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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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미소 짓고 진달래는 피어나고

박 상 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어느 시인의 시였는지 수필이었는지 “개나리 피었다는 편지를 받고 진달래 한창이란 답장을 냈소” 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정확한 내용은 혹 다를 수도 있다.
살던 시골 마을 동네 어귀에 그냥 그렇게 피고지고 했던 꽃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기억에 떠오르면 그 한 생각을 따라 덩굴처럼 생각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 생각의 덩굴은 친구 아무개로 이어지고 기차를 타고 서울로 따라오고 발걸음마다 따라오는 적도 있다.
당나라의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王維의 시를 감상해본다.

君自故鄕來 군자고향래
應知故鄕事 응지고향사
來日倚窓前 래일의창전
寒梅著花未 한매저화미

그대는 고향에서 왔으니고향일을 알고 있겠지떠나오던 날, 비단 창문 앞에 서있는매화의 꽃잎이 피었더냐 안 피었더냐


첫째 줄 군君은 ‘임금 군’인데 여기서는 ‘그대’, ‘당신’의 의미이다.
자自도 보통 ‘스스로 자’로 쓰이지만 지금 이 문맥에서는 ‘부터’ 자이다.
셋째 줄의 래일來日은 오늘 내일 모레의 내일이 아니고 ‘오전 날’이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고향을 자주 찾아가기 힘든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가기 싫어서가
아니고 생활의 리듬이 어쩌다보니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향에 가본지가 제법 세월이 흐른 어떤 사나이가 마침 고향에서 막 올라온 옛날 친구를 만난다. 그 때 고향의 매화꽃이 꽃잎을 피웠는지 물어보고 있다. 이 매화꽃은 단순히 그 매화꽃이 아니다. 그 매화의 꽃잎 한 장에는 동네 어르신들의 안부가 들어있고, 옆의 꽃잎
한 장에는 어릴 적 친구들의 얼굴이 들어있고, 실개천과 앞산과 골목길과 사실은 고향전체가 그 매화꽃에 들어있다. 어쩌면 매화꽃도 그 사나이가 몇 년째 고향에 얼굴을 비치지 않아서 안부가 궁금한지도 모른다.
전국의 앞산 뒷산 먼 산 가까운 산에 진달래가 피어날 것이다.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도 진달래가 핀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꽃잎마다 스며들고 새벽 달빛이 꽃가지에 스며들 것이다.
청령포는 조선의 단종 임금이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단종이 지은 시가 있다.


一自.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何奈愁人耳獨聰 하나수인이독총


원한 맺힌 새가 한 번 왕궁에서 쫓겨난 뒤로 외로운 몸에 그림자 하나푸른 산중에 깃들었네.밤이면 밤마다 잠을 이뤄보려 하지만잠은 이뤄지지 않고해마다 해마다 한을 삭혀보려 하지만한은 삭아들지를 않네.
소쩍새의 울음소리 새벽 묏부리에 끊어지고 새벽 잔달의 달빛이 히끄므레 빛나는데피맺힌 울음소리가 봄 계곡을 흘러서 낙화로 떨어져 붉게붉게 피어나는구나. 하늘도 귀가 먹어서오히려 애달픈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어찌하여 근심을 끌어안은 사람만귀가 홀로 밝던가.


원한 맺힌 새는 소쩍새이다. 소쩍새는 국화를 피우기 위해서 울기도 하고 그 울음소리는 산천을 붉게 덮는 진달래와 철쭉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또 소쩍새는 우짖는 새이기도 하면서 단종 자신이다. 단종 소쩍새는 새벽이 올 때까지 산에서 울고 단종은 방안에서 자신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그 울음소리가 새벽마다 진달래로 피어나 계곡을 흐른다.
밤마다 잠이 올 리 없다. 그래도 잠을 이루려 애를 써본다. 애를 쓰면 쓸수록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고막의 달팽이관을 선명하게 두드린다. 그 가슴속에 스며든 한이 어이 쉽게 녹아내리랴. 한을 녹여 보려하면 할수록 한은 새록새록 불어난다. 그렇게 꼬박 뜬 눈으로 지새다가 새벽이 올 무렵이면 문득 소쩍새 울음소리가 뚝 그친다. 산에서 우는 소쩍새 울음소리는 그치지만 단종의 가슴속에 메아리치는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질 뿐이다. 점점 소리가 커지면서 가슴 속 ‘한’의 세포를 증폭 증식시킨다. 그 한의 에너지가 앞산 뒷산 자락으로 입체적으로 동심원을 그리면서 퍼져나간다. 바위에 부딪히면 바위 아래에서 진달래로 피어나고 언덕에 부딪히면 언덕 아래에서 철쭉으로 피어난다. 하늘은 히끄므레 들은 체 만 체 가만 있다.
다시 돌아오는 메아리 한으로 가슴이 더 미어지는 단종 홀로 소쩍새의 메아리 울음소리를 들을 뿐이다.
얼핏 이 시를 읽으면 시가 슬프고 애절하다. 다시 읽어 보면 슬픔과 한을 객관화시켜 바라보고 있는 단종의 눈망울이 보인다. 물론 눈물이 맺혀있고 하다. 자세히 보면 정제된 눈물이다. 소쩍새의 울음소리와 가슴속의 한이 투명한 눈물로 정화되어 흐르고 있다.
산자락을 바라보면 이제 진달래 꽃잎의 빛깔이 슬픈 빛깔이 아니라 생동하는 빛깔이다. 달빛과 산빛 전체와 어우러져 바라보는 이의 가슴은 따뜻한 이슬로 씻어준다. 이 대목에서 ‘참이슬’을 떠올리지는 말자.
목정배 선생님께서 입적하셨다. 호방한 파이프도 함께 입적했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보여주시던 파안대소도 열반에 들었다. 즉석에서 시를 지어주시고 그림을 그려주시던 분은 세상을 떠나셨다.
전광석화처럼 영감을 일깨워주는 강의가 마냥 그립다. 호쾌한 직설화법의 말씀을 이제 어디서 들어야 하나.
허나 다시금 생각을 가다듬어보면 여전히 별빛으로 달빛으로 가로등 불빛으로 영감을 일깨워주고 계신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로 스치는 바람소리로 강의를 들려주시고 있다.
매화는 미소 짓고 진달래는 환하게 피어나고 소쩍새는 건강한 울음소리를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