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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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놓고 싶지 않은 스승 정우스님

전성재
통도사 자비도량

삶을 살다 보면 즐겁고 환희에 넘치는 날도 있지만, 때로는 힘겹고 고통스러운 날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로 인해 심한 낭패감을 느껴 자포자기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그 얼굴이 뇌리에 스치면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맴돌며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솟아나곤 합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임길도 님의 인과 연입니다.



내가 그대를 만날 줄 몰랐듯이
그대도 나를 만날 줄 몰랐으니
세월(歲月)인들 맺어지는 인연을 어찌 알리요


歲月따라 흐르다보니
옷깃이 스치듯 기약하지 않아도
맺어진 인연(因緣)인 것을


언젠가 옷깃을 스치며 또 다시 만날지
그대로 이어지는 인연이 될지 그 뉘라 알리요


모르는 歲月이 흐르듯이 인연도 그렇게 흐르는 듯
행여 짧은 인연이라 한들 내 뉘를 탓하리요


다만 일체 중생(衆生)은
인(因)과 연(緣)으로 생멸(生滅)한다 하니
좋은 만남으로 귀하고 귀하기를 바라지요



이 시가 떠오르는 것은 내 삶의 지표가 되어주었고 희망이 되어주었던 그 분과의 첫 만남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초여름 어느 날, 희미하게 호롱불이 켜진 초라한 군부대 행정반 막사에 2명의 신병이 들어 왔습니다. 그 중 건장한 체격에 막사가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를 가진 신병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신병은 막사가 무너질 듯한 우렁찬 목소리로 부대전입 신고식을 했습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커 고막이 터질 것 같다는 고참병들의 질책과 함께 신고식이 끝났습니다.


신고식에 이어 당시 군부대에서의 통과의례처럼 진행됐던 더블백 점검시간. 그런데 그 신병의 더블백에서 목탁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님은 군대도 안 가는 줄 알고 있었던 저로서는 한편으로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이 왜? 무엇 때문에?”
수많은 번뇌가 머릿속을 맴돌며 의구심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와의 첫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의 제 삶의 지표가 되어주고 안내자가 되었으며 스승이 되어주신 분이 바로 통도사 주지 정우스님입니다.
스님의 불교 포교에 대한 원력은 그렇게 군 생활에서부터 시작되셨습니다.
책이 귀하던 그 시절, 부대 내에 작은 도서실을 만든다며 공용증(외출증)을 가지고 부대 밖으로 나가 혼자서는 들고 오기 힘들 정도의 책을 양손에 들고 부대와 밖을 수 없이 왕래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또 보직이 군종병이 아니었는데도, 내무반에서 작은 법당을 조성하고 부처님의 법을 전하기에 온 몸을 바치시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스님의 그러한 활동에 저는 물론이고 그 당시 함께 내무반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군 생활이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그렇게 당시 우리 부대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준 보살의 화현이었습니다.


스님의 활동은 그렇게 내부반에서 시작되었지만, 금방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해지면서 옆 내무반의 병사들도 우리 내무반을 찾게 되고, 그러다보니 찾아오는 병사들에 비해 내무반이 협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부대원이 함께 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는 법당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군종병이 아닌 일반 사병이 그것도 단기간에 부대에 법당을 마련하고 많은 군불자를 양성한 사례는 전무후무하리라는 생각입니다.


군에 다녀온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를 글로 쓰면 모두가 장편소설을 쓴다고 합니다만, 스님의 군생활을 글로 쓰자면 대하소설을 써도 몇 개는 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스님과 인연을 맺어 지금도 스님을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어서 저는 언제나 행복합니다. 그런데 스님을 처음 뵙는 불자님들께서는 이구동성으로, “너무 위엄이 있으셔서 다가가기가 힘들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스님의 모습일 뿐, 스님과 직접 대화를 하다보면 그렇게 자상하고, 온화하고, 순진하고, 여린 모습 입니다. 어느 누구와도 격의 차이를 두지 않고 있으며 있고, 없고, 직함의 높고, 낮음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스님의 내면을 알고 인연을 맺은 수많은 불자님과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부처님의 연으로 맺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남의 어려움을 아시면 스님 자신의 일이신양 직접 고심하고 자비의 행으로 실천하시니‘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보살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그로 인해 또 한번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30여 년 전. 제가 어렵고 힘들어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 소식을 들은 스님께서 몸소 저희 집까지 오셔서 힘들어 하는 저와 가족을 위해서 하룻밤을 묵으시면서까지 격려와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그 때 해맑은 미소로 격려와 위로를 해주신 스님의 보살행으로 저와 저희 가족은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한 번은 제 후배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을 때가 있었는데, 스님은 그 후배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도, 직접 병원 영안실까지 오셔서 염불을 해주시고 가족들을 위로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마 보통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 받을 때 같이 있어줌으로써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신다는 그 자체가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행하시는 보살도가 아닌가 합니다.


얼마 전 네팔 근로자의 죽음을 보시고는 그 일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가슴으로 아파하시고, 그래서 통도사 다비장에서 다비식으로 영혼을 몸소 천도해 주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30년 전 후배의 죽음을 천도해 주셨던 일이 다시금 떠올라 왈칵 눈물이 솟구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스님의 세세한 보살도를 어찌 졸필의 제가 글로써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지금도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스님의 모습은 구룡사 불사를 시작하시면서 조감도를 보고 즐거워하시던 모습, 여래사 불사 때는 구룡사 불사 때 미흡했던 점을 보완해서 설계하셨다며 즐거워하시던 순수한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요즘들어 제게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불사를 이루시고도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있다며 노심초사, 동분서주 하시는 모습에서 작은 소임을 맡고 있는 저로서는 스님의 건강이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걱정은 스님께서 앞으로 더 큰 원력으로 우리 불자들과 한국불교에 많은 희망이 되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그리고 발원을 합니다. 살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스님, 오래오래 저희 곁에 머무셔서 더 많은 중생을 구제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