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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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 본마음에서 우러나는 좋은 말하기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범망경󰡕의 나오는 가르침을 <심지법문>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이름을 달았을까? 이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문서들의 형태를 알아두어야 한다. 불교의 문서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으니, 이것을 3장三藏이라고 한다. 첫째는 경장이고, 둘째는 율장이고, 셋째는 논장이다.
첫째의 경장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가르침들이다. 이런 문서들에는 끝에 무슨 무슨 ‘경’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내용을 보면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정형적인 말로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모두 믿고 받들어 실천했다”로 끝난다. 많이 알려진 󰡔화엄경󰡕이니 󰡔금강경󰡕이니 하는 문서들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의 율장은 일반 불자들로서는 접하기 어려운데, 󰡔사분율󰡕이니 󰡔십송률󰡕이니 󰡔마하승기율󰡕이니 하는 문서들이다. 출가한 스님들의 공동체 생활에 쓰이는 각종 규칙을 모은 문서이다. 셋째로 논장은 경장이나 논장에 담긴 문서들을 대상으로 설명을 붙인 문서이다. 그러니 ‘경’을 설명하는 논장도 있고, ‘율’을 설명하는 논장도 있다. 󰡔화엄경론󰡕, 󰡔금강경론󰡕 등은 ‘경’을 대상으로 설명을 붙인 ‘논’이다. 그런데 ‘율’을 대상으로 설명을 붙인 논은 따로 독립시켜 문서를 편집하지 않고 율장 속에 함께 편집한다.
그렇다고 책 이름에 ‘경’ 자가 붙었다고 해서 모두 경장(經藏)에 속하지는 않는다. 예외가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범망경󰡕이 그렇다. 이름에 ‘경’ 자가 붙었지만, 그 내용은 ‘율’에 속한다. 또 󰡔육조단경󰡕 이름에도 ‘경’ 자가 붙었지만, 경장(經藏)에 들지는 못하고 대장경 편제상 성현의 문집에 속한다. 그런데도 이름에 ‘경’ 자를 붙인 뜻은 혜능 스님의 말씀을 존중하려고 그랬다. 그러면 󰡔범망경󰡕에는 왜 ‘경’ 자를 붙였을까? 여기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이 설명을 하려고 앞에서 ‘3장’을 언급하여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2.
사람은 모여서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사는데, 이렇게 사회가 형성되어 함께 살게 되면 거기에는 서로 지켜야 할 규칙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크게 의식주를 보더라도, 음식을 먹을 때 서로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다. 예를 들면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든다든지, 동냥아치들은 남의 집 식사가 끝난 다음에 밥을 빈다든지. 집 밖으로 나갈 때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는다든지. 신분에 걸맞게 복장을 한다든지. 남의 방에 들어갈 때는 인기척을 한다든지.
출가 스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스님들의 사회를 ‘승가(僧伽, saṃgha)’라 하는데, 최소 3인 이상 모인 공동체를 뜻한다. 그러니 혼자 사는 스님이란 어법상 불가능하다. 모여 사는 스님들의 생활 규칙은 살아가면서 사안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고쳐지기도 한다. 대중이 모여 살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새로운 규칙이 정해진다. 불교문헌 중에서 율장律藏의 내용은 모두 그런 규칙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범망경󰡕은 ‘무슨 일’이 생겨서 만들어진 규칙이 아니다.
󰡔범망경󰡕은 부처님께서 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마치 여타의 ‘경’이 그렇듯이 말이다. 이 점은 초기 불교의 아함부에 속한 경전들이나 훗날 작가들에 의해 구성된 대승 경전과 비슷하다. 이렇게 여타의 경전과 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 여타의 경들은 소위 대기설법이다. 즉 누군가가 구체적인 인물이 있어서, 그 사람들 제도하기 위해 설해진다. 그런데 󰡔범망경󰡕은 대기설법이 아니다.
󰡔범망경󰡕은 사람의 ‘본마음 자리’에 입각해서, 그것도 법신 부처님의 명을 받아 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본마음 자리’를 한문으로 ‘심지心地’라고 표기한다. ‘심지’에 입각해서 설한 말씀이라 해서 󰡔범망경󰡕을 <심지법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범망경󰡕에 등장하는 여러 행동 준거는 일종의 약속約束이나 규약規約에 따라 만들어진 불자 공동체의 ‘규칙’이 아니고, 인간 보편 심성에 기초한 ‘제안’이다. ‘제안’? 그것보다 더 강한 ‘제시’로서 대승의 불자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강한 요구이자 당위當爲이다.
인간 행동의 당위성을 언급하는 윤리 덕목에는 소위 ‘상호약속’에 의한 것도 있고 ‘규범의식’에 의한 것도 있다. ‘상호약속’의 말뜻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규범의식’이라는 말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모든 평가의 보편타당한 선천적先天的 규준規準의 이상적인 담당자로 상정되는 의식意識을 말한다. 각 종교에서 지켜야 하는 당위적 행위들이 ‘규범의식’에 기초한다. 󰡔범망경󰡕에 등장하는 각종 당위성이 이런 ‘규범의식’에 기초한다. 󰡔범망경󰡕은 대승불교를 믿는 공동체에 한정한 규범 윤리이다. 불자가 아닌 사람에게 강요할 당위성이 없다. 게다가 초기 불교의 성문승들은 수용되지 않는다.
‘상호약속’에 의한 윤리이든 ‘규범의식’에 의한 윤리이든, 각 윤리에는 장단점이 있다. ‘규범의식’에 의한 윤리는, 서로가 공유되는 그런 ‘규범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행동을 요구할 어떤 근거나 이유도 찾을 수 없다. 한편, 약속에 의한 윤리는 서로 약속했으니 그 약속 이행의 의무가 당사자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런데 모든 일을 다 약속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는 단점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규범의식’에 의한 윤리도, ‘상호약속’에 의한 윤리가 공존하게 마련이다.


3.
 󰡔범망경󰡕의 경우는 대승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 사이에는 유효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 이런 특수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범망경󰡕 구성작가는 <심지心地>라는 특별한 발상을 했다. 인간 보편 심성에 기초한 도덕을 제시하려 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근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보편’이 존재할까? 다시 말하면 누구에게나 공통하는 그런 ‘마음자리[心地]’가 있을까? 세상사를 돌아보면, 인간으로 어찌 저럴 수가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흉악한 사건 소식을 접하게 된다.
과연 인간 보편의 선한 마음이 있을까? 그런데 󰡔범망경󰡕의 구성작가는 󰡔화엄경󰡕의 교리에 따라, 인간이면 원천적으로 선한 마음이 있다는 가설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 선한 마음을 잘 기르도록 윤리를 제정한 것이다. 모두 4대목으로 구성했다. 첫째는 <발심하여 불도를 이루겠다는 마음>, 둘째는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 셋째는 <금강석처럼 굳세게 먹는 마음>, 넷째는 <본마음 자리 드러내기>이다. 한문으로는 ⑴발취심發趣心, ⑵장양심長養心, ⑶금강심金剛心, ⑷지地이다. 이런 단계로 마음을 길러가자는 제안이다. 󰡔범망경󰡕은 󰡔화엄경󰡕에 입각하여 불도를 수행하려는 사람들의 행동 규칙으로 탄생한 것이다.
지난 3월에는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 열 가지 즉, ①자심慈心, ②비심悲心, ③희심喜心, ④사심捨心, ⑤시심施心, ⑥호어심好語心, ⑦익심益心, ⑧동심同心, ⑨정심定心, ⑩혜심慧心, 이 중에서 ⑤시심施心 즉, <베푸는 마음>을 설명했다. 이런 마음이 인간에게 본래 있다는 가설에서 만들어진 윤리 덕목이다. 이번 사월 호에는 ⑥호어심好語心을 소개한다. 즉 좋은 말하기이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대승 불자를 향한 도덕적 명령인 셈이다. 󰡔범망경󰡕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불자야, ‘좋은 말하는 마음[好語心]’이란, 진여 자체의 본성[體性]에 갖추어진 ‘진실을 잘 설명하는 삼매[愛語三昧]’의 상태에 들어가, 제일의제의 법어法語와 의어義語와 일체의 실어實語로 일어一語에 모두 순응하여, 모든 중생의 마음을 조화시켜서 진심嗔心을 없애고 다툼을 없애는 것이다. ‘일체가 공인 줄을 알아서 체득되는 지혜[一切法空智]’는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면서도, 그것은 남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낳는다. (그것은 위로는) 부처님의 뜻을 따르고, (아래로는) 모든 타인에게 수순하여, 거룩한 법어로 모든 중생을 가르치며, 항상 이와 같은 마음을 실천하여 선근을 일으킨다.


설명을 따로 붙이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본성에 있는 그런 좋은 심성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마음이다. 소위 ‘한자리 깔고’ 하는 그런 말이 아니다. 요즈음 ‘편향적인’ 정치인 중에는 말은 좋게 하면서도 뜻은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말은 나와 남을 아프게 한다. 세상 사람들의 윤리를 오염시킨다.
󰡔범망경󰡕의 작가는 ‘본마음 자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본문에서 말하는 “일체가 공인 줄을 알아서 체득하는 지혜”이다.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잘 관찰하는 과정에서 ‘본마음 자리’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특히 정치 분야에 갈등이 심하다. 이럴 때일수록, 좀 내려놓고 또 좀 떨어져서 저마다 자신의 ‘본마음 자리’를 살피려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