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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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머무름의 자리

박 상 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까치집이 있는 나무가 보인다. 그 죽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 중에 까치는 어떤 기준으로 나무를 골라서 집을 짓는 것일까.
연구를 많이 한 어떤 분은 까치집이 있는 나무 근처에는 명당에 흐르는 좋은 지기地氣가 흐른다고 한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태풍을 피하기 위해서 바람길도 고려하고 새끼를 잘 키우기 위해서 땅 밑에서 올라오는 지열도 봐가면서 집을 지을테니 까치집이 있는 곳은 살기에 좋은 명당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마구 집을 짓고 있다. 물론 이것저것 살펴서 짓기도 하지만 재개발이라는 이름과 리모델링이라는 미명으로 부수고 다시 짓는 일을 서슴치 않고 있다. 잘 낫지 않는 이런 저런 병과 우리의 주거환경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연구하는 분야가 앞으로 분명히 활성화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원효 스님이 창건했다고 하는 절은 산속 깊은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시절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다보면서 터를 잡은 것도 아닐텐데 어쩌면 그렇게 절묘한 명당터에 지은 것일까.
감탄이 그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첨단과학의 힘을 빌려서 짓고 있는 현대식 건물도 물론 훌륭하다.
요컨대 집은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좋다. 까치집처럼.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있을 때 아름답다. 있어야 할 위치는 직장의 직위도 되고 한국이냐 미국이냐 하는 공간도 되고 어느 시대인가 하는 시간도 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뛰었던 한 유명한 축구선수가 “호날두나 메시 같은 선수가 우리시대에 뛰었더라면 최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선수의 이름은 루이스 피구이다. 이 선수와 동시대에 뛴 선수는 지네딘 지단, 데이비드 베컴 등등의 선수이다. 호날두 선수도 저 앞의 말을 듣고 수긍할 듯하다.
있어야 할 아름다운 위치에 있는 경우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있어야 할 위치를 벗어나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보도블럭 몇 개가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일 때가 있다. 서울시의 보도블럭은 재료가 무엇이 길래 그토록 빠르게 쓸모가 없어져서 거의 매년 교체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사실은 알고 싶지도 않다. 있어야 할 위치를 벗어난 보도블럭은 자신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의 발을 걸기도 하고 심지어는 발목을 부러뜨리기도 한다.
대학에서 시경에 있는 구절을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시운 면만황조 지우구우
子曰 於止 知其所止  자왈 어지 지기소지
可以人而不如鳥乎 가이인이불여조호
시경에서 말하기를 “꾀꼴 꾀꼴 저 꾀꼬리 언덕 모퉁이에 머물면서 노래하네”라고 하였는데 공자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머물러야 할 곳에 머무는 것을 아는 것이니 사람이 새만 같지 못해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셨다.
여기에 인용되어 있는 시경의 구절은 시경의 소아면만편이다. 면만은 새 울음 소리이다. 의성어인데 글자로만 파악하고 읽으려면 곤란한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 어느 임금은 이 면만이 무슨 뜻이냐고 신하들에게 깊이 따져 물은 경우도 있다. 필자는 지금 한국 사람들의 보통 정서에 맞게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꾀꼴 꾀꼴’이라고 번역했다.
만약에 어떤 외국인이 한국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고 하면서 저 ‘꾀꼴꾀꼴’의 의미를 아주 깊이 물어오면 뭐 녹음해서 소리를 들려줄 수도 있겠지만 새의 울음소리라고 설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덕 모퉁이는 숲이 우거진 곳이다. 공자님께서 이 시경의 구절을 인용한 것은 사람은 마땅히 사람이 머물러야할 곳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이다.
갑을에 관한 이야기가 널리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직위나 위치가 거대한 우주연극에서 잠 시 나에게 맡겨진 배역임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행태가 어쩌면 안타깝고 애처롭기도 하다. 성직도 임시로 맡고 있는 배역일 뿐이다. 연극 조명등에 꺼지고 나면 무슨 뼈다구나 있겠는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왕비 역을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수 있지만 그 배우가 백화점에 가서 왕비노릇을 진짜로 하려고 든다면 그 꼴이 무슨 꼴이 되겠는가. 나부터 지금 나의 시공간적 위치가 어떤지 점검하고 반성해 볼 생각이다.
중용에 있는 구절을 함께 읽어본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했을 때 싫은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는 구절이다.
忠恕違道不遠  충서위도불원
施諸己而不願 시저기이불원 
亦勿施於人 역물시어인
충서와 도의 거리가 멀지 않으니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 보아서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이니라
이 구절에서 충忠은 자기의 마음을 극진하게 다하는 것이고 서恕는 자신의 처지나 마음을 미루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처지를 이해하는데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표현해 보면 충은 자리自利이고 서는 이타利他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 싫을 때 내가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 그 사람이 싫어하겠구나를 알아차리라는 참으로 간단한 말이다. 적극적으로 풀이해보면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말은 많이 베풀 수 있으면 베풀어도 좋다는 말이다. 자원봉사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던가.
봄이 많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느 가수의 노래가사처럼 내가 떠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보내는 것도 아닌데 그 놈의 계절은 잘도 왔다가 잘도 가고 또 잊어버리지 않고 잘도 찾아온다.
개나리들은 벌써 저 깊이 들어 있는 잔뿌리에서 노란 잎들을 밀어올리고 있다. 진달래 분홍빛 고운 잎은 나무 밑둥치까지 거의 다 올라와 있다. 앙상한 듯 보이는 은행나무들도 땅바닥 속 뿌리들은 이미 푸릇푸릇한 잎을 언제든지 저 나무꼭대기까지 전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손가락의 뼈마디 하나가 잠시 삐끗해서 미세하게 자리를 이탈하면 손발 어깨와 온 몸이 저리다가도 어떤 인연으로 뼈마디가 제자리로 돌아오면 온 몸이 살 것처럼 시원해진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인연들이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서 너와 나와 우리 모두가 좀 더 편안하고 튼튼해지는 2월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