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 소설가
텔레비전의‘진품 명품’시간은 참 볼거리입니다.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보존가치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지요. 도자기, 서화를 비롯하여 옛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골동품의 가치라는 것이 참으로 천차만별이며 아주 뜻밖일 때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나에게는 무엇 진품 명품이라 할 것이 있나 하고 두리번거려봅니다. 하지만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내 놓아 보라 하시면, 있긴 있습니다. 증조부께서 사용하셨다는 안경과 안경집이 있군요. 안경은 돋보기고요, 안경집은 종이로 만든 겉이 까만 타원형입니다. 얼마나 값이 나갈까요. 사진도 남아 있지 않는 증조할아버지를 생각하여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 하나, 생존해 계신 아버님의 평생 사주 풀이를 들라면 들 수 있겠습니다. 두루마리를 펼치면 한 서너 자 정도의 길이에 세로글씨로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쓴 사주풀이지요. 죄송합니다. 그 또한 무엇 값이 나가겠습니까.
몇 해 전의 일이었습니다. 친구 아무개가 텔레비전에 나타난 겁니다. 도자기로 만든 필통을 가지고 의뢰인으로 등장한 거였습니다.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습니다. 사대부가의 소장품임에 틀림없었을 그 도자기 필통은, 문외한의 눈에도 아주 오래 된 명품으로 보이던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건 진품이자 명품이었습니다. 하나 둘 셋에 전광판에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올라갑니다. 들입다 올라갑니다. 쉬지 않고 올라갑니다. 짠, 5억! 이었습니다. 와우.
저 물건이 내 소장품이라면 당장 팔아 빚부터 갚고 나머지는 예금해두고 궁색을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이 한심한 소설가의 느낌이 그러했습니다. 저 두 손 안에 들어올 작은 물건이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는단 말이지! 참으로‘놀랠 노’자가 아닐 수 없었지요. 친구의 아버지께서 제3공화국 시절 장관 한 자리 하셨던 분이었는데, 막내아들에게 남긴 유품의 값어치가 그러했습니다.
으음, 괜히 마음 산란케 할 것 없이 옛 이야기 하나하렵니다. 일휴(一休)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스님이 어릴 때부터 매우 총명했더랍니다. 커서 선풍을 드날려 이름을 얻은 선사인데, 행자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그가 모시던 큰스님은 당신의 찻잔을 무척이나 아꼈다지요. 때때로 그 생김새를 음미하며 즐기곤 하셨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스님 방을 청소하던 어린 일휴가 그만 그 찻잔을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가슴이 내려앉은 일휴는 대책이 서질 않아 안절부절 못할 따름이었겠지요. 그런데 외출했던 스님이 돌아오는 기척이 들렸습니다. 그때 한 생각이 일휴의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일휴는 깨진 찻잔을 등 뒤에 감추고 자리에 앉은 스님을 향해 물었답니다. “스님, 사람은 왜 꼭 죽어야만 하나요?” “그거야 자연의 법칙이 아니더냐. 몰라서 묻는 게냐?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는 마침내 죽음이 있기 마련이거늘.” 이에 일휴는 무릎을 꿇고 뒤에 감추었던 깨진 찻잔을 내보이며 말했답니다. “오늘, 큰스님의 찻잔이 그 때를 맞은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입니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게 마련입니다. 비슷한 말로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만난 모든 것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모두 만고불변의 진리를 나타낸 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집착하지요. 이 권세, 이 사랑, 이 미모, 이 명예가 영원할 거라고 믿는 듯이 살지요. 여기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에 전해 오는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요. 아무개 장군이 있었답니다.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천하의 명장이자 맹장이었다지요. 그런데 이 장군에게는 목숨처럼 아끼는 골동품이 하나 있었답니다. 두 손안에 꼭 들어오는 도자기 찻잔이었는데, 그 아름다움이 참으로 명품이자 진품이었답니다. 장군은 피투성이 전선에서 돌아와, 또는 일상의 번뇌에서 돌아와 그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고는 했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장군은 차를 마시다 무슨 생각 끝에 그만 찻잔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찻잔은 깨지지 않고 찻물만 쏟아졌습니다. 장군은 찻잔을 주어 올리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그때 한 생각이 장군을 가격했더랍니다. ‘무엇이! 내가 천군만마와 함께 전쟁터에서 죽음과 마주해서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는데, 이 따위 찻잔 하나에 마음이 이리도 놀라다니!’ 장군은 벌떡 일어나 찻잔을 뜰의 바위에 던져 깨어 버리고 말았더랍니다. 대도(大道)는 애증(愛憎)을 없애야 명백(明白)해진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좋고 싫음에 매어 있다면 대도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네 일상도 마찬가지지요. 우리가 집착하는 그릇들이 어디 하나 둘입니까?
그런데 돌아보면 참으로 버리기 아까운 그릇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요. 어쩌란 말입니까. 어쩌긴 어쩝니까. 살면서 하나 둘 집안에 들인, 내 마음의 창고에 들인, 그 그릇들 좀 정리하고 갑시다. 어떻게요? 접시를 깨자니깐요. 그것이 설령 진품이자 명품일지라도, 아, 내 생명과 바꿀 수는 없는 것들 아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