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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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두려움 없이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틱낫한의 <오늘도 두려움 없이-삶의 폭풍우를 통과하는 지혜>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인 명상가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이 5월 초 15일간 방한했다. 그의 방한은 10년만이었다.
귀국 직후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언론간담회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86세의 노구라 믿어지지 않을만큼 건강해 보였다. 10년 전 방한 때 동행 취재를 한데 이어 프랑스 플럼빌리지를 찾아 인터뷰를 하며 뵌 모습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필자가 “초청자들이 ‘틱낫한 스님의 생애 마지막 방한’이라고 광고를 했는데, 스님을 직접 뵈니 광고가 거짓인 것 같다. 앞으로 몇번은 방한하실 것 같다”고 했더니, 웃음으로 화답했다.


2003년 8월 플럼빌리지에서 그를 인터뷰하던 중 한국에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 소식을 전했을 때 그는 “내가 곁에 있었다면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 당시를 상기시키며 “한국의 자살율이 세계경제개발기구 소속 국가들 가운데 최고일만큼 자살율이 심각한데 자살 충동자에게 무슨 말을 해주겠는가”라고 물었다.


“강렬하게 일어나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것이다.
하나의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 우리는 그 감정보다 훨씬 큰 존재다. 왔다가는 사라지는 그 감정에 따라 왜 우리 자신을 죽여야하나.”그는 “강렬한 감정을 어떻게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어떻게 기쁨과 행복의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단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과 천천히 걸으며 자신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화나 두려움 대신 숨쉬는 그 자체의 기쁨과 평화를 만끽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성공과 경쟁에 매몰돼 지친 한국인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돈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 정신적 행복이 함께 해야한다. 돈과 명예, 권력이 아니라 이해와 사랑,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 깊은 삶을 살 수 있고 더 행복하게 된다.
그의 방한을 맞아 <오늘도 두려움 없이-삶의 폭풍우를 통과하는 지혜>(틱낫한 지음, 진우기 옮김,
김영사 펴냄)와 <틱낫한 스님의 마음 정원 가꾸기>(틱낫한·플럼빌리지 커뮤니티 지음, 이수경·혜주 스님 옮김, 판미동 펴냄) 등의 책이 출간됐다.
틱낫한 스님은 <오늘도 두려움 없이>에서 심각한 고립감과 외로움과 절망감을 이겨내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는 현대인들이 혼자라는 두려움에 벗어나도록 일깨워준다.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문득 어떤 탯줄 같은 것이 나와 하늘에 있는 태양을 연결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거기에 태양이 없다면 나는 당장 죽게 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 나와 강물을 연결하는 탯줄을 보았습니다. 만약 강이 거기에 없다면 마실 물이 없어 역시 죽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나와 숲을 연결하는 탯줄을 보았습니다. 숲 속의 나무들은 내가 숨 쉴 산소를 만들어 줍니다. 숲이 없다면 나는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요리하여 먹는 채소와 밀, 쌀을 재배하는 농부들과 나를 잇는 탯줄도 보았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과 인드라망처럼 연결돼 있어서 결코 ‘내’가 홀로 일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이는 우리는 모두 ‘무無’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몸이 붕괴되더라도 우리의 참성품은 변화되지 과거의 사건들을 재상영하고 또 새로운 사건들이 일어나면 그것이 마치 과거의 사건인양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깨닫는다면 그런 습관 에너지가 다시 올라올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알아차리면 습관적 반응 대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않는다는 또 다른 차원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이런 깨달음을 위해 그가 만트라처럼 외우도록 하는 것이 있다.


“이 몸은 내가 아니다. 나는 이 몸에 매이지 않는다. 나는 한없는 생명이다.
이 두 눈은 내가 아니다. 나는 이 두 눈에 매이지 않는다. 이 두 귀는 내가 아니다. 나는 이 두 귀에 매이지 않는다. 이 코는 내가 아니다. 나는 이 코에 매이지 않는다. 이 혀는 내가 아니다. 나는 이 혀에 매이지 않는다. 이 몸은 내가 아니다. 나는 이 몸에 매이지 않는다. 이 마음은 내가 아니다. 나는 이 마음에 매이지 않는다.”
그는 과거의 상처에 매여 고통 받는 이들에게는 상처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20년 전에 누군가 나를 때렸다고 합시다. 그 사건은 우리 무의식 속에 하나의 사진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우리 무의식에는 많은 영화와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고, 그것들이 항상 상영되고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로 자꾸만 돌아가 그것들을 보고 또 봅니다. 그러니 고통스러울 밖에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우리는 뺨을 맞고 또 맞고 또 맞는 겁니다.”
그는 “그것은 단지 과거일 뿐이고, 우리는 지금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고 주지시킨다. 그는 “과거의 사건들을 재상영하고 또 새로운 사건들이 일어나면 그것이 마치 과거의 사건인양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을 깨닫는다면 그런 습관 에너지가 다시 올라올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알아차리면 습관적 반응 대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삶의 두려움을 회피하지않고 직면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상처나 질병, 죽음 등이 두려워 사자를 본 타조처럼 모래 속에 얼굴을 쳐박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일깨운다. 만약 우리가 두려움에 압도된다면 고통과 두려움의 씨앗은 더욱 강하게 커지지만, 알아차림으로 두려움을 감싸 안으면 두려움의 에너지는 줄어들고 머잖아 의식 깊은 곳으로 씨앗의 형태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는 늙어가는 것이나 병드는 것, 죽음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이 배가되지 않도록 ‘두려움 껴안기’를 할 것을 당부한다.


“두려움이 잠시 물러갔다고 해서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므로 평화로운 순간을 즐길 때나 명상을 할 때 두려움을 다시 불러내라. 그리고 ‘두려움아, 여기로 올라오렴. 내가 너를 잠시 안아줄게. 죽는 것은 나의 본성이야. 나는 죽음을 피할 수가 없어.’ 우리는 두려움과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5분, 10분, 20분 정도, 또는 30분까지 함께하며 알아차림의 에너지로 두려움을 감싸안아야 한다. 그렇게 매일 안아주면 두려움은 그 힘을 잃게 된다.”
이처럼 질병, 외로움, 죽음, 상실감처럼 우리를 지배하는 두려움을 내치려고 하기보다는 이렇게 감싸안고 달래고 친해짐으로써 오히려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