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스님
아시아문화교류재단 상임이사, 장안사 주지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합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6월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며 목숨을 바치셨던 분들을 기리기 위한 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어떨까요? 현충일이 무슨 날인지에 대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60% 이상이 “현충일은 공휴일 아닌가요?”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현충일을 단순히 쉬는 날로 밖에 인식하고 있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에 젖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이지만, 이러한 조사 자료를 통해 지금까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호국사상이나 애국심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했으며 이에 대해 느끼고 인식하게 했는지 반성과 자각의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대한민국 미래의 기둥이자 희망인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호국사상과 애국심을 심어주고 교육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현재의 과제입니다. 이를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경전과 역사 속에 나타난 호국불교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과연 우리 조상들이 국난을 당할 때마다 이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남다른 민족문화는 어떻게 창조하고 발전시켰으며 지켜왔는지를 밝혀서 오늘의 거울로 삼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호국사상의 연천을 추적해 보면 전륜성왕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진호국가의 상태를 조성한 인물이 바로 전륜성왕이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전륜성왕의 개념이 처음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200년 경부터 기원 후 2세기까지로 추정되며, 인도에 그리스 등 이민족들이 자주 침입하여 대혼란이 야기되던 때에 전륜성왕이 출현하여 세계를 통일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제왕이 되었습니다. 즉 전쟁의 종식을 통해 불교적 이상세계를 실현시키는 인물이 바로 전륜성왕인 것입니다.
호국사상의 본질을 살펴보면 곧 “호법즉 호국(護法卽護國)”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호법(護法)함으로써 호국(護國)이 된다는 것으로, 즉 바른 법을 실천하고 잘 지켜나가는 것이 곧 나라를 훌륭하게 수호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참된 진리에 대한 믿음과 그 실천적 행위를 통해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 혹은 국토를 보다 높은 이상향으로 바꾸어 가려는 것이 호국사상의 참된 본질인 것입니다.
또한 경전상의 호국사상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인왕경(仁王經)》 과 《금광명경(金光明經)》 내용의 핵심을 보면, 먼저 《인왕경》에서는 진정한 호국이란 단순히 경전을 수지 독해한 공덕으로 나라가 지켜지는 의타적인 행위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참된 지혜의 궁극적인 행을 실천할 때 완성되는 것을 뜻한다고 했고, 두 번째로 《금광명경》에서는 바라밀의 실천이라는 점에서는 《인왕경》과 비슷하나 궁극적으로 호국이란 국왕의 정법에 의한 통치, 사회의 도덕적 완성, 개인의 윤리적 수행 등을 모두 말하며 이러한 법이 실천될 때 이 세상의 정법과 국토를 보살피는 사천왕의 힘을 입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한국불교에 대해 살펴봅시다. 한국불교는 유입초기부터 호국불교를 강조하며 국가와 왕실의 번영에 깊숙이 관여해 왔습니다. 특히 호국신앙은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우리의 정신세계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신라 문무왕이 평소 지의법사에게 “내가 죽은 뒤에는 호국의 큰 용이 되어 불법을 숭봉하고 우리나라를 수호하고 싶다”고 한 것이나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 중 “우리 국가의 대업은 반드시 제불호위(諸佛護衛)의 힘에 의해 의존 한다”라고 한 것도 호국신앙에서 연유했습니다. 또 고려 순종 때 불법의 힘에 의해 국가의 복리를 증진한다는 목적에서 흥왕사를 세운 것과 고려시대 몽골의 외침을 막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간행한 것도 호국신앙의 발현인 것입니다.
특히 신라인들은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신라 땅이 바로 불국토라는 신념으로 가득 차게 되었는데 이를 불국토 사상 또는 호국불교 사상이라고도 합니다. 신라인들의 불교를 매개로 한 정신적인 통일과 힘의 결집이 작은 나라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또한, 원광법사는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도에 세속 5계를 주어 정신적인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원효, 의상스님이 이루어낸 눈부신 교학 연구의 성과와 인재양성은 중국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요 한국불교 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은 모두들 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호국사상의 전반적인 이해와 호국사상이 한국 역사상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국가를 잘 수호하고 번영케 하는 일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 있어서나 공통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호국은 국가나 민족에 있어 가장 공통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며 여기에 종교를 통한 호국신앙이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면 호국사상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응용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한국 역사 속에서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던 호국사상을 더 이상 과거 속에 묻힌 정신적 유산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현실 속으로 끌어내어 응용한다면 분명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한국의 주체적 국가관 확립에 절대적인 역할을 다할 것이고, 지역 이기주의적 국가관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호국 사상의 원리들이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진리로서 기본적인 틀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우리는 과연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올바른 호국정신을 교육하고 투영시킬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의 한국불교는 민족통일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하며 인간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환경을 살리는 새롭고 건강한 문명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갖은 물질과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상처 입는 많은 대중들을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사상으로 포용하고 모두가 더불어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불국토를 이루도록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국토가 분단된 상황에서 국제정세가 급격히 변하는 이 때, 우리는 무엇보다 스스로 힘을 길러 대처하는 자세를 키워야 합니다. 남의 눈치와 국제 관계의 흐름에만 신경을 써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때가 아닙니다. 주체적으로 힘을 기르는 길을 찾도록 교육하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제는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하고 믿으며 실행해 나갈 때,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 어린이들, 청소년들과도 늘 함께하고 공유해 갈 수 있다면 머지않아 찬란한 불국토가 우리 앞에 열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