가 재일 포교를 하게 된 데에는 기막힌 인연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한일국교정상화 전에 일본군 유골 약 4천여 구가 서울의 초동에 위치한 동국대 기숙사 자리에서 발견된다. 숭산 선사의 주선으로 이 유골이 화계사 명부전으로 옮겨졌고, 국교 정상화 후에 이 유골은 일본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이 사실이 일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로 인해 재일 한인 동포 사회에서 숭산 선사의 이미지는 높아졌고, 마침내는 일본 포교의 길로 이어졌다.
이렇게 일본에 홍법원이 세워지고, 그 후 1969년 홍콩에도 홍법원을 개원하고, 다시 미국·캐나다·폴란드·영국·스페인·브라질·싱가폴 등등 선 센터를 세워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다. 이렇게 한국 불교의 해외 포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그의 활동에 주목하는 사례는 해외에 비해 저조했다.
2. 
그러던 중, 미국에서 활동하는 박성배 교수가 “선의 혁명인가, 선의 변질이가”라는 제목으로 무심이 편집하여 현암사에서 발행한 숭산 선사의 공안집 『온 세상은 한 송이 꽃』(2001)에 대한 서평을 『창작과 비평』(2001년 가을호)에 게재했다. 즉, 박 교수는 숭산의 선사상을 ‘혁명’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변질’로 볼 것인가를 문제 제기한 것이다. 이것은 과연 한국 불교계에서는 숭산의 해외포교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숭산 선사상의 선사상을 혁명적인 측면에서 이렇게 말했다. 즉, “산중에 도피하는 불교가 아니라 장바닥에 뛰어들어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는 불교, 개인의 특수체험이 문제가 아니라 매일의 찰라찰라가 공안이라는 숭산 선사의 혁명적인 외침은 그것만으로도 우리들의 정신을 크게 일깨워 주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그의 선사상을 ‘혁명’의 측면으로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박 교수는, 한편으로는 숭산 선사가 주장한 ‘선의 혁명’이 진정 ‘선의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더 밝혀져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즉, 숭산이 제시한 “오직 모를 뿐, Only don’t know”이 ‘의단疑團’과 ‘이언절려離言絶慮’에 ‘등을 돌린다면’ 그것은 ‘선의 변질’이라는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염려를 표하기도 한다.
3.
숭산의 선사상에 대한 박 교수의 이상과 같은 조망이 국내에 소개된 뒤, 2006년에 동국대 선학과 교수 종호 스님에 의해, 좀 더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박문기 교수는 미국 사회에서 진행되는 간화선의 수행에 초점을 맞추어 몇 명의 선사들의 행적과 간화선을 소개하면서 그 중의 하나로 숭산 선사의 간화선을 분석하고 있다. 종호 스님은 숭산 선사가 간화선만이 아니라 여타의 수행방법도 수용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즉 숭산은 간경, 염불, 진언, 참선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박 교수의 분석은 매우 적절한 분석이라 할 수 있는데, 『선의 나침반-숭산대선사의 가르침』 속에 그런 양상이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종호 스님은 숭산 선사의 간화선에 대해서, 숭산은 공안을 두 ‘형태’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나는 ‘참구용’이고 다른 하나는 ‘점검용’이 그것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화두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가?”, “오직 모를 뿐” 등을 꼽고 있고, ‘점검용’으로는 숭산 선사가 제시한 ‘열 개의 화두’가 그렇다고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화두를 ‘참구용’과 ‘점검용’으로 나누는 것이 숭산 선사의 의도와 부합하는지는 좀 연구해보아야 하고, 만약 종호 스님 자신의 견해라면 더 섬세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4.
그러면 위에서 박성배 교수가 숭산의 선사상에 대해서 염려를 표했던 점, 즉 숭산 선사가 ‘의단疑團’과 ‘이언절려離言絶慮’를 등진다면, 숭산 선사의 선은 ‘변질’이라고 본 점에 대해, 종호 스님은 어떤 입장을 제시하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우리는 종호 스님의 다음과 같은 대답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의심이 오로지 한 덩어리로 뭉쳐져 언제나 계속될 때 ‘의단독로疑團獨露해 타성일편打成一片된 상태가 오매일여寤寐一如로 지속될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전통의 가르침과는 다르다.” 종호 스님의 『보조사상』(2006)에 게재한 「미국의 간화선 수행」이라는 논문에서 위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박성배 교수의 용어대로 ‘선의 변질’은 종호 스님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숭산 선사의 선사상에는 전통과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는 점은 종호 스님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박성배 교수와 종호 스님에 의해 숭산의 선사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견해가 학계에 소개된 뒤, 서강대 종교학과의 최용운 박사에 의해서 종합적인 연구가 2012년 학계에 보고되었다. 「숭산행원의 선사상과 수행론」이라는 논문에서 최용운 박사는 숭산 선사의 선사상을 일본 불교의 수용적 흐름에서 평가해왔던 기존 입장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간화선 전통에서 숭산의 선사상을 자리매김하려는 시각 등 납득할만한 성과를 내었다. 그리하여 숭산 선사의 선사상을 염불도 인정하고 간경도 인정하는 소위 ‘수용적 태도’라는 평가와 더불어, 숭산 선사의 선사상을 ‘통합적 관점’으로 평가한 최용운 박사의 분석은, 이제 학계의 정설이 되어간다고 보아도 좋겠다.
5.
그렇다면 이 글 쓰는 필자의 견해는 어떠한가? 필자는 숭산 선사의 선사상을 알기 위해 중요한 서적인 『선의 나침반 ①·②』(열린원, 2001), 『선학강좌』(이른 아침, 2005), 『世界一花 숭산행원선사전서①·②·③』(세계춘추사, 2000·2001)와 제자 현각 스님이 엮은 『오직 모를 뿐』(물병자리, 1998)과 『부처를 쏴라』(김영사, 2009) 등을 독서하면서, 필자는 숭산 행원 선사의 선사상을 두 방면에서 그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첫째는 .역사적 방면인데, 이 방면에서 보자면 숭산 선사는 불교의 텍스트 속에 등장하는 선사상을 ‘점수선’이라고 이름 붙이고, 텍스트를 초월하는 가르침을 전하려는 달마 선사 제자들의 선사상을 ‘돈오선’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 물론 숭산 선사는 이 둘 사이의 우열의 등급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의 이런 태도는 조사선祖師禪을 여래선如來禪 보다 높이 평가하는 일반 선사들과는 입장을 달리한다.
둘째는 .사상적 방면인데, 이 방면에서 보자면 숭산 선사는 송나라 시대 이후 전개된 다양한 선사상의 근본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자면, 비록 스승과 제자들마다 서로 전승하는 방식에 외형적 차이는 있지만, 그 근본에는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다면, 그는 한국불교 전통으로 평가되는 ‘통합불교’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노력한 선사라고 평가할 수 있다.
통합적 성격이 진한 한국불교의 전통 속에서는 ‘진여의 마음’을 전제前提하고, 그것을 체험할 것을 강조한다. 숭산 선사 역시 이런 전제 위에서, 화두를 관찰하는 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숭산 선사가 고유하게 사용하는 화두의 일종인 “Only don’t know”도 궁극적으로는 ‘진여의 마음’을 체험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화두 관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숭산 선사의 선을 전통에서 벗어난 ‘선의 변질’이라고 평가절하 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숭산 선사가 말하는 “오직 모르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숭산 선사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Only don’t know 오직 모르는 마음’은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이다.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은 허공과 같이 맑다. 허공처럼 맑은 마음은 거울처럼 맑은 마음이다. 맑은 마음을 순간에서 순간으로 유지한다면 우리들은 어디에서나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전통적인 간화선의 입장과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산중이 아닌 저자거리에서 수행을 강조한 점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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