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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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도 농사를 지으셨다

 



정성운
텃밭농부


아무래도 농사는 가장 아래에서 생명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시대가 바뀌어 4차산업 운운하여도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먹고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한 것인데, 지금은 파장한 시골장터에 날리는 비닐봉투처럼 스산한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 몸의 구조가 로봇처럼 바뀌지 않는 한 농사는 여전히 천하지대본이다.   
부처님이 사셨던 당시의 수행자들은 생업을 위한 일을 하지 않았다. 농사도 짓지 않았다.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기 위함이었으며, 노동과 교역 등의 과정에서 부득이 발생하는 살생과 이득을 챙기려는 욕심을 내는 등의 악행을 저지르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인도 사회는 수행자들에게 불살생의 덕목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분위기였으며, 이에 여름철에 안거를 나도록 한 것이다. 의도치 않는 살생조차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수행자들은 재가불자들의 보시에 의지해 먹고 입고 수행했다.


나도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부처님께서도 농사를 지으신 일이 없다. 그런데 부처님은 “나도 논밭을 갈고 씨를 뿌려서 먹을 것을 얻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경전경耕田經’에 나오는 얘기다. 농사에 빗대 수행의 의미를 말씀하신 경전인데,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살라의 아카나알라 숲속에 계시다가 걸식을 나갔다. 바라드바자 바라문의 밭에 이르렀다. 바라드바자는 밭을 가는 쟁기가 오백 개에 이를 정도였다. 요즘으로 치면 대농이었다. 바라문은 부처님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가시가 박힌 질문을 했다. 
“고타마시여, 나는 지금 밭을 갈고 종자를 뿌려 그것으로 먹고 살아갑니다. 고타마께서도 밭을 갈고 종자를 뿌려 그것으로 자시고 살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또한 밭을 갈고 종자를 뿌려 그것을 먹고 살아갑니다.”
“나는 사문 고타마님의 보습도 멍에도 목사리도 고삐도 호미도 채찍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믿음은 씨앗
고행은 때맞춰 내리는 단비
지혜는 쟁기를 끄는 멍에
부끄러워하는 마음 끌채가 되네.
바른 생각으로 스스로 보호하면
이것이 곧 훌륭한 몰이꾼
몸과 입의 업을 잘 단속하고
알맞은 양만큼 먹을 줄 아네.
진실을 진정한 수레로 삼고
즐거이 머무르되 게으르지 않으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거칠음 없애고
안온하면서도 빨리 나아가며
되돌아오는 일 없이 곧장 나아가
근심이 없는 곳에 이르게 되네.
이러한 농부 감로 열매 얻고
이러한 농부 어떤 존재도 다시 받지 않네.


위 게송의 앞부분, ‘믿음은 씨앗이며, 고행은 때맞춰 내리는 단비, 지혜는 쟁기를 끄는 멍에, 부끄러워하는 마음 끌채가 되네’라는 부분이 유독 마음에 담긴다. 밭을 일궈 씨앗을 뿌리고, 단비를 기다리고, 김을 매는 농사의 구체적인 행위를 수행의 요소와 이어주기 때문이다. 이 인연으로 바라드바자 바라문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아이들의 배를 불리는 일이 천하의 근본이다!


지난 1, 2월 두 달 동안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점심밥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을 위해 돌봄교실을 여는데, 한 학교당 인원이 50명 안팎이니 급식실을 운영하지 않는다. 대신 인근의 급식업체를 통해 점심을 해결한다.
밥 배달을 하면서 마주친 것은 밥상이 차려지기까지 많은 이들의 고된 노동이었다. 조리사들은 아침 6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했다. 채소를 다듬고 데쳐 반찬을 만들고,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일은 상노동이라 할만하다. 밥 먹는 점심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 무거운 식재료를 날라야 한다. 밥과 반찬이 만들어지면 그릇에 담아 학교로 보내는데, 이 과정도 쉽지 않다. 밥통과 국통, 반찬통을 차에 싣고 내리는 일은 단순하지만, 그 무게가 어깨와 무릎과 허리와 등짝을 짓누른다. 식재료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단계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의 근육과 뼈를 부리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들이다. 그러니 먹을 것의 무게는 재어보지 않아도 안다. 천근만근이다. 
밥 나르는 일은 참으로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온몸이 뻐근했다. 아르바이트를 마칠 때까지 근육통에 시달렸고, 내 몸은 끝내 밥 배달의 노동에 적응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먹는 밥을 날라다주는 일이었으니, 큰 선업을 쌓았다고 내 몸을 다독였다. 아이들의 배를 불리는 일이 천하의 근본이여!


3월아 반갑다


겨울은 길고 어둡고 추웠다. 겨우내 밭에 가지 않았으니 생기를 잃었다. 그러니 어찌 저 봄볕을 반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3월아 반갑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난 지 한참이고,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앞두고 있으니 마침내 봄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도 북서에서 남동으로 크게 틀었다. 응달진 귀퉁이의 흙에는 서릿발이 서려있지만 봄볕에 겨운 땅은 촉촉해져 씨앗을 품을 준비를 마쳤다. 흙 아래에서는 씨앗과 벌레들이 꿈틀거린다. 내 발바닥을 간질이는 듯하다.
지난주에야 밭에 나갔다. 두 달 만이다. 밥 배달을 하지 않았으면 열 번도 더 밭에 나갔을 것이다. 거름을 흩뿌려주고 얕게 갈아주었다. 이렇게 해야 거름과 흙이 뒤섞이고 잡초의 자람이 억제된다. 지난해 11월에 뿌려놓은 호밀은 손가락 길이만큼 자랐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초록의 융단이다. 이제부터 하루가 다르게 쑥쑥 키를 키울 것이다.
밭에게 인사를 했다. 동서남북을 향하여 합장반배하고 ‘겨우내 평안하셨는지요, 올해도 재미나게 지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힘껏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서도 두 손을 모았다. 나만의 간단한 의식이다. 평상시에는 더 간단하다. 밭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왔습니다, 갑니다’ 하며 합장 반배한다. 이런 의식 아닌 의식을 치르는 것은, 작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어느 농부의 얘기를 듣고 부터다. 고운 말을 건네준 작물이 잘 자란다는 것인데, 이 농부는 자기의 말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들었던 얘기라고 전해주었다. 
탑돌이 하듯 밭을 한 바퀴 돌았다. 냉이가 돋아났고, 도랑 옆 손바닥만한 미나리꽝의 미나리는 새순을 삐죽이 내밀었다. ‘냉이와 미나리가 봄을 애타게 기다렸구나. 아직도 찬바람에 목덜미가 시린데 저것들은 벌써 봄맞이를 하고 있구나.’ 내 밭의 첫 맛은 냉이와 미나리다. 대파도 새순이 나왔다. 누렇게 말라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 자리에서 순을 올리고 있다. 부추도 손가락 한마디쯤 순을 내밀었다. 이런 푸성귀들로 인해 내 밥상은 싱그럽고 풍성해질 것이다. 뜬금없이 도종환 시인의 「다시 오는 봄」이 떠올랐다. 추위와 어둠을 이겨낸 여린 초록의 싹을 향한 예찬이다.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