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해피엔딩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문학심리상담사
 
오늘도 우리는 행복의 기차 위에 탑승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달린다. 때로는 종착역이 어디인지 왜 달려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유를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우리는 완벽한 해피엔딩을 모두가 꿈꾸지만, 어쩌면 해피엔딩일지도 모르는 조금은 확실치 않은 해피엔딩으로 마침표를 찍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미한 결말을 예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형체가 없는 관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인 소확행을 행복으로 생각하지만 또 다른 그 누군가는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그때서야 행복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과연 어느 부류에 속할까?
언젠가 어느 유명 셰프가 “발달장애인 아들이 아빠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아들을 위해 요리를 시작했고 계속 요리를 한다.”는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절실한 마음을 방송을 통해 보면서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다. “자식은 자신의 인생에서 주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장애가 있음을 인식했을 때 그 주연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절망감이 밀려와 무척 힘들었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쏟아내는 유명 셰프의 모습에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 잠시 생각에 잠겨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라는 단어는 ‘확실하지 아니하지만 짐작하건대’의 의미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주로 쓰인다. 인생에서 우리는 원하는 목표점을 향해서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데 안타깝게도 거기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도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어도 그 과정을 불운하거나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값지다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우리 인생을 해피엔딩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우연히 시각장애인이 아코디언을 정상인보다 더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안이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 여자로서 힘든 일인 목수로 변신해 목공에 열심히 몰두하는 모습, 피아노 전공자가 남자도 힘들어할 차량 정비 일을 열정 속에 흥미롭게 일하는 모습 등 모두가 진솔한 삶의 현장 모습이다.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공존하는 현실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우리의 시간이 과연 어떤 모양의 삶으로 비추어지길 원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자.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어쩌면 해피엔딩이 아닌 반드시 해피엔딩이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가진 사람이든 뭔가 결핍된 사람이든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고 반드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모두가 생각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조금은 힘든 오늘을 보내는 젊은이든, 인생에서 일몰의 시간을 담담하게 보내고 계실 부모님이든 “꿈과 희망이 없으면 비극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미래를 사는 것”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대로 아름다운 삶의 해피엔딩을 향해 오늘도 희망을 갖고 행복한 꿈을 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