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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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불교, 역사교육 방편 될 수 있어

어현경
불교신문 기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맹활약을 펼친 야구선수 봉중근은 국민들로부터 ‘의사(義士)’라는 별명을 얻었다. 구한 말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1879~1910)의사와 이름이 같은데다, 국의선양까지 한 그에게 팬들이 선물한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의사 봉중근’은 알지만 정작 별명의 기원인 안중근이 누군지 모른다는 사실이 한 조사에서 밝혀졌다. 학생들은 안중근이라는 이름은 알지만, 정작 그가 한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병을 고치는 의사라고 대답한 경우도 있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주기가 되는 올해, 안 의사는 추모보다 환기시켜야 할 존재가 됐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지만, 우리에게 ‘호국’이란 말은 이제 안중근 의사처럼 낯설다. 정작 젊은이들 마음속에는 다가올 남아공 월드컵이 더 뜨거운 화두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청소년들만 탓할 수 없다. 청소년들의 역사의식이 낮은 까닭은 모두 어른들 때문이다.
대학입시에서 국사과목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만들고, 공부 안 해도 될 과목으로 만들었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얼마 전, 한 청소년상담사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해야겠다.
일본이 국사교과서에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실어 우리나라에서 강하게 반발할 때였다. 청소년들과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한 학생이 “그냥 줘버리면 되지, 구질구질하게 왜 싸우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얘기를 듣고, 놀람과 서글픔이 교차했다. 영토를 지키려고 하는 우리의 노력이 ‘구질구질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자라면, 영토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응할까. 귀찮으니까 그냥 포기하고 말까. 국사책 한번 제대로 읽지 않고 자란 성인들은 또 어떨까. 지금의 우리처럼 분노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의 땅을 자기네 거라고 우기기 위해 애써 교과서에 그 내용을 싣는 일본을 보니 걱정이 더한다. 우리 정부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일조차 포기했다. 역사를 모르면 당연히 민족의식도 없다.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하는 청소년에게 한국의 미래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럴 때 불교가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사에 있어 불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우의를 점하고 있다.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된 이래, 국사와 불교사는 맥락을 같이 한다. 왕권강화의 한 방편으로 수용된 불교가 한국에서 자리 잡고 발전된 과정, 그리고 쇠락한 내용을 좆아가다 보면 한국사를 저절로 알게 된다. 신라 하대에 선종의 발달은 지방 호족세력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고려 때 행해진 숱한 대작불사는 왕실의 신앙이 그만큼 깊었음을 시사한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은 유교의 성행을 반증하며, 갑신정변을 이끌었던 김옥균, 박영효에게 미친 불교사상을 공부하다보면, 개화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다.
경천사지 10층석탑은 일제강점기 문화재반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호국불교사상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불교를 표현하는 관용어 중 하나가 바로 ‘호국불교’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떨쳐 일어났던 옛 스님들의 노력에서 나온 말일 터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수많은 불교문화재가 이를 증명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에 세워진 황룡사 9층목탑은 당시 신라의 외침이 심각했고, 왕실은 부처님 가피로 난관을 극복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과 경판이 보관돼 있는 장경각은 잘 알다시피 호란을 이겨내기 위해 조성됐다. 몽고군의 침략이 극에 달했음과 우리의 목판인쇄술이 얼마나 발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승병장으로 이름 높인 서산·사명대사는 조선시대 왜군의 침입에 민중들이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불교사를 공부하다보면, 오늘의 우리가 어떤 고난을 거쳐 이 자리에 서게 됐는지 알게 된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불교사를 가르치는 일이 곧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기존의 법회교재를 보면, <자타카>나 <백유경> 등 경전 속 이야기를 통해 선인선과 악인악과를 얻는다는 교훈위주의 내용을 주로 다룬다. 법회 형식도 교리공부나 108배, 참선 등에 국한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범위에서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법회에 나오는 아이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유발하는 교육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제도권 교육처럼, 불교사를 요약해 암기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쉽다.
다행히도 불교는 한국사를 가르치기에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불교문화재라는 살아있는 교재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가장 쉬운 방법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문화재를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이다. 경주 황룡사터에 남아 있는 초석들을 보고, 웅장했던 옛 신라불교와 역사를 떠올려 보자. 해남 대흥사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의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의 유품을 보는 것도 좋다. 가까운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여건이 된다면 바다 건너 일본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된 진귀한 우리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고려불화를 볼 수 있고, 선조들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조성한 불상, 석탑도 있다. 나라를 빼앗겨 문화를 지킬 힘조차 없었던 그 때, 문화재에 대한 보존의식마저 낮아 무기력하게 떠나보내야 했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치욕의 순간이지만, 잊어서도 안 되는 역사의 조각이기도 하다.
또 최근 문화컨텐츠 개발이 활기를 띠면서, <삼국유사>나 불교설화들이 애니메이션과 같은 콘텐츠로 만들어지고 있다. 주말에 법회에 참석한 아이들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역사가 더 이상 책에서나 읽는 고리타분한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이맘때면 학교에서 단체로 현충원을 찾아갔다. 낯도 모르는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 자체가 어색했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한편 놀랐다. 옛날 우리가 나라를 생각했다면, 오늘날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여건도 마련해주지 않고, ‘요즘 애들은…’이라며 탓할 순 없다.
곧 있으면 여름방학이다. 6월 한 달 동안 호국불교를 주제로 열심히 역사공부를 한 뒤, 방학이 되면 현장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 절에서 자보는 문화체험을 넘어, 한국사와 불교사를 아우르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보면,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