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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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엄경』에 담긴 교리의 범위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宙字卷)에서는 ‘『화엄경』에 담긴 교리의 범위[義理分齊]’를 논하고 있다. 이곳에서 청량 국사께서는 ‘세계의 실상’을 관찰하는 다양한 방법을 네 종류로 요약하고 있다. 이 ‘네 종류의 관찰 방법’은 화엄종의 창시자로 뒷날 추앙받는 두순杜順 법사의 작품으로 알려진 『화엄법계관문華嚴法界觀門』에 처음 등장한다.
우선 ‘법계法界’라는 용어를 알아두어야 하는데, 이는 ‘법法들로 구성된 구분되는 영역[分界]’을 뜻한다. 그러면 ‘법’이란 무슨 뜻일까? 이 말 뜻은 ‘任持自性, 軌生物解 자기의 고유한 성질을 담지하면서,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한 일정한 견해를 내게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법계’는 인간들의 인위적인 해석이나 조작이 개입되기 이전에 우리 앞에 주어진 ‘세상’이다.
다음으로 알아두어야 할 용어서는 ‘관觀’인데, 이 용어는 범어의 ‘위파샤나vipa.an.’를 의역意譯한 것으로, 음역音譯하여 ‘비발사나毘鉢舍那’라고도 한다. 문헌의 형성 시기와 계통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화엄교학에서는 기본적으로 『대승기신론』의 문맥에 쓰인 의미로 통용된다. 즉, “연연에 따라 생성소멸하는 기능[相]을 알아차림”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법계의 생성소멸을 관찰하는 방법’을 ‘관문觀門’ 또는 ‘관법觀法’이라고 한다.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관찰하는 방법을 화엄교학에서는 모두 4종류로 요약한다.


2.
사법계관事法界觀 :
이 세상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 따름이다. 이것을 필자는 ‘연기구성체(construct-of- dependent-arising)’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이런 ‘연기구성체’로서의 세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 내지는 수단 방법으로 언어화된 개념들의 짝을 10종류로 제시하고 있다. 즉, 교敎-의義, 이理-사事, 경境-지智, 행行-위位, 인因-과果, 의依-정正, 체體-용用, 인人-법法, 역逆-순順, 응應-감感이 그것이다. 
그러면 이런 분석이 철학적으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즉, 우리 앞에 즉자적으로 주어진 ‘세상’을 관찰함에 있어, 열 종류의 ‘짝[待對]’으로 구성된 ‘개념’을 사용하여 관점을 달리하면서 파악해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열 종류의 짝[待對]으로 구성된 개념’을 활용하여, 우리 앞에 즉자적으로 주어진 ‘세상’을 파악하는(또는 보는) 것이다. 세상의 실상 ‘개념’의 수만큼 실재하는 것이고, 또 ‘그것은 ’개념’들과 외연을 같이한다.
이런 방법으로 파악된(또는 본) 내용이 문자의 옷을 입고 불경 속에 정착된다. 그 경전이 바로 『아함경』류이다. 『아함경』의 교리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화엄교학에서는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3.
이법계관理法界觀 :
세상은 모두가 인연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무상하고 공하고 무아라고 우리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관찰이다. 이것을 ‘진공절상관眞空絶相觀’으로도 이름 한다. 이런 관찰을 위해, 두순 법사는 네 측면에서 제시한다. 첫째는 색법[色]은 모두가 공하다[空]고 관찰하는 것이고, 둘째는 공하기 때문에 색법이 존재한다고 관찰하는 방법이고, 셋째는 색법과 공이 원융무애하다고 관찰하는 것이고, 넷째는 색이니 공이니 하는 일체의 개념 활동 자체를 중지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첫째와 둘째는 각각 다시 네 종류로 관점을 바꾸어서 설명이 가능하다. 이 모두를 합치면 10종류로 관점을 바꾸면서 관찰하는 것이 된다.
인간들은 세상을 관찰함에 있어, 신·구·의身口意 3업業의 작용을 매개로, 그것을 뭐라고 규정한다(또는 본다). 이렇게 3업의 작용을 매개로 하여 ‘규정되어진 세상’은 내 쪽에서 구성한 것이지, ‘세상’ 그 자체는 아니다. 연기로 구성된 사태 그 자체가 드러나도록 하게 하기 위해, 선행적으로 해야 하는 행위가 있다. 그것은 즉 3업의 작용이란 ‘공하고’, ‘무상하고’, ‘연기된다’라는 ‘환원행위還元行爲’이다. 물론 이때의 ‘행위’는 무공용無功用의 행위이다. 철저한 무위행無爲行이다. ‘절상絶相’에서의 ‘절絶’ 자가 그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여, ‘개념의 틀’에 갇혀있던 ‘세상’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청량 국사는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에 나오는 일혜보살의 게송을 꼽고 있다.


4.
이사무애법계관理事無碍法界觀 :
‘언어화된 개념’을 활용하여 ‘세상’과 마주하고, 그러자마자 곧바로 ‘언어화된 개념’을 중지하고, 그렇게 하기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세상’이 나에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사법계관事法界觀과 이법계관理法界觀를 변증적으로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이 그 실상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이사무애법계관’이다.
이런 관찰 방법을 활용하여 청량 국사는 많은 경문을 해석하고 있다. 『화엄경』에 나오는 「여래출현품」 법문 한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여래께서 바른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에 부처님의 몸속에서 일체의 중생들이 바른 깨침을 얻는 것을 두루 보셨으며, 나아가 일체 중생이 열반에 드는 것을 보셨으니, 이런 현상들은 모두 본성 동일하다. 그 본성이란 말하자면 ‘본성 없음(無性)’이다.”
한 분의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셨는데, 무수한 중생이 정각을 이룬다니 일상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사무애’의 관찰 방법을 적용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이런 방법으로 파악된(또는 본) 내용이 문자의 옷을 입고 불경 속에 정착되는데, 그것이 바로 여래장 사상을 담고 있는 경전들이다. 역시 이런 교상판석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지만, 화엄교학에서는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5.
사사무애법계관事事無碍法界觀 :
첫째 단계에는 ‘세계를 파악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작동시키고, 둘째 단계에서는 ‘세계를 파악하는 행위’의 무화시키고, 셋째 단계에서는 ‘세계를 파악하는 행위’의 ‘작동’과 ‘무화’를 변증적으로 반복한다.
이제 이곳의 넷째 단계에서는 ‘작동’과 ‘무화’를 변증적으로 반복하는 행위 자체 자체도 쉰다. 쉬고 쉬어, 쉰다는 행위는 물론 생각마저 쉰다. 첫째와 둘째와 셋째가 ‘이론’의 단계라면, 이곳의 넷째는 ‘실천’의 영역이다. 화엄에서는 이것을 앞의 세 관찰 방법에 의해 드러나는 ‘세상’을 ‘해경解境’이라 명명하고, 마지막 관찰 방법에 의해서 드러나는 ‘세상’을 ‘행경行境’이라고 명명한다. 선불교의 문헌에서는 ‘사무사지묘思無思之妙’라도 표현하기도 한다.
화엄교학의 절정은 바로 이 ‘사사무애법계관’에 있다. 그 오묘함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10현 연기十玄緣起’이다. 봉선사의 운허 강백께서는 『불교의 깨묵』(동국역경원, 1972년 초판)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화엄경』에 근거를 둔 사상이란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10현 연기十玄緣起’ 사상이다. 연기라 함은 인연생기因緣生起란 말이니 우주간의 모든 법은 모두 인연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요, 한 가지라도 혼자서 일어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법은 어떠한 일종의 원리로부터 생긴다거나 어떠한 창조의 신이 있어서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연이 서로서로 원인이 되고 조연助緣이 되어서 일어나는 것이요, 무슨 절대 부동하는 주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갑을 주主로 하면 을·병·정은 모두 반伴이 되고, 을을 주로 하면 갑·병·정이 모두 반이 되어서 우주와 만법이 성립되는 것이다. 모든 법은 이와 같이 상즉相卽하고 상입相入하여 주와 반이 중중重重한 연기가 되어, 삼라만상이 일체一體인 동시에 또 이체異體라는 것이니 이런 원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십현연기설十玄緣起說이다. 법장 스님이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장생전長生殿에서 무후를 위하여 10현 연기의 원리를 강설할 때에 무후가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장생전에 장식품으로 놓아둔 금사자를 가리키면서 설명하였더니, 그때야 그 깊은 이치를 이해하였다 한다. 그 때에 설법한 것을 문장화한 것이 유명한 『금사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