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
동대부여중 교법사, 문학박사
호국불교는 한국불교의 특성
호국불교란 불교가 국가를 외호하고 보호한다는 뜻이다. 불교가 국가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상이다. 이 말은 어용불교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는 표현이지만 그렇지 않다. 국가를 위해서 애국한다는 뜻은 나라 안에서 살고 있는 국민을 위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중생을 위하고 사랑하는 불교의 본래 사상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호국불교 사상은 호국삼부경인 《법화경》, 《금강명경》, 《인왕반야경》등의 사상적 근거를 두고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불법은 국가와 민족의 복리를 축원하는 가르침으로, 국가의 관리(官吏)가 외적인 행정면에서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라면, 불교는 내적인 면(정신)에서 기도의 공덕으로 국가를 외호하는 것이며, 국난이 일어났을 때는 지성을 다하여 국가 안전을 기원하며, 나라의 군사가 외적을 막아내지 못할 때는 호국의 의무행위로서 무기를 들고 총궐기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거룩한 일은 자신의 국가와 조국을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하는 일이다. 자신의 부모형제가 함께 살고 있는 나라가 위란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구했거나 그 일을 하다가 희생 순국했다면 참으로 위대한 삶이다. 국가와 조국을 위하여 순국하신 영령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는 호국불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는 불교가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키고 구해냈다. 국가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해온 불교이다. 이것은 중국이나 일본 불교에서 찾을 수 없는 한국불교의 특성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이다. 고구려 소수림왕이나 백제 침류왕이 중국과의 교류와 선진문물의 수입을 위해 불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였다. 따라서 국왕은 불교를 진흥시키고 불교는 국가와 국왕의 평화와 장수를 기원하였다. 곧 불교의 발전이 국가의 발전이요 왕실의 번영이었던 것이다. 
특히 신라는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맞아 불교를 국교로 받들어 왕과 왕비가 불교식 이름으로 왕명을 지어 자신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후신이라고 하여 권위를 높이는 왕즉불(王卽佛)사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출가하여 불교의 질과 격을 높였다. 원광법사, 자장율사, 원측법사, 의상대사 등은 왕손 또는 진골 출신으로 출가하여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중국의 선진문물을 수입하는 유학승과 외교관 역할을 하였으며, 귀국하여서는 국민을 교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임금의 왕사 또는 국사로서 나라의 대사를 자문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힘을 입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승려는 나라의 최고 지식인으로 백성을 가르치는 스승의 위치에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오는 선각자였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까지 그 역할을 다했다.
호국불교의 상징 황룡사9층탑과 8만대장경
《삼국유사》〈황룡사9층탑조〉에 보면 “자장스님이 중국 태화지(太和池)라는 연못을 지나다가 신인(神人)을 만났는데 그와 대화에서 ‘우리나라 신라는 북으로 말갈, 남으로 왜(일본)와 인접해 있으며 고구려·백제의 침입이 자주 있어서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하니 ‘황룡사를 지키는 호법룡은 곧 나의 장자이다. 지금 본국으로 돌아가 그 절에 9층탑을 세우면 나라에 근심이 없고 태평할 것이다’ 하였다.”
자장스님이 당나라 태종이 준 불경과 불상, 가사를 가지고 귀국하여 선덕여왕에게 탑을 세울 것을 건의하여 세상에서 가장 높은 9층탑(80미터)을 세웠다.
이 탑은 고려 고종(1254년) 때 몽고가 침입하여 부인사에 있는 초조대장경과 함께 불타는 피해를 입었다.
최우는 몽고와의 항쟁을 결의하고 왕도(王都)를 강화도로 옮기고, 부처님의 힘으로 몽고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하여 다시 대장경을 판각하였다. 이것이 현재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이다. 이 대장경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장경으로 세계문화유산이면서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호국불교의 유산이다.
임진왜란과 호국대성사 서산·사명대사
임진왜란은 7년 동안 일본 왜적에게 우리 민족이 처참하게 도륙을 당한 전쟁이다. 왜적이 30만 대군을 앞세워 파죽지세로 침략해 오자, 선조임금은 의주로 피난을 하여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과 같았다.
73세의 서산대사는 묘향산에서 스스로 의승병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아갔다. 임진왜란사에서 가장 중요한 평양전투에 사명대사가 이끄는 5천 명의 의승병은 명나라 이여송의 원군과 함께 참전하여 승리를 하였다. 이 전투가 승리하여 전세가 역전되어 7년 동안 의병의 궐기에 힘입어서 나라를 지키게 되었다. 서산대사는 한양을 탈환하고 100여 명의 승군을 선발하여 선조임금을 호위하고 궁궐 안으로 모시는 호위대장의 임무를 맡았다.
불교사에서 서산대사와 같이 나라가 위란에 처했을 때 의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일은 없었다. 서산대사는 만고에 빛날 호국대성사이다. 스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묘향산 보현사의 수충사, 해남 대흥사에 표충사 그리고 밀양 표충사에 사당을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3·1운동의 기수 만해 한용운
일제 36년은 우리 민족의 가장 치욕스런 시대이고,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온 국민이 항거한 3·1운동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사건이다. 잃어버린 나라를 찾겠다고 3천만 온 겨레가 한 마음으로 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을 맨 앞에서 지도하고 지휘한 사람이 한용운 스님이다. 일제 36년 동안 일본의 회유와 강압에 굴복하지 않고 지조와 절조를 지킨 오직 한 사람이 한용운 스님이다.
스님은 3·1운동을 주도한 민족의 지도자로서 감옥살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 나라의 지도자로서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어찌 민족의 지도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곳은 내가 마땅히 올 곳이다. 이곳은 내게 감옥이 아니라 극락이다.”고 하였다.
우리 민족이 위란에 처할 때마다 스님들은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여기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우리 불교는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호국불교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우리 불자들은 자랑스러운 호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조국과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하여 희생보국하는 정신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일이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고, 국가와 조국을 위하여 순직한 호국영령들의 뜻을 기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 때 실종자를 구조하기 위해서 앞장섰다가 순직한 불자 한주호 준위의 살신성인의 정신은 불교의 보살 자비정신의 발로이며, 호국불교의 정신을 계승 발휘한 것이다. 우리 불교교단은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불자대상’을 수여하여 님의 뜻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