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애 경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부단장
부처님께서 슈라바스티의 외로운 이 돕는 절에서 큰 비구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시던 어느 날 그 나라에 한 장자가 있었습니다.
그 부인이 딸을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아름다워 견줄 이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에 곱고 부드러운 흰 옷을 몸에 감고 태어나 부모는 이상히 여겨 관상가를 불러 그 아이의 상을 보게 하였습니다.
“매우 길합니다. 큰 복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숙리叔離(한자로 白의 뜻)라 하였습니다.
숙리가 자라나자 그 옷도 몸에 따라 커졌으며 숙리는 용모가 뛰어났기 때문에 나라 안의 멀고 가까운 데서 서로 앞 다투어 청혼해 왔습니다.
‘숙리가 이제 저만큼 자랐으니 시집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부모는 공인工人을 불러 온갖 보물로 장신구를 만들었습니다.
숙리는 그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저 금과 은을 무엇에 쓰려고 만드는 것입니까?”
“너도 이제 장성했으니 시집을 보내야겠다. 그래서 팔찌를 만드는 중이다.”
“저는 집을 떠나 도를 배우렵니다. 시집가긴 싫습니다.”
부모는 딸의 말대로 그 뜻을 어기지 않고 곧 천을 꺼내어 다섯 가지 법복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숙리는 그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무엇을 만들려 하십니까?”
“네 법복을 만들려 한다.”
“제가 입은 이 옷으로 충분하니 곧 부처님께 가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부모는 그를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출가시키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 ‘잘 왔다.’고 말씀하시자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입고 있던 흰 옷은 다섯 가지 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대에도에게 맡겨 비구니가 되게 하였습니다. 숙리는 정진한 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도를 이루었습니다.
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숙리 비구니는 본래 어떤 공덕을 지었기에 장자 집에 태어났고 날 때부터 옷을 입고 났으며 집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도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먼 옛날 비파시인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제자들과 함께 일체 중생을 제도할 때 국왕과 신하와 백성들은 많은 공양을 올리고 오년마다 한 번씩 여는 보시 대회를 열었다.
그때에 어떤 비구는 항상 권선勸善을 다니면서 부처님께 나아가 법을 듣고 보시하기를 권하였다. 그때 다니가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너무 가난하여 옷 한 벌을 가지고 부부 두 사람이 번갈아 입고 살았다.
남편이 밖에 나갈 때 그것을 입고 나가면 아내는 나체로 풀자리에 앉아 있었고 또 아내가 그 옷을 입고 나가 구걸할 때는 남편이 옷이 없어 벗은 채 풀자리에 앉아 있었다.
권선하는 비구는 차례로 다니다가 그 집에 이르러 여자를 보고 권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은 만나기도 어렵고 경전을 듣기도 어려우며 사람의 몸을 얻기도 어렵습니다. 당신은 법을 듣고 보시를 하십시오.’
비구는 이렇게 인색과 탐욕과 보시의 갚음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스님 잠깐 계십시오.’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밖에 어떤 스님이 와서 우리에게 부처님의 법을 듣고 보시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생에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처럼 빈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무엇으로든지 후생의 밑천을 만들어야 합니다.
남편은 대답하였다.
‘우리 집이 이렇게 빈곤한데 설령 마음이 있다 한들 무엇으로써 보시할 수 있겠소.’
‘전생에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처럼 곤궁한데 금생에 또 심지 않으면 후생에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신만 허락하시면 나는 기어코 보시하겠습니다.’
남편은 혼자 생각하였다. 아내에게 혹 사사로운 재산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허락하리라.
‘좋소, 보시하고 싶으면 곧 하시오.’
아내는 당장 말했다.
‘나는 이 옷을 보시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옷 한 벌로 드나들면서 구걸하여 살아가는데 지금 이것마저 보시하면 우리는 죽는 길밖에 없는데 어찌하려오?’
‘사람은 다 죽는 것입니다. 지금 보시하지 않더라도 마지막에는 죽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지금 보시하고 죽으면 후생에 잘 살 것이라는 보람이라도 있겠지만 지금 보시하지 않고 죽으면 후생에는 반드시 고생이 있을 것입니다.’
남편은 기뻐하였으며 아내는 길로 나가 비구에게 말하였다.
‘스님, 저 담 밖에 나가 기다리십시오. 물건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비구는 말하였다.
‘만일 보시하려면 면전에서 보시하십시오. 당신을 위해 축원하리다.’
‘제가 가진 것이라곤 다만 이 옷뿐입니다. 이 속에는 다른 옷이 없습니다.
면전에서 벗을 수 없으니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녀는 안에 들어가 옷을 벗어 담 밖으로 넘겨 비구에게 주었다. 비구는 축원하고 그것을 가지고 부처님께로 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옷을 이리 가져오너라.’
비구는 냄새나는 그 옷을 부처님께 드렸다. 부처님께서 손수 그 때 묻은 옷을 받으셨다.
거기에 있던 대중들이 마음속으로 꺼려함을 부처님께서 아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건데 이 모임의 어떠한 청정하고 큰 보시도 이 때 묻고 냄새나는 이 옷의 보시보다 나은 것이 없다.’
대중들은 이 말을 듣고 놀라워하였으며 부인들은 기뻐하면서 자기가 입고 있던 영락으로 장식한 보배 옷을 벗어 다니가에게 보내주었고 왕도 기뻐하면서 입었던 옷을 벗어 다니가의 남편에게 보내고는 그들에게 이 모임에 나올 것을 사람을 보내 권하였다. 비파사인 부처님은 대중들을 위해 미묘한 법을 널리 연설하셨다. 그 때에 그 대중 가운데는 제도를 받은 이가 많았느니라.
부처님은 이어 아난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알고 싶으냐. 그때의 그 빈궁한 여자 다니가는 바로 지금의 저 숙리 비구니니라. 그는 그 때에 청정한 마음으로 옷을 보시하였기 때문에 구십일 겁 동안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옷을 입고 태어나 모자람이 없었고 구하는 것은 모두 뜻대로 되었다.
그리고 그는 부처님을 만나 깊고 오묘한 법을 듣고 해탈하기를 원하였으므로 지금 나를 만나 아라한이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법을 듣고 보시하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도를 얻은 이가 많았고 그들은 모두 기뻐하며 정성껏 보시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베살리의 잔나비 숲에 계실 때의 어느 날 인근에 사는 사자대장이 찾아와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부처님이 그에게 늘 보시를 잘 하고 있는지를 물었으며 그는 대답했습니다.
“때에 맞춰 항상 보시를 하되 조금도 모자라지 않게 합니다. 음식을 요구하면 음식을 주고 의복이나 향, 수레, 말. 좌구를 요구하면 다 주나이다.”
“너는 늘 보시를 하면서 아까워하지 않는다니 참으로 장하구나. 시주가 너처럼 보시를 하면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
첫째, 시주의 이름이 사방에 퍼져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둘째, 수행자 바라문 부자들 속에 들어가더라도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셋째, 사람들이 공경하고 우러러본다.
넷째, 목숨을 마친 뒤에 반드시 천상에 오르거나 인간으로 태어난다. 천상에서는 하늘의 존경을 받고 인간세상에서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다섯째, 지혜가 뛰어나 현세의 몸으로 번뇌를 없애고 후세까지 가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보시는 뒷세상의 좋은 양식이 되나니 반드시 구경처에 가게 되리라. 또한 선신이 항상 그를 돌보고 또 언제나 기뻐하리라. 그래서 몸과 마음이 든든하고 온갖 좋은 공덕을 두루 갖추며 삼매를 얻어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며 참다운 법을 여실하게 알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는 항상 보시하기를 즐겨하라. 그렇게 하면 다섯 가지 공덕이 항상 그를 따르리라.
보시란 육바라밀·십바라밀·사섭법 등의 제1의 덕목으로 자비심으로 남에게 조건 없이 물건을 주는 것 베풀다 즉 보시라고 합니다.
중생구제를 목표로 하는 이타정신의 극치이며 보시를 행할 때는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그리고 베푸는 것도 모두가 본질적으로 공空한 것이므로 이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이것을 삼륜체공 또는 삼륜청정이라고 합니다.
물건이나 금전적인걸 보시하는 재보시, 훌륭한 말씀이나 경전 또는 책을 보시하는 법보시,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용기를 심어주는 무외시 등이 있습니다.
보살의 여섯 가지 실천인 육바라밀 가운데 보시를 첫머리에 둔 까닭은 보시를 통해 자신의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불도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고 남을 돕는 아음다운 실천행을 길러 주기 위함입니다.
가난하여 보시할 재물이 없을 때에는 남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을 일으켜라.
남의 선행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보시하는 것과 똑같은 공덕이 된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에 진심으로 귀의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