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불교에서 계율戒律이 갖는 의미는 그 어느 것보다도 크고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계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착한 습관과 착한 성향, 착한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즉 계라는 말은 윤리 또는 도덕적인 의미로서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지켜야 할 오계五戒를 예로 들어본다면, 불살생不殺生은 생명존엄의 윤리로, 불투도不偸盜는 올바른 경제윤리로, 불사음不邪淫은 건전한 성윤리로, 불망어不妄語는 올바른 언어윤리로, 그리고 불음주不飮酒는 건전한 음주윤리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불자들이 계를 지킨다는 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법구경法句經』 「칠불통게七佛通偈」에 보면 이러한 계율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며
자정기의自淨其意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라.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뜻을 맑게 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여기서 ‘제악막작’은 나쁜 업은 그 어떠한 것도 짓지 말라는 금지적 조항을 의미하는 것으로, 달리 좋지 않는 나쁜 가치의 모든 것을 끊는 실천을 말합니다. 또 ‘중선봉행’은 착하고 좋은 일은 반드시 행하라는 권장의 조항을 의미하는 것으로, 좋은 것의 가치를 더 좋게 하는 지계의 적극적인 행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정기의 시제불교’는 계의 취지를 드러내는 말씀이라 할 수 있는데, 즉 나쁜 행위는 일체 하지 않고 착하고 좋은 것만 받들어 실천하면 마음이 청정해져서 결국 우리 불자들의 궁극의 목표인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를 실천하고 또 실천해가면 결국 우리의 마음을 무구청정無垢淸淨의 상태로 이끌 수 있으며, 이러한 청정심은 곧바로 반야지혜를 드러내고 결국 성불의 길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법이 잘 지켜지는 가운데 윤리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불교가 발전하려면 계율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불교교단이 화합할 수 있고 대사회적인 실천의 장도 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드시면서 ‘교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을 것’을 재삼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이 땅에 부처님의 바른 법이 영원히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길은 오직 계율의 확립 이외에는 없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계율을 지키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요, 대사회적으로는 자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라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불교적 삶이 자연스럽게 실현되고 진정한 의미의 전법교화도 가능해진다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