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다람살라소식
    꼭 읽어야 할 화엄경
    반야샘터
    사심불심
    사심불심
    불서
    선지식을 찾아서
    산사카페
    인간불교
    건강한 생활

과월호보기

화엄의 바다에서 꽃향의 법문을 듣다

화엄사 카페 ‘다원’에서

이서연
시인


봄바람도 숨어 우는 날이 있었다. 천지에 꽃향을 실어 나르면서도 못내 가슴 쓸어내리는 아픔을 보면 어디에 잠시 몸을 숨겨야 하는 날이 있는가 보다. 국제재난과 다를 바 없는 먹구름이 신록의 하늘을 메울 때 바람은 꽃향을 실어 나르면서도 숨어 우는 듯 느껴졌다.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 가치 있고, 의미가 있다. 당연히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그것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느낌의 흡수력이 떨어지고 감성의 질이 좋을 수 없다. 봄이 완연하여 그 아름다움이 절정이더라도 아포리아에 빠진 사람들에겐 봄기운이 잘 흡수되지 않는다. 사랑이 운명적이라면 아름다움도 시절인연이 닿아야 내게 오는 것이고, 받아들일 가슴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임을 숨어 우는 이번 봄바람이 던져 주었다.
<중암함 가미니경>에 보면 “목숨이 다한 육신은 까마귀와 새가 쪼아 먹고 짐승들이 뜯어 먹거나 혹은 태우거나 묻히어 마침내는 흙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 마음의 업식만은 항상 믿음에 싸이고 정진과 보시와 지혜에 싸여 저절로 위로 올라가 좋은 곳에 나는 것이다.”는 구절이 있다.


누군가가 누구의 명줄, 복줄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업이 그 두 줄을 잡고 있다고 본다. 명줄이 짧게 타고 났다는 사람도 구순을 살고, 명줄 만큼은 타고 났다는 사람도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하는 경우를 봤다. 불안함 없는 인생 없듯이 두려움 없이 마지막을 정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지은 만큼의 업이 목숨의 질과 양을 조절한다는 생각을 하면 봄바람이 굳이 숨어 울 필요가 있겠는가 싶다. ‘생명’은 죽는 걸 두려워할 시간보다 지금 이 순간에 깊게 숨을 쉬는 자체를 감사하게, 아름답게 여기는 가운데 빛나는 법, 지리산 반야봉 화엄사를 찾아간 건 그 생명력을 스스로 건져보기 위해서다.
지리산의 봄향을 품고 서 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역사, 문수, 보현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늘 사찰을 들어갈 때마다 지나는 곳이지만 이번엔 마음을 소독하고 부처님 자리로 들어가는 곳이란 생각에 유난히 온몸으로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에 이른다. 다른 절은 마음을 낮추어 부처님을 만난다는 의미로 보제루 아래로 통과해 대웅전에 이르게 하는데 이곳은 누의 옆으로 돌아가야 대웅전을 보게 되어 있다. 도량 중심에 동서로 두 개의 탑이 있는데 동측탑의 윗부분 보다 한 단 높은 곳에 대웅전이 있고 서쪽탑의 윗부분에 각황전이 있다. 현존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답게 언제 봐도 웅장한 외양만이 아니라 각황전 자체 존재감에 압도된다. 또한 각황전 앞에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석등과 4사자 3층석탑의 고풍스런 분위기에서도 품격있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대웅전 자체도 조선시대 예술의 단아함이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화엄사는 웅장함에서 부드러움과 신비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햇살 한 줌이 각황전 뒤를 받쳐 주는 반야봉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홍매화의 미소를 건드리며 지나가는 듯해 어디서 시작된 기운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어도 그 기운에 마음을 얹어본다. 


하루쯤 정중하게 삶의 비듬 털고 갈까
햇살에 비껴가는 바람소리 마주하다
업연을 다스릴 미소 원통전서 건져본다


하늘이 고요한 건 누구의 작품일까
차별 없고 꾸밈없는 법음만 가득하다
화엄향 따라 삼배하니 각황전이 열린다


한 번 더 오더라도 오늘은 놓고 가라
나한의 묵음처럼 홍매화가 그림 같다
시절이 지나가는 풍경 반야봉에 올려본다


                                -‘반야봉 향훈의 도량’ 전문-


봄은 마치 정해진 규칙처럼 생명의 숨소리를 일으키며 찾아온다. 때로는 설렘을 동반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어디나 마찬가지로 마치 길들여진 하나의 과정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삶의 덫에 걸려 절박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에겐 화사하게 다가오는 봄조차 잔인한 계절일 수 있다. 누더기처럼 상처에 터져있고, 찢어진 가슴으로는 퍼져가는 봄의 기운을 온전히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때론 세상살이에 온 기운이 방전된 사람들에게 한 줄기 봄바람이 감로수가 되기도 한다. 지금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운 고비를 넘기면 또 고비를 맞이하는 시대에 찾아온 봄이 수시로 육근경계에 속고 사는 자신 속에서 무슨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일까. 가끔은 인생 절벽에 섰을 때나 고립된 듯 방향을 잃은 순간이다 싶을 때 잠시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침잠沈潛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산사의 도량을 돌다가 찻집에 들어서면 그곳도 누군가에겐 법당이 되고 또 누군가에겐 안락한 명상처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와 상관없이 차 한 잔 놓고 침잠의 시간을 가져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요즘 산사 카페의 역할이자 매력이다.
누구나 자신의 길을 간다. 그 누구도 답을 알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답이 없는 인생에 스스로 답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게 어찌 쉽겠는가. 융통성 있게 세상에 헤쳐 나갈 지혜가 담긴 아포리즘이 쏟아지는 건 그나마 이 시대를 견뎌낼 작은 샘물 같은 역할이 아닌가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나눌 사람과 찻집 <다향>에 들어서는 순간, 침잠의 시간을 향기로 채워주는 아늑함이 느껴졌다.
녹차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색다른 맛과 향을 느끼며 피로를 풀고 싶어 백향과차와 오미자차를 주문했다. 100가지 향과 맛이 난다고 백향과로 불리는데 열대과일이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생산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쉽게 맛보고 있다. 백향과 차 맛은 봄비에 젖은 봄꽃을 다 포용하고 있는 듯 은은한 향이 깊게 남는다. 봄볕이 내려앉은 창밖을 바라보며 향을 음미하다 보니 찻집의 차분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향기로운 차, 그리고 그 귀한 시간을 나누는 마음과 마음이 곧 봄이 주는 생명의 에너지와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꽃무늬로 봄이 흐르는 날
백 가지 향이 담긴 차 한 잔에
결 고운 시간을 마신다


햇살을 부슬러 만들었을까
비에 젖은 바람의 질감같은 날
생명의 향이 촘촘히 박힌다


                   -‘백향과차를 마시다’-


차를 마시고 화엄사에서 하동으로 19번 국도변에 있는 가로수 길을 드라이브하면서 꽃향의 법문이 펼쳐지는 섬진강의 윤슬을 즐겼다. 봄은 본래 화사하게 보여도 소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을 술렁술렁 소란하게 여기는 것은 봄보다 더 소란한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