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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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정행품 서원하는 보리심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영축총림 통도사 화엄산림 법회에 다녀왔습니다. 오전에는 『대방광불화엄경』 「정행품淨行品」을 중심으로, 오후에는 「현수품賢首品」 법문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소중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화엄경』은 깨달음을 가장 장엄하게 드러낸 경전입니다.
80권 『화엄경』 「정행품」과 「현수품」을 두 시간에 설시說示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이상 「정행품」과 「현수품」을 중심으로 『화엄경』을 다시 들여다보며, 구룡사·여래사·분당장안사·인천보명사에서 불자들과 꼭 나누고 싶은 대목들을 간추려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화엄경』은 전체 80권 중 제14권이며 11품인 「정행품」을 중심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정행품」은 지혜 으뜸인 지수보살智首菩薩이 등장합니다. 『화엄경』은 보살이 묻고 보살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단순한 문답이 아니라 깨달음을 서로 비추어 보는 보살의 행원行願이 담긴 법문입니다.
세존世尊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成道하신 뒤, 일곱 곳에서 아홉 차례, 이른바 7처 9회에 걸쳐 『화엄경』을 설說해지는 법회입니다.
지수보살과 문수보살이 나오는 「정행품」은 제2회에 해당하는 설법입니다.


「약찬게略纂偈」에 “육육육사급여삼六六六四及與三 일십일일역부일一十一一亦復一”이 나오는데, 이를 모두 합하면 『대방광불화엄경』 39품입니다.
이처럼 7처 9회에 설해진 39품 가운데, 지수보살이 문수보살에게 묻고 문수보살이 답하는 품이 바로 「정행품」입니다. ‘정행淨行’이란, 말 그대로 청정한 행, 깨끗한 삶의 태도, 수행자답고 보살다운 몸가짐과 말과 마음 씀씀이를 뜻합니다. 지수보살은 문수보살에게 모두 열한 단락에 걸쳐 질문을 하십니다.
“보살이 어떻게 하면 몸과 말과 뜻, 즉 신구의 삼업身口意三業이 허물이 없고, 해치지 않으며, 훼손되지 않고, 태어나는 곳마다 구족함을 얻으며, 종족과 가문이 구족한 삶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문수보살은 141게송으로 답을 합니다. 『화엄경』은 게송이 10만 송頌이고, 글자 수로는 10조9만5천48자十兆九萬五千四十八字라 전해집니다. 『화엄경』의 첫 게송은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화엄경』 전체의 요지를 압축해 보여줍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지수보살은 삼십칠조도품을 근간으로 수행자 근본의 물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일곱 번째 단락은 육바라밀六波羅蜜과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대한 질문입니다.


보살이 행하는 여섯 가지 수행, 곧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에 방편方便·원願·력力·지智를 더하면 십바라밀十波羅蜜입니다. 지수보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묻습니다.
“보살이 어떻게 하면 허물이 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신구의 삼업이 맑고 깨끗한 정업淨業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해치지 않는 업을 얻고, 훼손되지 않으며, 깨뜨릴 수 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질문이 모두 열한 단락에 걸쳐 반복됩니다. 어떻게 하면 물러나지 않는 업을 얻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불퇴전佛退前의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움직이지 않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어떻게 하면 청정한 몸과 말과 뜻인 신구의 삼업을 얻을 수 있는지, 물들지 않는 업을 얻을 수 있는지, 나아가 지혜로 이끄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조건에 매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데, 우리는 이를 보살행원菩薩行願이라 말합니다. 지혜가 수승하면 조건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번뇌망상煩惱妄想에 찌들어 몸과 말과 뜻이 업식業識에 깊이 쌓여,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생을 무조건 사는 삶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지수보살은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혜가 선도하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육바라밀의 수행, 곧 선정삼매禪定三昧와 반야지혜般若智慧로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물음은 육바라밀과 사무량심에 대해, 어떻게 하면 원만한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과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과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과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성취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원만한 대자대비와 대희대사, 사무량심四無量心을 갖출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문수사리보살이 지수보살에게 “지수보살이시여.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고, 세간을 애민히 여기며, 천신과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하고자 이러한 뜻을 나에게 물으십니다.”
문수보살은 “첫째는 마음을 잘 쓰는 것이다.” 마음 잘 쓰는 것이 바로 답입니다.
얼마 전 종범 스님께서 불교TV에서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법문으로 풀어내시며 덧붙인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 속담에 “한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를 종범 스님은 이렇게 풀어주셨습니다. 천 냥 빚은 물질이지만, 그것을 갚게 하는 것은 말이고, 그 말의 근원은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말로 갚는 것도 마음이고, 모든 일은 지극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문수보살은 마음을 잘 쓰는 것이 곧 답이라 하셨습니다. 수행자도, 보살도, 나아가 불·법·승 삼보佛法僧三寶 역시 모두 여기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밝히고 문수보살은 지수보살에게 다시 이어 설시說示 하십니다.
“불자이시여, 만약 모든 보살이 그 마음을 잘 쓴다면, 곧 온갖 수승하고 묘한 공덕을 얻어 모든 부처님의 법에 마음이 걸림이 없을 것입니다.”
처음 들으면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귀에 바로 들어오지 않아도 됩니다. 이 구절은 되새길수록 깊이가 더해지는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탐·진·치 삼독貪瞋癡三毒과 재·색·식·명·수 오욕락財色食名睡五欲樂, 그리고 편협한 이기주의 에고이즘에 사로잡혀 있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좀처럼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버려라, 놓아라’하는 말을 들어도, 무엇을 버리라는 것인지, 어떻게 놓으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법에 마음이 걸림이 없으며,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도에 머물게 되고, 중생을 따라 머물러 항상 버리지도 여의지도 않으며, 모든 법의 모양을 능히 통달하고, 일체의 악을 끊으며, 모든 선한 법을 구족하게 된다.”고 이어서 이렇게 설說하십니다.
“마땅히 보현보살과 같이 세상에서 제일이 되며, 일체의 행원行願이 모두 구족하고, 일체 법에 자재하지 않음이 없으며, 중생들의 제2도사가 될 것이다.”
여기서 제1도사는 부처님이시고, 제2도사는 보살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무엇을 가리키겠습니까. 결론은 분명합니다.
마음을 잘 쓰면 온갖 수승하고 오묘한 공덕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행품」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핵심이며, 수행의 정답입니다.
수행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문수보살은 이어 “불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그 마음을 잘 쓴다면, 곧 온갖 수승하고 묘한 공덕을 얻어 모든 부처님의 법에 마음이 걸림이 없을 것입니다.”
보현보살의 행원이 설해집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수행자의 길이 결코 직선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처음 문수보살을 만나 출발했지만, 모든 선지식을 차례로 만나고 나서 다시 문수보살에게로 돌아옵니다.
이는 돌아온 것이 아니라, 온전히 돌고 돌아서 본래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고무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다가 터지는 순간, 안과 밖의 구분이 사라지듯이, 선재동자의 분별과 견해가 터지면서 보현의 행원이 드러납니다. 그것이 바로 보살행의 완성입니다.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서 “모든 공양 가운데에는 법공양法供養이 가장 으뜸이다.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들을 거두어주는 공양,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하는 공양, 착한 선근을 바탕으로 닦는 공양, 보살의 할 일을 버리지 않는 공양, 보리심菩提心을 여의지 않는 공양이니라.” 이것이 가장 수승한 공양입니다.
이 모든 가르침은 다시 한 지점으로 돌아옵니다. 마음을 잘 쓰는 것, 부모를 효심孝心으로 섬길 때에도, 보시를 할 때에도, 걷고 앉고 말하고 쉬는 일상 모든 순간마다, 그 마음이 중생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정행품」은 출가할 때, 좌선할 때, 걸어 다닐 때, 용변 보고 손을 씻을 때, 걸식할 때, 산림山林에 들어갈 때, 사람을 대할 때, 목욕할 때, 간경하고 예불할 때, 잠자고 쉴 때까지도 서원을 세우는 가르칩니다.
예전에 불교방송 이사회에 갔다가 세면장에서 박완일 거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소변을 보기 전에 손부터 씻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손부터 씻으십니까?” 하고 묻자, “중요한 일을 봐야 하니 손부터 씻어 야지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정행품」의 맑고 깨끗한 정신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서원誓願은 소원所願이 아닙니다. 이타적利他的인 결단決斷이며, 보살행菩薩行의 선언宣言입니다. 우리가 염불하고 예불할 때, 그 형식 하나에도 이 마음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한 생각 가운데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되 분별이 없고, 알고 있으되 시시비비가 없으며, 그 마음을 잘 쓰는 삶에서 「정행품」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르침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라며, 우리 모두가 다 성불하시길 염원念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