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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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반야야禪者般若也

현재호
연세대학교 의료공학 박사과정|여래사 거사림회 총무이사|blog.daum.net/hyun-jaeho


“이 몸 이때 못 건지면 언제 다시 건져 보랴” …… 《선가귀감 . 22》
이번 호에서는 지난 3월호에서 언급 된 ‘업자무명야’의 업자業者와 반대되는 선자禪者에 관한 것으로, 반야지혜로 업보를 능히 (수긍하고) 이겨낸다는 의미인 ‘선자반야야’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에 마땅히 ‘선자禪者’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설명하여 점점 선禪에 가까이 가보고자 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점점漸漸’(차츰차츰)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불교에서는 배움의 ‘이해와 실천’을 ‘돈頓’과 ‘점漸’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돈頓’은 배움에 있어서 한 순간 내 머리 속으로 들어 왔다는 의미로서 ‘이해’되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이해가 되는) 그 순간 온몸에 퍼진다(돈발頓發)는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그리고 ‘점漸’은 그렇게 이해 된 것이 자기 몸에 배어 실천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차츰차츰 반복하여 점점 익혀 나가야 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돈頓’과 ‘점漸’은 이해에 그치지 말고 반복하여 생각하고 실천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자신이 아는 것은 어떤 선사 또는 대사들의 선문답이나 그들이 제자들과 나누었던 대화 또는 부처님 일대기의 일화들을 외우고 있을 뿐, 딱히 불교를 설파 할 만큼 진리가 충만 되지 않았음을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실천(점漸)이 따르지 않는 이해(돈頓)는 그저 알음알이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총명부능적업聰明不能敵業 …………………………………·총명함으로 자신의 업보를 이길 수 없고
건혜미면고윤乾慧未免苦輪 …………………………………·건성으로 얻은 지혜로는 윤회의 고통을 면할 길 없으니
각수찰념各須察念 ……………………………………………··각자 반드시 (자신의 돈발頓發을) 관찰하고 (지혜롭게) 생각하여
물이자만勿以自.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속지 말고 (계속해서 선禪을 닦아야 한다).


1.  공부가 만일 한 조각을 이룬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을 감을 때 나쁜 업에 끌리지 않게 되느니라 …. 《선가귀감-21》
업이란 어두컴컴한 무명이요,(업자무명야業者無明也)
참선이란 반야의 지혜를 밝히는 것이다.(선자반야야禪者般若也)
우리는 ‘일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세인世人들의 기준에서 일생 일대 세 번의 기회란 ‘돈을 벌 수 있는’ 또는 ‘성공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마음의 불성을 고려하는 우리 불자들은 다르게 해석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인생의 기회’란 한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이 태어난 세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은 그 세상 속에서 왜 태어났는지,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이른바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세 번이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 다른 동물보다 깨달음에 도달 할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첫 번째 기회입니다. 얼마나 값지고 감사한 일입니까? 거듭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보아도 아찔할 정도로 감사한 일입니다. 인간은 자연 속의 동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진리를 배우고 익히고 실천할 수 있는 개체 아니겠습니까? 더 이상 무슨 기회를 원해야 하나요?
두 번째 : 숱하게 많은 경험들을 통하여 진리를 탐구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합니다. 진정한 경험이란 무엇입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아픔, 슬픔 그러한 고통들입니다. 그러한 고통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기회입니다. 일생에 100번의 고통이 찾아온다고 했을 때, 열 번째 고통이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면 나머지 90번의 고통은 그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게 되거나 가볍게 넘기게 되겠죠. 하지만 그러한 숱한 경험을 깨달음의 기회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이 먹는 만큼 원망의 대상이 하나 둘씩 늘어갈 뿐입니다.
세 번째 : 마지막 기회입니다. 두 번째 기회에 작은 깨침이라도 얻지 못한 사람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지난 날 자신으로 말미암아 힘들어진 대상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을, 털끝만큼의 작은 잘못까지 깊이 참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때, 비록 죽음이 1분 뒤에서 기다린다 하여도 그 순간 깨치는 것입니다. 마지막 기회이지요. 일심즉시무량겁一心卽時無量劫 《법성게》이라 했고,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 《천수경》이라 했습니다. 진심 어린 한 생각이 모든 죄를 멸滅하고, 업장을 조금이나마 소멸시켜 줍니다.
이와 같을 진데 굳이 세 번째 기회에 깨치기 보다는 두 번째 기회에 깨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깨침 이후의 영화로운 삶을 머리에 그려 보세요. 깨침이란 머리에 뿔이 솟고 몸에서 ‘오라’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것인지? 나는 왜 태어났는지? 내 역할은 무엇인지 알아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삶이 평화롭겠습니까? 그래서 경전을 공부하고 마음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나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깨침도 못 얻었다면, 그래도 열심히 공부를 하였기에 죽음을 넘어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새로이 맞이하는 내세來世에 있어서 더 낮은 차원의 입태入胎를 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낮은 차원 : 축생畜生)


2. 선禪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늘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16가지)
● 네 가지 은혜(四恩)가 깊고 높은 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는가?
네 가지 은혜 : 부모, 나라, 스승 그리고 세인世人들이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
● 사대四大로 된 더러운 이 몸이 생각 생각에 썩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가?
사대 : 물에 젖은 기운   아버지의 정수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 한 방울
         땅의 단단한 기운   뼈와 살
         불의 더운 기운   한 뭉치가 되어 썩지 않고 녹지도 않는 정기와 피
         바람의 움직임  콧구멍이 먼저 뚫려 숨이 통하는 것
그러한 내 몸이 늘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 당연히 올 것을 거부하는 모순된 마음이 습習이 되어 공부(돈頓)와 실천(점漸)을 게을리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 생각이란, 자신만을 위한 생각, 생각을 위한 생각을 말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듯, 생각은 생각다워야 생각인 것입니다. 생각다운 생각이란, 남을 이롭게 하는 생각(이타심利他心), 세상을 위하는 생각들이겠지요. ‘밤새 생각한 것이 벼락맞을 궁리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은혜로운 생각을 하지 않고 의미 없는 생각만 한다면, 온 몸은 더럽게 썩어 갈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린 것임을 알고 있는가?
날숨과 들숨이 불기운과 바람기운이니 내 몸의 공空함과 소중함을 아는가?
●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가?
나에게 악행을 행한 자者가 곧 나를 가르치는 부처요 관세음보살임을 알아채는가?
● 가장 높고 거룩한 법을 들으면서 기쁘고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는가?
인생의 기회가 내 곁에 있음을 알고 진정으로 기뻐하는가?
● 공부하는 곳에 머물면서 도 닦는 이의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일파심계 백과구생一破心戒 百過俱生이라,
계를 어기는 단 한 번의 마음이 수 백 가지 문제를 일으킴을 알고 주의하고 있는가?
● 곁에 있는 사람들과 잡담이나 하면서 지내지 않는가?
법담法談으로 자비慈悲를 실천하지 않고 잡담으로 구업口業을 짓고 있지는 않은가?
● 분주하게 시비를 일으키고 있지나 않는가?
지혜智慧의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망각하고 분별심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지 않은가?
● 화두가 어느 때나 똑똑히 들리고 있는가?
무엇을 보고 듣던, 그것이 수행을 위한 실마리가 되어, 보고 들은 그것과 세상을 견주어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알아채고, 바로 평등성지平等性智의 이치로 세상이 하나임을 단박에 깨치고 있는가?
● 이야기를 할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고 있는가?
법담을 나누는 순간순간에 돈발頓發하여 그 이치가 명료하게 들리는가? 그리고 그 화두의 결과를 실천(점漸)하겠다는 의지가 샘솟는가?
● 보고 듣고 깨닫고 알 때에도 화두와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가?
육식六識으로 느끼는 모든 것을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을 분리하여 고려하고 그 곳에서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가? (육六: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혹은 몸에 배이도록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가? 사물을 관觀함에 있어서 체상용體相用의 경계境界를 알아채어 그것을 화두로 삼고 해석을 위하여 정진하고 있는가? 존재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실천하고 있는가?
● 제 공부를 돌아보니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하게 되었는가?
‘눈알 검사’를 시도 할 만큼 공부를 하였는가? 불교에는 ‘눈알 검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부가 적당해지면 스승께 ‘눈알’을 검사한다는 것인데요,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눈알은 본디 지식(돈頓)으로서는 바뀌지 않습니다. 진실 어린 실천(점漸)이 뒤따를 때 비로소 눈빛이 바뀝니다. 왜? 실천을 하여야 마음이 바뀌기 때문이죠.
● 금생에 결정코 부처님의 지혜 목숨을 이을 수 있는가?
건성으로 얻은 지혜로는 윤회의 고통을 면할 길 없다고 하였습니다.(건혜미면고윤乾慧未免苦輪) 그나마 공부를 하였다면 인생의 세 번째 기회를 기대 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기왕이면 두 번째 기회를 통하여 금생에 마음의 불성을 찾고 깨침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는가? 지혜의 참 뜻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무분별지無分別智 : 세상을(사물을) 분별하지 않는 지혜
대원경지大圓鏡智 : 크고 둥근 거울에 비친 모습이 하나가 되듯 다른 세상이란 없다는 지혜
평등성지平等性智 :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른 속성을 갖는 것은 없음을 알아채는 지혜
묘관찰지妙觀察智 : 그런 지혜들을 바탕으로 세상을 신묘하게 관찰 할 수 있는 지혜
성소작지成所作智 : 신묘한 관찰을 통하여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지혜
● 앉아 눕고 편할 때에 지옥 고생을 생각하는가?
사성제四聖諦에 있어서 고제苦諦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가? 그리고 삼고三苦(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를 받아들이고 그로 인하여 깨달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편리함을 추구하여 고苦를 멀리하고 피하는 행위(신구의身口意)가 내세來世에 지옥에 떨어질 만큼의 엄청난 악업을 쌓는 일임을 알고 있는가?
● 이 한 세상 이 몸으로 반드시 윤회를 벗어나게 될 것인가?
각수찰념各須察念 : 각자 반드시 (자신의 돈발頓發을) 관찰하고 (지혜롭게) 생각하여
물이자만勿以自. :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속지 말고 (계속해서 선禪을 닦아야 한다).
금생의 공부로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 윤회를 끊겠다는 확고한 다짐으로 정진하고 있는가?
●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세속의 여덟 가지 관심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는가?
① 다른 사람이 칭찬 할 때 우쭐해 하는 마음
② 어떤 사람들이 욕하거나 얕잡아볼 때 의기소침하거나 화내는 마음
③ 성공을 경험할 때 행복을 느끼는 마음
④ 실패를 경험할 때 우울해 하는 마음
⑤ 부富를 얻을 때 즐거워하는 마음
⑥ 가난해 질 때 낙담하는 마음
⑦ 명예를 얻을 때 즐거워하는 마음
⑧ 명성을 잃을 때 우울해 하는 마음
3. 선자禪者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온전하고 멋진 삶을 위한 6가지 생활 - 정진법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노력하기 /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기 / 날마다 반성하기 / 살아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기 / 남을 위해 선행하기 / 감성적인 고민 하지 말기입니다.
이상 6가지 생활 - 정진법은 일본의 교세라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인 ‘이나모리 가즈오’의 성공철학입니다. 여섯 가지 사항을 아침마다 다짐하고 자기 전에 짚어보는 방식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고 하니, 따라 해서 손해날 일은 없을 듯합니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들이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그저 이론적인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으시길 두 손 모아 고대합니다. 생활 속의 작은 실천(점漸)이 그 말 그대로 점점漸漸 우리를 복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덧 불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정진 또 정진을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