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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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침의 여정

탄탄스님
동국대강사·대덕사주지

깨달음이란 마이너스적인 것이다. 지식의 소멸, 아집(我執) 망견(妄見)인 탐,진,치(貪,瞋,痴)와 번뇌망상(煩惱妄想)으로 가득찬 소아(小我)를 버리고 , 즉 자아의식의 에고로부터 벗어나 진여의 참된 본성인 진아(眞我)를 깨우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깨우침의 의미이다.
불전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는 처음에는 설법하시기를 망설이고 계셨으며 이를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표현하였다.


어렵게 내가 증득한 바를
어찌 헤매임 속의 그들에게 설하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 속에 있는 자,
이 법을 깨닫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러나 범천의 간절한 권청에 의하여 설법을 하시기로 마음을 돌이키게 되신다.
범천이 설법해 주시기를 간청한 이유는 이 세상에는 탐욕스럽고 우둔한 자도 있지만 중생들 가운데는 마치 연꽃이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물속에서 자라 차츰 물 위로 솟아 붉고 흰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듯이 사람들 사이에도 이와 같이 근기가 영특한 자도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네 삶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행위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탐. 진. 치의 근원에 욕망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유정(有情)이 갖고 있는 삶의 에너지이며 중생의 경우는 그 에너지를 자기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서 사용하지만, 보살은 그 에너지를 자신의 깨달음(上求菩提)과 고통 받고 있는 동시대인과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데(下化衆生) 회향(廻向)한다. 그러기에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욕망(慾望)은 중생이 지닌 이기심에 의한 삿된 욕망이 아니라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살심인 것이다.
중생은 값진 보배가 자기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출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삭발하고 회색의 승복을 입고는 삭발염의(削髮染衣) 한 몸이 출가하는 신출가(身出家)와 마음이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벗어나는 심출가(心出家) 이다.
몸이 출가한다고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세속적인 가치로 볼 때 욕망을 완전히 끊어버리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출가하여 수행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고 힘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출가하는 것은 누구나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다.
‘유마경’에는 재가자인 유마거사가 부처님의 제자인 출가한 스님네 보다 더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증득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유마경’의 ‘유마힐’이란 ‘정명(淨名)’이라고 번역되는데,‘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청정한 것을 이름한다’는 뜻이다.
앞에서 비유를 연꽃의 상징적인 의미나 ‘유마경’에서 우리의 마음에 평등한 측면만을 집착하여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마음이 똑같은데 무엇때문에 힘들게 수행하느냐’라는 식의 소리를 함부로 내뱉는 사람이 가끔은 있다. 그러나 진리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즉 사물은 평등의 측면과 차별의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차별적인 현실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평등 속에 차별이 벌어져 엄연히 중생과 부처는 차이가 있고, 번뇌와 깨달음인 보리(菩提)는 분명히 차이가 난다. 따라서 중생은 평등한 마음에 의지하여 반드시 수행을 해야만 절대 평안의 경지를 얻어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몸 받기가 참으로 어렵다(人身難得)고 하는데, 더구나 부처님의 바른 정법(正法)을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다고 하는데, 오늘의 이 사회는 물질만능주의로 인하여 탐욕과 몰인정한 세상이 되어 이미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오염된 세상으로 수행자가 발 딛고 살기에는 요원한 시절이 되었다. 
오탁악세란 첫째, 겁탁(劫濁)인데 시대가 오염되어 이 시대에 들면 기근, 역병 등 천재나 전쟁 등이 발생하여 사회가 악해지는 것을 말한다. 둘째, 견탁(見濁)인데 모든 삿된 사상이나 견해가 번창하여 세상이 어지러운 것이고, 셋째, 번뇌탁인데 중생들이 탐심,진심 등 온갖 정신적 폐단이 왕성하다는 것이며, 넷째, 중생탁 (衆生濁)인데 중생의 자질이 심히 저하되는 것이고, 다섯째는 명탁(命濁)인데 수탁(壽濁)이라고도 한다. 수명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이 오탁설은 인간수명이 짧아지면서 오탁현상이 나타나고, 처음에는 오탁현상이 희박하다가 차차로 성장하여 치열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오탁현상은 인간수명이 줄어들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인간의 지혜가 협소해져서 그에 따라 사회적, 정신적, 생리적 혼돈현상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바른 지견에 의지해서 굳세게 닦는 사람은 오탁현상에 상관없이 청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며 구체적 예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오탁악세에서 성불하시고 교화하신 역사적 실증이 있다.
우리들도 시대와 환경을 탓하지 말고 바른 믿음을 세워 견고하게 정진함으로써 길이 청정한 자성을 빛내고 국토를 밝힐 결의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이 점에 대해서 더욱 강하고 확고부동(確固不動)한 자신감을 주고 있음은 익히 아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 불교가 근본주의적 개신교 장로 정권의 종교 편향으로 어려운 나날의 연속이지만 불자들의 각오는 더욱 의연하기만 하다.
2천만 불자는 청정한 마음으로, 용맹스러운 수행으로 임할 때에 불국토가 이루어질 수 있다.
번뇌를 여의고 해탈의 깨우침을 향한 지극한 신심을 지니고자 다짐하며 이른 아침 불전에 향을 사루며 간절히 서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