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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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범망경 보살계 연재를 시작하며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월간 《붓다》 독자 여러분, 새해에도 많은 공덕 지으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월간으로 간행되는 잡지 《붓다》를 통해, 회주會主 정우 큰스님의 지도하에 여러분께서 국내는 물론 미국에까지 펼치시는 ‘불사佛事’ 소식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리 속에서 태어난 자녀, 즉 불자佛子로서, 부처님 사업을 대신하시는 여러분들의 공덕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역시 유서 깊은 통도사는 다르구나! 하고 말입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의 불교 역사가 증명하듯이, 통도사는 구하(九河 1872~1965), 경봉(鏡峰 1892~1982), 월하(月下 1915~2003) 노장 스님 등 위대한 선지식을 배출했습니다. 출가 승려들의 교육과 수행은 물론, 구한말 개화기에는 각종 학교와 포교 사업의 선두에 섰던 산문山門이 영축산문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인데, 이곳은 인구 100만 명을 넘긴 기획된 신도시입니다. 이 지역에서 제일 큰 사찰이 여래사如來寺입니다. 시설은 현대적이지만, 그 속에서 운영되는 불사는 오랜 전통의 맥이 있습니다. 저 멀리 신라 시대의 자장율사 이래 통도사의 수행 가풍을 계승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많은 법회가 여기에서 열리는데, 특히 화엄의 교학이나 간화선 수행 관련 법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수행과 교양에 관련된 많은 프로그램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일산의 명소로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누가 저에게 어느 절에 다니면 좋겠냐고 물어오면, 도량이 잘 정비된 산속의 천년고찰을 좋아하면 광탄면 보광사를 추천하고, 시내에서 다니기 쉽고 현대화된 곳을 선호하면 일산 정발산 여래사를 권합니다.


2.
이렇게 전통 있는 통도사에서 발간하는 월간 《붓다》 지면을 통해, 독자님들과 제가 만나게 된 게 벌써 8년이나 됩니다. 2015년 2월호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간은 <선불교>를 소재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2018년 1년간은 <한국불교의 현주소>라는 제목으로, 다시 2019년 1년간은 <생활 속의 불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습니다. 이어서 2020년부터 2023년 12월까지 4년간은 󰡔화엄경󰡕을 소재로, 첫해 1년간은 󰡔화엄경󰡕 앞에 붙어있는 ‘불교 개론’에 해당하는 「현담」을 소개했고, 이듬해 2021년 1월부터 작년 12월까지 3년간은 󰡔화엄경󰡕 본문의 문단을 나누어가며 ‘전체의 대강’을 소개했습니다.
귀한 지면에 글 쓸 기회를 주신 정우 큰스님께 재삼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붓다》 등, 우리나라 불교계의 중요한 잡지 여러 종류를 편집하고 제작 대행하는 <중도기획> 신원식 대표님을 비롯한 편집 디자이너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대승 불교의 입장에 서서 말해 보면, 본인 스스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여 세상을 살아가고, 또 한편으로는 부처님의 말씀을 남에게도 전하여 함께 보살행을 실천하는 게 불자佛子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불사佛事입니다. 저는 비록 글을 쓰는 역할이지만, 통도사의 전법교화 불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올 한해도 노력하겠습니다.


3.
2024년 정월부터는 󰡔범망경梵網經󰡕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범망경󰡕은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권>에는 대승을 신앙하는 불자들이 지켜야 할 계戒로서 중대한 조목 10가지, 그리고 좀 가벼운 조목 48가지를 조목조목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권>은 보살계 수계식의 자료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상권>은 그렇지 못합니다. 본 연재는 <상권>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불교 수행의 방법으로 계·정·혜戒定慧의 ‘3학學’으로 분류하여 접근하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채택되었습니다. 요즈음 말로 바꾸어 설명하면, 공동체 속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잘 지키고 품격 있는 말과 행동 하는 것이 계학戒學입니다. 그리고 정학定學이란 다른 사상이나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불교만의 독특한 수행 방법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제 마음을 관찰하는 공부입니다. 끝으로 혜학慧學은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가기 위한 각종 지혜를 배우는 공부입니다. 올해부터 연재하는 󰡔범망경󰡕은 계학戒學을 주제로 삼는 경전인데, <상권>에는 주로 ‘정’과 ‘혜’에 관한 내용이고, <하권>에서는 주로 ‘계’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 출가하여 행자 생활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아 사미승이 됩니다. 그 후 일정한 교육을 거쳐 년 수가 차면 ‘비구계’를 받아 비구가 됩니다. 그런 다음에 ‘범망경 보살계’를 받기도 하는데,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계는 아닙니다. 선택입니다. ‘사미계’ 또는 ‘비구계’를 지키지 않으면, 종단으로부터 처벌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범망경 보살계’를 어겼다고 해서 종단이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한편, 인도의 성문 승단에서는 ‘보살계’ 수계 자체가 없습니다. ‘보살계’는 대승 불교를 받아들인 중국의 일부 지역이나 조선이나 일본 등에만 있습니다.
출가 스님들이 받는 계戒와 율律에 관한 전통의 율장律藏으로는, 빨리어로 기록된 1종, 한문으로 번역된 5종, 티베트어로 번역된 1종, 이렇게 모두 7종이 전합니다. 참고로 이런 율장들은 ‘금지사항’과 ‘준수사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금지사항’으로는 비구의 경우는 대개 250조가 있는데, 조문별로 주석이 붙어있습니다. 한편, ‘준수사항’은 출가 교단의 생활 규칙인데, 예를 들면 수계, 포살, 안거, 자자, 의식주 등 약 22부류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율장에는 뒷날 수정 보완된 내용이 첨부되어 있는데, 이것을 ‘부수附隨’라 부릅니다. 결국, 율장은 ①금지사상, ②준수사항, ③부수,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편, 250조의 ‘금지사항’은 크게 내용을 나누면 8종이 됩니다. 살인, 도적질, 성행위, 자신의 수행 상태에 대해 거짓을 말하는 것 등 무거운 죄인 첫째의 ‘바라이법波羅夷法’입니다. 이를 범하면 교단에서 파문을 당합니다. 사회로 말하면 사형입니다.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둘째의 13종 ‘승잔법’을 범하면 승려의 권리를 박탈하고 홀로 지내게 합니다. 나아가 일곱째인 ‘중학법衆學法’이 있는데, 일상생활 속에서 행한 불미스러운 짓으로 자신이 반성하면 그것으로 용서되는 작은 잘못도 있습니다. 총 250조의 계 중에서 100조 전후가 ‘중학법’에 속합니다. 마지막 여덟째로 ‘멸쟁법滅諍法’이 있는데 형사소송법 비슷한 것으로, 분쟁 해결을 위한 방법에 관한 내용으로 모두 7종이 있습니다.
이상은 출가자에게만 부여된 ‘250조의 계戒’와 ‘22부류의 율律’의 얼개입니다. 그런데 대승불교권에서는 이러한 ‘계’와 ‘율’은 물론, 이것에 더 보태어 ‘범망경 보살계’를 지키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차차 연재하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4.
독자들도 아시다시피 ‘대승불교’는 서력기원전 1세경부터, 당시 출가자 중심의 부파部派 교단이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정신을 온전하게 발휘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새롭게 생긴 불교 운동입니다. 대불교 운동은 처음에는 재가자들이 시작했지만, 세월이 가면서 대승 운동에 동참하는 천재적인 출가 스님들이 가세하셨습니다. 가세하는 스님들이 많아지면서 대승 불교의 내용은 더욱 풍부해지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대승 ‘경전’이 편집되었고, 그런 경전들에 대한 ‘논서’들도 출현했습니다. 이런 대승 운동의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율장’이 바로 󰡔범망경󰡕입니다. 마침내 대승의 ‘경-율-론’ 3장藏의 형식을 갖추어가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연재를 거듭하면서 설명하겠습니다만, 대승의 특징은 크게 둘입니다. 첫째는 모든 중생에게 공통으로 갖추어진 ‘불성佛性의 체험’, 둘째는 이타적인 실천으로 해석되는 ‘보살행의 실천’, 이 둘입니다.
󰡔범망경󰡕에는 이상의 두 특징이 집약적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상권>은 ‘불성佛性의 체험’ 관련 이론에 주목했고, <하권>은 ‘보살행의 실천’ 관련 행동강령에 집중했습니다. 왜 보살행을 실천해야만 하는가? 이런 실천의 당위성에 대해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있습니다. 󰡔범망경󰡕에 나타나는 계戒의 조목들은 부파불교 교단의 출가자인 성문승聲聞僧과는 달리, 대승의 보살도를 추구하는 불자佛子의 실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금지 조항에 대해서는 중요한 것만 추려서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덕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