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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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의 중흥조

오경후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선조宣祖 때의 문신 최립(崔., 1539~1612)은 청허 휴정을 산중의 절승絶僧 중에 최고로 꼽았고,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은 ‘동방 석씨釋氏의 조종’으로 높이 칭송하였다. 우리나라의 고승 가운데 ‘절승絶僧’과 ‘석씨의 조종祖宗’은 즐비하다. 시대마다 그 기준이 다를 뿐이다.
조선의 유자儒者들이 청허 휴정을 높이 칭송한 것은 불교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여한 것에 있었을 뿐 폐허가 된 불교계를 중흥시켰다는 의미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청허의 공적 가운데 선·교학 부흥의 기초를 마련한 것은 한국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청허의 위상과 가치이다. 조선불교가 지닌 전통을 회복시켰고, 그 정체성을 선명히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가 찬술한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조선불교의 선·교학을 정립시키기 위한 그의 노고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례다. 그는 1564년 여름에 저술을 완료하였고, 금강산의 백화암白華庵에서 그 서문序文을 썼다. 그 뒤 묘향산에서 10여 년 동안 이 글을 다듬고 손질하였으며, 1579년(선조 12) 그의 제자 유정惟政이 발문을 쓰고 이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선종禪宗의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부분을 간추려 엮은 불교 개론서로서, 책명에서 알 수 있듯이 참선參禪하는 이들이 귀감龜鑑으로 삼아야 할 책이라는 의미이다.
옛날에 부처 배우는 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않았고, 부처님의 행실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패엽貝葉의 거룩한 글뿐이었는데, 지금 부처 배우는 이들은 전하여 가면서 외우는 것이 세속 선비들의 글이요, 청하여 지니는 것이 벼슬아치들의 시詩뿐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울긋불긋한 종이에 쓰고, 얼룩덜룩한 비단으로 꾸며서, 아무리 많아도 족한 줄을 알지 못하고 가장 큰 보배로만 생각하니 아, 예와 지금의 부처 배우는 이들의 보배 삼는 것이 어찌 이다지도 같지 않을까?
『선가귀감禪家龜鑑』의 서문 가운데 일부분이다. 책을 찬술하게 된 배경이 적나라하게 소개되어 있다. 즉 불도佛徒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처님의 말씀과 행동을 이정표 삼아 사바세계의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왔다. 경전을 오직 몸 안의 보배로 삼고 복덕과 지혜를 키워나갔던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에서 신라와 고려로 대표되는 조선 이전의 시대에는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수행과 신앙에서 그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왕조가 바뀌고 국가이념이 불교에서 유교로 교체된 다음에는 그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변하였다. 특히 공자와 맹자의 유교儒敎에 기초한 주자성리학朱子性理學이 왕과 신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 후에는 불교탄압과 소외는 정해진 이치였다. 불법佛法을 신봉했던 수행자라할지라도 근기가 약해서 신료와 관리가 억압하면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해 사찰의 전답과 노비를 나라에 바치거나 그것도 부족하면 환속하는 일이 이상한 것도 아닌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그 혹독한 시간을 살아남기 위해 유학자나 사대부들의 변변치 못한 글이나 시를 받으려고 줄을 서거나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문인文人의 흉내를 일삼는 일로 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청허의 눈에 비친 불도佛徒들의 이러한 모습은 부처님 뵙기에 몹시 부끄러운 일이었고, 서글픈 일이었다. 더욱이 왕조가 바뀐 지 200여 년이 지났으니 부처님의 숭고한 말씀과 행동이 공자와 맹자의 유려한 말 속에 자취를 감춘 지는 오래되었다. 청허가 『선가귀감』을 지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내가 비록 답지 못하나 옛글에 뜻을 두어 패엽의 거룩한 글로써 보배를 삼기는 하지마는, 그 글이 너무도 번다繁多하여 장경藏經 바다가 하도 넓고 아득하므로, 뒷날의 도반들이 가지를 헤쳐 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하지 못할 것 같아서, 글 가운데 가장 요긴하고도 간절한 것 수백 마디를 추려서 한 장에 써놓고 보니, 참으로 글은 간단하나 뜻은 두루 갖추어졌다고 할만하다.
조선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미 땅에 떨어져 자비를 말하는 이 적고, 지혜를 닦는 이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지만, 청허의 마음은 달랐다. 그가 읽고 가슴에 깊이 새긴 부처님의 수많은 말씀 가운데 요긴하고 간절한 것을 추려 후학後學들의 수행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책은 대체로 다섯 가지로 구성되었다. 첫째, 원리론에서는 ‘일물一物’로써 우주의 근본원리를 밝히고, 주해註解와 더불어 그 일물에 대한 시간적·공간적 관찰과 선종가禪宗家, 6조 혜능慧能 및 휴정 자신의 견해를 곁들이고 있다. 둘째, 불조론에서는 불조佛祖의 공덕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 기술되어 있다. 셋째, 선교론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은 교敎요 부처님의 마음이 선禪이라는 전제 밑에 결국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사교입선捨敎入禪) 요컨대 교학을 공부한 이후 선 수행에 집중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넷째, 방법론에서는 공부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한편 화두(話頭, 公案) 등 12부문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그리고 다섯째, 결론에서는 다시 원리를 들어서 끝을 맺고 있다.
이상의 구성 가운데 당시 불교계와 결부되어 중요한 것은 청허가 선이나 교를 서로 다른 두 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선시불심禪是佛心 교시불어敎是佛語)”으로서 그것은 결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휴정의 선교관禪敎觀이다. 그러나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선이요, 말 있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교이다.”라고 하여, 결국 불교의 올바른 수행의 태도는 교를 수행하고 난 이후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가야 함을 강조하였던 것이 청허의 주장이다.
따라서 청허는 이러한 자신의 불교관을 정립하고, 아울러 그 당시 불교계의 잘못된 수행태도를 바로잡고자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다. 청허는 이 책을 저술함에 있어 철저히 자기 자신의 독단을 경계하였다. 예로부터 선가禪家에 전해오는 경론 및 어록의 요긴한 말들을 토대로 하고, 이에 주석을 달고 송頌이나 평評을 붙여 불교수행의 본질을 밝히려 하였다.
한편 휴정은 이 책의 말미에 임제종臨濟宗·조동종曹洞宗·운문종雲門宗·위앙종.仰宗·법안종法眼宗 등 선가 5종의 특징을 구별하는 설명을 붙였다.
무릇 수행자는 먼저 종파의 갈래부터 잘 알아야 한다. 옛적에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일할一喝에 백장회해百丈懷海는 귀가 멀었고, 황벽희운黃檗希運은 혀가 뽑혔다. 그 일할이야말로 곧 세존염화世尊拈花의 소식이었고 또한 달마서래達摩西來의 면목이었다. 아! 이것이 임제종지臨濟宗旨의 연원이다.
특히 임제종지臨濟宗旨의 탁월함을 드러내 보였다. 인용문은 선종 5가 가운데 임제종이 지닌 특징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선명하게 밝힌 부분이다. 결국 청허는 『선가귀감』 후반부에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은 모두 무생법無生法을 철저하게 증득한 것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투철하여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이 시공時空에 자재한 까닭에 전신으로 출몰하고 전신으로 감당하여 문수와 보현과 같은 대인의 경계조차 물리쳐버린다.”고 하여 임제선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청허는 이렇게 함으로써 임제선을 널리 선양하고 선가의 가풍과 특성을 역사적 전통의 맥락 속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이것이 청허 휴정이 조선불교의 중흥조로 불릴만한 이유이며, 가치이다. 한세상 살면서 이런 기개는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슴 속에 새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