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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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사상, 소통과 행복한 삶을 위한 통찰

김 재 권
동국대 불교대학 전문연구원


우리나라는 최근 한미 FTA 체결 이후 상생과 화합의 정책을 펼치기 보다는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70년대 말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책을 표방하며 무한경쟁의 시장경제 구도에 편입되고 있다. 사실 세계화와 개방화를 부추기는 국제사회의 거대한 흐름을 쉽게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를 초월하여 거대자본의 이윤추구를 대변하는 무한 시장경쟁의 논리는 심지어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사회와 서민들의 생존권인 골목 상권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여 사회 전 영역으로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회 현실은 알게 모르게 사회공동체의 공동선이나 경제정의를 추구하기 보다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는 비정한 사회상황으로 몰고 간다.
그런데 요즈음 서점가를 둘러보면 90년대 중반 이후에 시작된 웰빙 붐의 여파가 여전히 느껴진다. 용어는 다소 바뀌었지만 힐링이나 명상 등 마음치유와 관련된 서적들이 자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내린다. 이런 현상은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나 상황들을 나름대로 지혜롭게 대처하려는 개인적·사회적 노력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심신이 왠지 피로하고 어디선가 따뜻한 삶의 위안을 갈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최첨단의 기술이 도입된 정보통신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의 현실은 소통부재와 소외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들어 인문학 콘서트, 힐링과 관련된 명상치료 프로그램이나 템플스테이 등이 사회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현실과 이상 속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일찍이 여러 종교학자들이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거의 유명무실 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지만,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소외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들의 삶에 위안을 제공하는 종교의 생명력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지속될 것이다. 특히 인간의 심리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불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서구에서 그래 왔듯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거나 지혜의 종교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불교가 지혜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분석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하여 종교적인 면보다는 철학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무튼 불교는 개인이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는 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구제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종교라고 불린다. 또한 인도철학 전반의 특징이 그러하듯이 불교도 인식론, 존재론, 그리고 윤리학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기에 철학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서구의 어떤 종교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은 종교나 철학을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종교나 철학 어느 영역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종교나 철학은 서구적 개념에서 유래한 용어로 불교를 종교라고 부르던지 철학으로 부르던지 두 측면을 모두 지니고 있기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명상의 붐이 일거나 마음치유 등의 힐링 열풍이 일어난 것은 서구에서 우울증 등의 심리치료에 초기불교의 위파사나 수행을 접목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 등이 소개되면서부터이다. 특히 서구에서 먼저 시작된 불교와 심리학 또는 의·과학 등의 만남은 불교의 외연을 넓혀 주었다. 어쩌면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현대인들에게 불교가 어필하고 있는 점은 종교적인 측면을 초월하여 심리학적인 측면이나 수행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마음의 위안을 제공하는 요소를 상당히 많이 지닌 까닭일 것이다.     
불교의 사상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자아를 부정하는 무아無我를 표방하는 데 있다. 무아란 욕망이나 행위의 주체로서 ‘나’라 내세울 만한 것이 어디에도 실체적으로 없다는 말이다. ‘나’라고 하는 것은 단지 관념일 뿐이고,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무아사상은 깊은 수행체험에 근거하여 천명한 붓다의 가르침이자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인간이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명無明 즉 어리석음에 근거한 집착 때문이다. 이러한 집착은 부지불식간에 자아가 있다는 생각에 기인한다.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도 이러한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아가 있다는 관념에 기인한 것이다. 바로 ‘나’라는 생각 때문에 집착이 발생하고, 자신과 타자를 배타적으로 구분하고 차별하는 마음도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사고는 아집이나 독선을 낳아 결국 개별적 고통의 문제나 사회적인 소통에 장애를 초래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나’라는 생각이나 관념을 제거해주는 붓다의 가르침을 오온설이라 한다. 오온설은 일반적으로 색, 수, 상, 행, 식의 다섯 가지 모임을 일컫는다. 여기서 색이란 육체를 포함한 물질현상, 수란 고통이나 괴로움 등의 느낌, 상이란 개념, 행이란 의지작용이나 심리현상들, 식은 분별이나 판단을 의미한다. 이러한 오온은 연기적 현상으로 그것을 임시적으로 자아라고 부른 것일 뿐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오온은 비유적으로 각각의 구성요소가 물거품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환영과 같아 실체가 없다는 식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결국 오온설의 핵심은 바로 고정 불변하는 실체적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다. 자아란 단지 고정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다섯 요소들의 임시적 모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 또는 통찰이 바로 오온무아설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이다.
그런데 오온을 자아로 착각하거나 집착하는 것을 일컬어 ‘오취온’이라고 명명한다. 즉  ‘오취온’이란 오온이 인연을 따라 생멸하는 연기적 현상임을 바로 통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오온을 고정 불변하는 자아로 집착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인의 고통은 물론 나아가 사회적인 소통에 근본적인 장애를 초래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는 오온을 오온일 뿐이라고 자각하는 ‘오온·무아설’과 상반되는 표현이다.
요컨대 오온무아설이 천명하고 있는 것은 자아란 관념일 뿐이고 집착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초기불교의 무아사상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근원을 밝혀주는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오온무아설이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 즉 이 순간, 살아 숨쉬고, 생명이 존속하는 한 존재하며, 만져지고 느껴지는 현상적인 자아마저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현재 이 순간에 지혜롭고 여유롭게 자신을 관조하여, 올바른 삶과 행복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오늘날 현대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서도 갈수록 정신적으로 각박해지고 나약해지는 것은 자아에 대한 이러한 깊은 통찰과 타자를 함께 배려하는 상생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초기불교의 무아사상은 개인과 타자, 개인과 사회, 종교와 종교 간,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 등 현대사회 전반에 만연하는 갈등양상이나 문제들을 비추어보고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만은 않다. 이치상 그러할 뿐,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정치사회나 욕망이 지배하는 우리 인간사회 내부의 부조리한 현실은 단순한 종교적·사상적 구호 등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불교의 무아사상으로 우리 사회를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꾸어 보자는 주장은 자칫 구두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신이 먼저 지혜롭고 올바른 자아관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벗어버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라는 물음이나, 최근에는 진화론적 유전학까지 가세하여 인간의 유전자는 본래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라는 논쟁들은 공동체적 삶에 대한 여러 성찰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문제를 간과하거나, 인간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나 사회적 부조리들을 환원주의적 결정론의 관점에서 설명하거나 해결하려고 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하지만 초기불교의 무아사상은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려니와 사회적 차원에서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 올리고, 공동체의 사회적 소통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시대적 화두로 절실히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