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섭
대전 보문고등학교 교법사
파라미타청소년협회에서 국제교류 협력 인도 의 료봉사활동을 함께 가자는 제안에 처음에는 크게 내키지가 않았다.
2001년에 인도를 22일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배낭여행처럼 예약 없이 현지에 가서 부딪 히고 계약하고 주문하고 그렇게 여행을 했었다. 그 때 한 고생이 쉽게 인도를 가겠다는 마음을 내는데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전파라미타에서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는데,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기에 는 내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 경비를 마련하고 함께 가기로 결심을 했다. 결심하 고 보니 학교 수업도 문제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 년 수업을 담당했기에 학생들이 대입원서를 쓰고 하느라고 수업을 진행할 수 없어서 부담은 많지 않 았다. 그렇지만 출장을 내고 가야하기 때문에 수업 시수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겠기에 노심초사하며 교감선생님, 교무부장님, 일과 담당선생님과 상의 를 하니 가능하다고 하여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
다. 나중에 교장선생님께서 어려운 결정을 해주셔 서 고맙게도 봉사활동을 떠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인도봉사활동 여행준비를 했다.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항상 다짐하는 것이 어 떻게 하면 짐의 부피를 줄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효용가치가 있으면서 부피가 작고 현지 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것이면 가능한 챙기지 않는다 는 원칙을 가지고 짐을 꾸렸는데도 짐의 부피는 작 지 않았다. 음식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음식준비를 별도로 안하다보니 훨씬 수월하게 가방을 꾸릴 수 있었다.
대신 이번에 가는 곳은 북인도 쪽이라 낮에는 따 뜻하지만 밤에는 추워서 잘 때 고생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추위에 대한 준비를 많이 했다. 이불 대신에 따듯하면서 부피가 작고 보온성이 뛰어난 침낭을 준비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적잖이 고민이 되었다.
호텔에서도 난방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날 아침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께 인사 를 드리고 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 로 갔다. 떠나기 전에 학교 법당에 들러서 부처님께무사히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왔다.
인도는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 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피가 필요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아무 사고 없 이 모든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기를 간 절히 기도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보니 아직 일행이 오지 않아서 점심부터 챙겨먹고 모이라는 장소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서울팀과 사무실 팀, 가 져갈 짐들이 와있었다. 짐들을 항공기 편으로 부치기 위해 다시 정리하고 준비를 마치니 우 리 봉사단을 이끌 포교국장 부명스님이 스님 이 오셨다.
간단하게 기념식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짐 을 부치고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검색대를 통 과했다. 그런데 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 렸다. 더욱이 우리가 가지고 가는 짐 중에는 구호활동에 필요한 물품이 많아서 각자 짊을 나눠 기내로 가지고 들어가야 했는데, 일행 중 몇 명은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적잖이 어려 움을 겪이도 했다. 이처럼 출발부터가 쉽지가 않았다.
비행기는 대만을 경유해서 태국 방콕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인도 보드가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다. 이렇게 인도까지 가는 데 만도 이틀의 시간이 걸렸다. 인천 공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터라 태 국 공항에서 다시 검색대를 통과할 일이 적잖 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무사히 통과하여 비행 기에 오를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갈아탄 비 행기가 소형이라서 또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걱정 속에 도착한 인도 보드가야 공항은 우리 나라의 지방공항보다도 작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봉사활동을 하
기 위해 준비해 간 물품이 많았기 때문에 물 건을 찾아 검색대를 통과하는데도 적잖이 어 려움이 있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고려사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니 한결 마음이 안정되었다.
고려사에 가기 전에 먼저 보드가야 대탑을 참 배하였다. 2001년에 왔을 때보다 많이 정비가 되어 있 었다.
우리 일행은 탑 주위를 한 바퀴 돌아서 참배를 하 고는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다들 맛있게 점심 을 먹고 고려사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우선 다음 날 바로 진행될 행사 준비를 하고 녹야원에서 쓸 물 건과 고려사에서 쓸 물건을 나누는 작업을 했다. 그 렇게 준비를 하다 보니 도 하루해가 지나 잠자리에 들었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일행은 아침 일찍 고려 사에서 첫 아침 예불을 올렸다. ‘부처님께서 깨달음 을 얻으신 이곳에서 이제 우리들이 봉사를 통한 자 비를 실천하려 합니다. …’
이렇게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고려사에서 예 불을 마친 뒤 우리 일행은 다시 동이 트기 전에 어둠 을 헤치고 보드가야 대탑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탑에 도착하여 우선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 께 삼배를 올렸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 리수 아래에서 예불을 올리니, 그 자체만으로도 감 동과 환희심이 부풀어 올랐다.
그 옛날 부처님께서 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좌선하고 계셨을 모습을 상상하며 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저 멀리 해동 대한민국에서 어린 불자들이 부처 님의 나라에 와서 조그마한 봉사를 시작하려하오니 그들에게 부처님의 깨달음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 를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모든 불자들이 이번 기회를 통 해서 부처님께서 고통을 여의고 해탈을 얻으려고 노 력하셨던 마음에 조금이라도 다가 설 수 있는 기회 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머릿속으로 예불의 식이 진행되는 동안 쉼 없이 되뇌었다.
예불을 마치고 월우스님으로부터 어떻게 보드가 야 대탑이 세워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관리되 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월우스님 은 대탑을 인도가 세운 것이 아니라 스리랑카가 세 웠다는 이야기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에 칠일동안 공부하셨던 내용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도 상세히 들려 주셨다.
예불과 기념의식을 마친 뒤 드디어 고려사에서의 첫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봉사라고해서 우리들이 상대에게 나누어주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 또 한 봉사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얻어가게 되는 것이 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였지만, 현 지인 의사와 언어소통이 잘 안되어서 어려움이 따르 기도 했다. 마침 인도 스님이신 쉐둡 스님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주로 어른들에게는 진료를 받도록 하고 어린이들 에게는 비타민과 구충제를 나누어 주었다. 어린이들 은 곧바로 문화팀이 마련한 한지로 거울 만들기와 단주 만들기, 한국의 전통놀이 배우기를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금방 서로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었다. 놀이라는 매 개는 언어가 필요 없었다. 재미있게 함께 어울리다 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무섭게 느껴졌던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어린이들도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내 마음의 눈을 뜨면 내안에 있는 편견과 아집으 로 이루어진 인식들이 결코 참된 인식이 될 수 없음 을 과연 어느 정도 체득할 수 있을까? 이번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말이 아니라 실제 몸으로 체득하는 기회를 가졌으니 얻어가는 것 또한 매우 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은 벌써 그것을 느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하! 천만금 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것을 이 아이들은 벌써 얻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이곳에 데려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이번 봉사활동을 하게 된 목적이 아닌가?
어찌 생각하면 작지만 다시 생각하면 결코 작지 않 은 깨달음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내내 지속되 기를 기원했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 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를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봉사활동이 끝나는 날까지 가슴속에서 되뇌이고 되 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