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불교 신도가 되는 첫걸음은 ‘계戒’를 받는 일에서 시작된다. 계를 받는 의식을 <수계식受戒式>이라 하는데, 절에서 가서 여러 스님 앞에 다섯 가지 계를 받고, 그런 다음에 잘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다섯 가지 계를 <5계>라고 하는데, 첫째, 살생하지 않겠다. 둘째, 훔치지 않겠다. 셋째, 음행하지 않겠다. 넷째, 망어하지 않겠다. 다섯째, 음주하지 않겠다. 이 다섯 가지 계의 조목 중에서 망어를 빼고는 대개 그 뜻을 알 것이다. 망어는 일상에서의 거짓말이나, 꾸미는 말, 이간질하는 말, 욕하는 말 등을 포함하여, 특히 중요한 것은 불교는 수행의 종교인데, 수행에서 체험하는 내용을 거짓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상의 <5계>는 불교가 시작된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부터 재가 불자가 지켜야 할 지침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재가 신도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가족을 단위로 사회생활을 한다. 세속의 사회생활에는 나라마다 통용되는 각종 법규를 지킨다. 참고로, 세속을 떠나 출가한 수행자들은 수행공동체의 규정에 따라 생활하는데, 이런 규정을 전문 용어로 <율律>이라 한다. <계>는 개인윤리이고, <율>은 공동윤리이다. 이 둘을 합쳐서 <계율>이라고 부르지만, 그 내용은 서로 구별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독자들도 아시다시피, 기원전 1세기 즈음하여 대승 불교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타적인 <보살행>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또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는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그 나라의 기후 등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풍습과 윤리나 도덕과 서로 조화를 도모하게 되었다. 범망경은 이런 복합적인 불교 역사 현장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한 지성의 산물이다.
2.
위에서 필자는 <능동적>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인도와 한·중·일 등 동북아시아 지역은 풍습이나 기후 등 다른 점이 많다. 인도의 더운 지역에서는 옷 한 겹으로 살 수 있지만, 한국이나 중국 북방 지역은 그렇지 못하다. 인도에서는 걸식으로 스님들이 식생활을 해결했지만,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왕실이나 귀족들이 논밭을 기부하여 거기에서 나오는 곡식으로 생활하게 했다. 문화의 차이가 참으로 컸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의 차이가 있더라도, 사람 사는 데는 소위 양심良心 즉 <어진 마음>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예를 들면, 겉으로 드러난 인사 방법으로, 어떤 지역에서는 악수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땅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서로 포옹하고, 등등 겉으로 드러난 형식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형식 속에 들어있는 상대를 존중하는 <어진 마음>에는 다름이 없다.
범망경은 바로 이 <어진 마음>에 근본을 두고, 동북아시아 지역에 알맞게 <능동적>으로, 대승 불교를 실천하는 스님이나 재가 신도들이 지켜야 할 <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어진 마음>은 필자가 대승 경전에 등장하는 <심지心地>라는 용어를 염두에 두고 연상적으로 사용한 개념이다. 땅위에는 식물도 자라고, 그 식물에 의존해서 여러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 땅은 모든 존재의 의지처이다. 그렇듯이 마음은 모든 존재의 의지처이다. 마음을 땅에 비유하여 표현한 용어가 바로 <심지心地>이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보태면, 마음은 모든 존재의 의지처이지, 모든 존재를 낳는 출생지는 아니다. 불교 교리에서는 마음을 모든 법의 의처依處로 이해해야 옳지, 생처生處로 이해하면 각종 오해가 생긴다.
3.
이런 맥락을 이해한다면, 독자 여러분도 왜 범망경을 <심지법문心地法門>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범망경이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편집되었다는 말은 본 연재에서 자주 언급했다. 이 중, <상권> 속에 <심지법문心地法門>이 집중적으로 펼쳐진다. <상권>의 <심지>에 의지해서 <하권>의 ‘10가지 굵은 계’와 ‘48가지 자잘한 계’가 펼쳐진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의 불교계에는 <하권>이 특별하게 보급되었다. 상대적으로 <상권>은 거의 보급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지역에 유통되는 대승 불교의 여러 경전을 통해, 출가 스님들 사이에 <심지법문>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상권>을 생략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재가 신도들도 <법망경 보살계>를 받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불교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는 노력이니,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교리적인 지식을 넘어, 인생살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것, 이것이야말로 종교 생활이다. 출가한 스님들이야 절에서 경전 공부를 많이 해서 <심지법문>을 알고 있지만, 재가 신도들은 그게 쉽지 않다. 필자는 이 방면의 연구자로, 작은 힘이나마 좀 보태려고 <상권>을 『월간 붓다』에 연재하고 있다. 특히 교육과 포교에 공들이는 통도사의 오랜 전통을 고려할 때, 필자의 본 연재가 계기가 되어, 재가 신도들도 <상권>의 <심지법문>을 잘 이해하면서, <하권>에 실린 부처님 말씀으로 믿음 생활을 한다면, <불지종가佛之宗家 통도사>의 명성과 부합할 것이다.
<상권>에서는 사람의 본심에 갖추어진 <도덕 감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또 여러 경전 특히 화엄경 사상에 근거하여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통도사 불자님들은 해마다 <화엄산림>에서 화엄경을 공부했으니, 범망경 <상권>이 화엄경의 내용과 닮은 점을 이미 아실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불교에는 경·율·론 소위 3장藏이 있다는 이야기는 독자들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소위 팔만대장경을 세 부류로 분류한 것인데,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에서는 경經으로는 화엄경을, 율律로는 범망경을, 논論으로는 대승기신론을 교과서처럼 배우고 가르쳐왔다. 이런 세 부류의 책을 잘 읽고 이해하면서 세상살이를 하면서, 대승의 정신을 잘 계승하면 좋겠다.
 
4.
범망경에서는 <심지법문>을 크게 4대목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첫째는 <발심하여 불도를 이루겠다는 마음>, 둘째는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 셋째는 <금강석처럼 굳세게 먹는 마음>, 넷째는 <본마음 자리 드러내기>이다. 한문으로는 ⑴발취심發趣心, ⑵장양심長養心, ⑶금강심金剛心, ⑷지地인데, 불교 교리 설명이나 큰스님들의 법문에 자주 나오는 용어이니 외워두는 게 편리하다. 범망경에서는 이 네 대목의 각 대목마다 10가지씩 조목별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범망경에는 총 40가지의 마음가짐이 적혀있다.
지난해부터 연재한 『월간 붓다』에서 이미 첫째의 <발심하여 불도를 이루겠다는 마음> 열 가지는 설명을 마쳤다. 이어서 둘째의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 10가지 즉, ①자심慈心, ②비심悲心, ③희심喜心, ④사심捨心, ⑤시심施心, ⑥호어심好語心, ⑦익심益心, ⑧동심同心, ⑨정심定心, ⑩혜심慧心, 이 중에서 세 번째 ③희심喜心까지는 설명을 마쳤다. 이번 호에서는 ④사심捨心 즉, <평등한 마음>을 설명하려 한다. 먼저, 범망경의 해당 본문을 아래에 인용한다.
항상 평등한 마음(捨心)을 내는 것이다. 조작이 없고 모양이 없는 공한 진리는 마치 허공과 같아서 선·악, 유견·무견, 죄·복의 대립 속에 평등하게 하나같이 관찰한다. ‘남(人)’도 없으며, ‘나(我)’와 ‘내 것(我所)’이라는 마음도 없다. ‘나’이니 ‘남’이니 하는 본체적인 성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평등(大捨)’이라 한다. 나아가 자신의 몸과 살, 손과 발, 남자와 여자, 나라와 성읍에 이르기까지 모두 허깨비와 같고 흐르는 물과 같고 등잔의 불꽃 같으니, 모두를 평등하게 여기면서도, 그런다는 마음조차 내지 않아야, 항상 ‘평등한 마음(捨心)’을 실천한다고 한다.
위 인용문에 나오는 <평등한 마음>은 한문 원문의 <사심捨心>을 번역한 것으로, 자·비·희·사慈悲喜捨의 4무량심 중의 하나이다. 범어 <우펙샤(upekśā)>와 상응한다. 원한 등으로 인한 모든 차별적 모습을 떨쳐내어 평등하게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다. 인용문에서 비유로 허공을 그 예로 들고 있다. 허공은 친하거나 멀거나 모두를 품는다. 또 허공은 없는 곳이 없듯이,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을 언제 어디서나 유지해야 한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空, 무아無我의 진리를 철저하게 체험해야 한다. 그리하여 일체의 조작이나 인위적인 게 다 사라진 <본마음>에 의지한 마음 먹기, 이것이 범망경의 <마음 땅(心地) 법문>이다. 한자리 깔고 하는 입에 바른 ‘도덕’이나 ‘예의’나 ‘염치’가 아니다. 남녀노소의 구별을 넘어서고 인종을 넘어서고, 나아가 인간이니 동물이니를 넘어서는 동체대비 대승 불교의 도덕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