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남은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인생에 필요한 필수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룡사와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40년이 되어갑니다.
그 중 통도사에서 주지 소임을 보았고, 종단에서 잠시 일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인데,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가장 오래 머무신 곳이 기원정사로 21년이었고,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신 영 축산 죽림정사에 8년밖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20여 곳이 넘는 사찰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구룡사에서의 40년은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이 마음을 여러 불자들께 전합니다.
지난 18일, 네팔에 다녀왔습니다. 25년 전 룸비니에 세운 학교를 찾아가기 위해서, 룸비니 공항에서부터 환대한 영접을 받으며 오늘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 학교가 없었다면 이 지역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이 문맹률이 높았을 텐데, 그래도 인연을 맺고 학교를 세운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마음으로 이번에도 보람을 느끼며 룸비니에 성지순례도 다녀왔습니다.
지난 여정을 통해 깨달은 것은 인연 속에서 나누는 자비심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사랑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치유와 따뜻함을 전해 줍니다. 자비와 연민심은 단순히 나눔을 넘어 우리의 삶에 깊은 의미를 더해주는 묘약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틱낫한 베트남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대가 꽃과 나무에 물을 줄 때는 그것은 지구 전체에 물을 주는 것이다.
꽃과 나무에 말을 거는 것은 그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무수한 시간 속에서 자연과 함께 존재해 왔다.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와도 같다. 자연으로부터 단절된 삶은 결국 우리들에게 병들게 한다.”
그래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아침저녁으로 축원을 할 때마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는 사대四大를 떠올립니다. 흙, 물, 불, 바람에서 발생하는 병원체만 해도 각각 101가지씩, 총 404가지의 병원체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축원할 때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 사대四大의 조화로움으로 회복되기를 염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그리고 마음의 따뜻함이 이 추운 계절을 녹여주기를 축원해 봅니다.
우리들의 삶은 생生과 사死의 이중 구조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벗어날 수 있을까요?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가, 늙고 병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큰 두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병에 걸려도 무섭고, 늙어가는 것도 두렵고, 그러한 두려움이 반복되다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는 그 감정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죽음을 두렵기 보다는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迴를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맞이할 때는 잘 살아온 인과를 믿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당당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잘 살아온 만큼 반드시 더 나은 세상에 태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과법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치입니다. 그러니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두려워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아쉬움 없이 떠나갈 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채우지 못한 빈자리를 스스로 돌아보고, 그 허전함을 메꾸기 위한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불교는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가운데 특히 법法은 우리에게 고통의 원인을 깨닫게 하며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인생의 괴로움을 극복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침서가 담겨져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 존재합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믿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삶을 더욱 충만하고 당당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내일을 만날 수 없습니다. 어제가 있던 것처럼 내일도 있긴 하지만, 내일을 만나게 되면 그날도 오늘이 됩니다. 우리는 항상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다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당당히 어깨를 펴고 살아가야 합니다. 추운 날씨에 움츠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길 바랍니다. 인생은 어차피 호흡 하나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첫 호흡을 하며 세상에 태어나고, 마지막 숨을 거두며 이 세상을 떠나갑니다. 그 사이의 호흡은 언제나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화를 내거나, 바쁘거나, 조급할 때는 숨이 가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그 호흡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는 인생은 한 호흡의 연속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공자님도 “남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애태우지 말고, 오히려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라.”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큰 가르침입니다. 공자님은 매일 세 가지를 반성했다고 합니다.
첫째, 남을 위해 한 일에 소홀함은 없었는가? 둘째, 벗과 이웃을 대하는 데 신뢰를 잃지는 않았는가? 셋째, 배운 것을 익히지 않고 지나치지는 않았는가? 이 세 가지는 오늘을 살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들과의 인연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맺습니다. 저 역시 40여 년 전, 단수여권 하나를 들고 인도와 네팔의 성지를 순례하며 만났던 이들을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과의 인연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만남의 일입니다.
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에 절에 오는 불자들도 있고, 매일 같이 오는 불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기운입니다.
이들의 정성과 신심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구룡사에서는 많은 불교 전통을 이어가고자 노력했습니다.
화엄경 산림법회를 3년간 백고좌 법회로 봉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노력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자 하는, 불자들과 더 깊은 인연을 맺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법회와 기도는 부처님 품안 따뜻한 가정의 발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불사는 이어져 갈 것입니다.
지난달 네팔과 룸비니를 방문했을 때, 오랜만에 만나는 불자들이 저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는 것을 보며, 이런 인연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세삼 느꼈습니다. 시간이 부족한 그들과의 만남 자체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근본을 잊지 않고 자기 도리를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가며 살고, 사람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삶으로 나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당당하고 떳떳해질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호흡 하나의 소중함을 깨닫고, 만나는 인연과 함께 미소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열반경涅槃經』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위태 로 움이 뒤따르고,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은 궁핍함이 뒤따르며, 사랑하는 사람과는 반드시 이별이 뒤따르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음이 뒤따른다. 햇빛은 어둠을 동반하나니, 이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 몸은 늙고 병들어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을 단순히 죽음으로 이해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밝은 빛이 어둠을 동반하듯 어둠 또한 강한 빛의 일부입니다.
미국을 가기 위해 밤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상공을 지나던 때의 일입니다.
밤의 어두움 속에서도 승무원들은 창문 가리개를 내립니다. 밝은 햇빛은 막기 위해 창문덮개를 내리는 건 이해되지만, 밤에 왜 내릴까 궁금했습니다.
살짝 가리개를 열어보니, 밤의 어둠 속에도 강렬한 어둠이라는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어둠조차도 일종의 강한 빛이었던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빛과 어둠을 둘로 나누어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들숨과 날숨도 나누지 말아야 하며, 사랑과 미움 등, 그 모든 감정 또한 양면도 한 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분노심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며, 욕심은 모든 갈등의 씨앗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제가 구룡사를 떠난다는 말은 어쩌면 떠나지 못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인연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빛과 어둠, 들숨과 날숨, 그리고 사랑과 미움처럼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지기 바랍니다.
그 인연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새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