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명화 / 구룡사 신도
<월간붓다>의 역사는 곧 구룡사의 역사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천막법당 시절, <구룡사보>란 제호로 창간호가 나왔을 때 이를 받아본 느낌이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회와 환희심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창간호부터 차곡차곡 모아 두었는데, 벌써 24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처음 일을 시작하여 그 결과물을 받아보았을 때의 마음이야 어떤 것이든 기쁘고 보람되지 않은 일이 있겠습니까만, <구룡사보>를 받아본 느낌은 구석구석 즐겁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환희로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구룡사보>가 나올 당시 구룡사는 허허벌판에 세워진 가건물에서 나무로 불을 지펴 물을 끓이고 차를 달였으며, 시장에서 쌀을 사와서 공양미를 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주지스님(현 정우 회주스님)을 중심으로 모든 불자들은 한 가지 일이 끝나면 스스로 다른 일을 찾아 함께 하면서 법당이 하나하나 완성되어가는 모습에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그 때는 모두가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슨 일이든 걱정할 것 없이 한마음으로 움직였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일은 정우 스님의 크나큰 원력의 힘 덕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불자들이 기도를 할 때면 정우스님은 맨 앞에서 장삼이 땀에 적셔 흥건해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절을 하셨습니다. 또 불자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곳을 일일이 둘러보시고 격려의 말씀을 해 주시면서 힘을 북돋아주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하시면서 분위기를 조성해 주시는데 어찌 불자들이 자기일로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젊은 스님 혼자의 힘으로 그 큰 불사를 하시는데,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불자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솟구쳐 열심히, 그리고 신명나게 움직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비록 육체적으로 힘은 들었지만, 그 때의 그 기운, 그 분위기는 평생토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다른 절로 가지 않고 오직 구룡사만 다니는 것은 그 때의 그 정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도 규모 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큰 사찰에 속하는 구룡사. 백고좌 법회를 3년이나 연속해서 치러 냈던 구룡사. 그러고도 일산 여래사를 비롯하여 10 곳이 넘는 포교당과 구룡사유치원을 비롯해서 역시 10 곳이 넘는 유치원과 미국, 인도, 티베트, 호주 등의 해외포교당 불사를 길지 않은 시간에 이뤄낸 구룡사.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환희로움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구룡사는 그 때의 그 불사에 대한 열정과 정진력이 조금은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구룡사 앞마당 터에 불사를 진행해야 되고, 제천의 부처님마을도 불사를 추진해야 하는데, 그 때의 열정과 신심이 불자들에게 조금씩만 더 보태진다면, 구룡사 대중스님을 비롯하여 산하 사찰의 대중스님 모두가 정진력으로 불자들을 키워 주시고 보이지 않는 힘을 일으켜 주신다면 불사는 자연히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보기도 합니다.
다시 <월간 붓다>를 생각해봅니다. 창간호를 받아 읽어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게 접하고 있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도 알차지고 읽을거리도 점점 다양화 되는 것을 느끼면서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월간 잡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모든 불자들이 쉽게 접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잡지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큰스님이나 불교학자, 전문적으로 글 쓰는 분들의 글 위주로 편집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불자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느낀 것을 쉽게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더 많은 불자가 참여하는 잡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월간 붓다>는 불자들을 위한 월간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불자들이 편히 읽을 수 있는 부처님 품안 따뜻한 가정의 <월간 붓다>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