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한민족운동단체연합 기획실장
나는 아직 불교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아니 아주 모른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누군가 너는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그냥 불교 성향이라는 말이 나의 종교관에 대한 전부일 것이다. 청소년 시절 동네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나가 기독교 신앙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성가대 활동을 통해 봉사 활동에 참여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학생활을 하면서 나의 종교관은 바뀌게 되었고, 그간 체험하지 못하고 해소 할 수 없어 갈증을 느꼈던 부분의 물음에 대한 답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나는 2005년 10월 3일 교통사고를 당하여 약 5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입원 기간 중 나는 잘 아는 형님으로부터「천수경」과「금강경」두 권의 책을 선물 받았 고, 그냥 읽어보라는 형님의 권유에 시간 나는 대로 두 경전을 수시로 접하게 되었다.
뜻도 모르는 나에게 소리 내어 읽어 보라는 형님 말씀에 나는 보름여를 그냥 읽기를 반 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간 아프고 답답했던 나는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경추와 요추를 다쳤던 나는 목에 깁스를 하고 매일 매일 물리치료와 약물치료 를 병행하였고, 퇴원 이후에도 한동안 고생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무색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 약물치료는 중단할 수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던 것일까? 나는 이유를 알 지 못한 채 반복된 생활을 하였고, 퇴원한 이후에도 경전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처음엔어색했던경전읽기가 이제는뜻을새기면서읽을수있을정도로 발전한 내 자신이 한결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경전을 읽으면서 나는 또 다른 스승님들을 만날 기 회도 많이 주어졌다. 물론 경전을 소개해주신 형님의 소개로 몇몇 사찰을 찾아 스님들 을 만나 뵐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스님들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이전의 내 생활 에 대한 자아 성찰의 기회와 함께 앞으로 전개해 나갈 내 삶의 지표가 되었다.
이전에 사찰을 방문하였을 때 나는 그냥 관광객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의 나는 사찰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대웅전을 찾아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삼성각 또는 나 한전 등을 찾아 기도도할수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냥그렇게 해야할것같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나 자신이 편하고 남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내가 그냥 대견스러운 것 이다.
예전에 나는 나름대로 종교를 분석해 본 적이 있었다. 종교(宗敎)란 글자를 한자로 풀 이를 해 보면 마루 종(宗)에 가르칠 교(敎)자가 합쳐진 말로써 가장 뛰어난 가르침, 근원 또는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옛날 우리 할머님들이 정한수 한 사발 떠 놓고 자손들의 건강과 축원을 기원했었던 것도 종교이고, 옛날 우리 조상들이 태양 또는 특정 사물을 신성시하여 마을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였던 것도 종교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진정한 종교는 사람 사는 도리, 세상 돌아가는 이치, 우주가 굴러가는 법을 깨닫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내가 생각하는 불교는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그것을 밝히고자하는 구함의 행위이지 대 상을 정해놓고 거기에 의지하려는 행위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노스님의 말씀 대로‘불교란 다만 이름일 뿐 특정한 개념의 종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라는 것이 새삼 다시 느껴지는 요즘의 생활이다.
새롭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진정한 자아의 실현과정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 나 나는 이 길을 가게 되었음을 무한히 감사하며 앞으로도 많은 공부를 통해 나를 찾는 훈련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생각난 차에 사찰을 방문하였을 때 느꼈던 점을 몇 가지 말하고 싶다. 이듬해 10월, 사고 이후 나는 강원도와 충청도 그리고 부산 경남 지역의 사찰을 20여 군데 정도 방문 하였다. 다는 아니었지만 방문하는 사찰마다 한창 불사가 진행 중인 곳이 많았다. 그러 나 방문객을 위한 시설과 불교에 대한 안내 자료는 표지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불교라는 특성이 자아의 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그런 것인
가? 나는 의아했었다. 아는 사람은 그냥 예법을 따르고, 모르는 방문객은 그냥 입장료내고 구경만 하고 가라는 것인가? 이는 참 불교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불사가 진행 중이니 주춧돌이 얼마이고, 기왓장이 얼마이며, 등을 밝히면 뜻하는 바 가 성취될 것이라는 안내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새 집을 지었을 때 제자들이“스승님, 방문하는 사람들과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 이 갈수록 많아지는데 기왕 집을 지으시려거든 크게 지어야 했었던 것 아닙니까?”하고 물었 다. 이때 소크라테스는“너희들과 나의 말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의 믿음으로 이 집을 가득 채울 수 있겠느냐?”는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찰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조금 더 많은 중생들이 구제를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좋 으면 남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배려의 마음이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생각한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웅전의 규모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사찰의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 인가? 하물며 집을 방문한 사람에게도 가족을 인사시키고, 집 구경을 시켜주는 것은 인지상 정일 것이다. 사찰을 방문하는 중생들에게 불교의 진정한 의미를 전파하고, 깨달음의 기회를 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사찰의 입구에 안내표지와 함께 사찰의 역사와 불교를 전파할 수 있는 안내 자 료의 상시 비치는 방문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깨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 상 불교는 집안에서만 그리고 끼리끼리만 어울려서는 안 된다고 본다. 사회의 기초 질서가 흔들리고, 위아래가 없어지는 요즘의 세태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불교는 그리고 불자는 나 혼자만의 깨우침과 수행에 그치지 말고,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선구자적 자세가 필요하다.
좋은 책을 선물하고, 스님들의 법어 테이프도 돌려 듣고, 사찰을 방문할 때 주변 사람들과 같이 하자. 불자는 불자대로 주변을 포교하고, 사찰에서는 사찰 나름대로 방문객을 위한 포 교의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여야 한다. 불교는 종교이기 이전에 진리 그 자체임을 많은 사람 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느 날 문득 우연한 계기에 불교에 귀의하게 된 나 자신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스스로 였다면이맛있는 밥과 반찬을내가언제먹어볼수있었겠는가? 참나는꼭내게서만찾아 지는 게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도 잘들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변 에 더욱 더 관심을 기울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진정한 자유인의 길은 나 혼자가 아닌 우리  가 같이 가는 그러한 길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