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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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베풀기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혈액을 실어 나르는 혈관 벽에도 모세혈관이 분포되어 있다. 깊은 통증을 느끼는 사람은 대동맥의 혈관 벽에 미세하고 섬세하게 입체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모세혈관 속의 혈액방울들이 아야 아야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거기에는 물파스를 바를 수도 없다. 쉴 새 없이 뿜어대는 심장의 펌프질 리듬이 끊임없이 혈관벽 속의 모세 혈관 속의 혈액방울을 통증으로 뒤흔들어 댄다. 잘만 마음으로 다스리면 오히려 시원한 느낌으로 온몸에 퍼져나간다.
혈관이 시원하게 흘러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혈관에게 바라는 만큼 혈관을 배려하는 일은 그리 많이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적인 사실이다.
중용의 구절을 읽어본다.


君子之道四 군자지도사 
丘未能一焉 구미능일언
군자의 도 네 가지 중에
나는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듯하다.


所求乎子 소구호자                          
以事父 이사부
未能也 미능야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
부모님을 섬기는 것을
능하게 하지 못하며


내가 부모님께 원했던 만큼 미리 알아서 자식에게 잘해 주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내 몸에 매달려있는 뼈마디속의 골수들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알콜이라도 농도 짙게 온몸에 퍼질라치면 뼈마디로 계단을 내려치고 전봇대와 강하게 만나기도 할 뿐이다.
계단 모서리에 몸이 비스듬하게 부딪치기 바로 직전에 골수들이 느낄 그 소스라침은 거의 생각하지도 못하고 부딪친 다음에도 생각조차 하지 않기가 쉽다. 나는 마음속으로 부모님께 이것저것 원했으면서 자식이 이것저것 말하면 뭐 원하는게 저렇게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가 쉽다.


所求乎臣  소구호신
以事君   이사군
未能也   미능야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
군주를 섬기는 것을
제대로 능하게 하지 못하며


여기서 군주는 굳이 임금일 필요는 없다. 현대 사회생활에서 보면 직장의 상사일 수도 있고 지도교수님일 수도 있다. 직위상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대로 나보다 직위가 위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알아서 해준 경우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뭐 솔직히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지도교수님을 모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르침을 받던 입장에 있다가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옛날 가르침을 받을 때 바라던 만큼 배우는 사람들에게 해 주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所求泘弟  소구호제
以事兄   이사형
未能也   미능야
아우에게 바라는 것으로
형을 섬기는 것을
제대로 능하게 하지 못하여


동생은 내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나는 형이나 누나 말을 그만큼 잘 들으면 뭔가 억울한 생각까지도 들기가 쉽다. 후배에게 바라는 만큼 선배님을 잘 모신 적이 있기는 한가. 친구문제로 가면 또 어떤가.
所求.朋友 소구호붕우
先施之 선시지
未能也 미능야
친구에게 바라는 것으로
먼저 베풀어주는 것을
제대로 능히 하지 못한다.


나의 몸에 매달려있는 어깨와 무릎과 목과 손목 발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몸 깊숙이 들어있는 장기들의 경우에는 더하다. 간이 좀 튼튼했으면 하고 바라는 만큼 내가 알아서 간에게 좋은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간이 직격탄을 맞아서 이종격투기선수가 턱에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비틀거린다. 허나 살다보면 자신의 간이 비틀 비틀거리게 하는 일을 밥 먹는 일만큼이나 많이 하게 된다. 대책은 자신의 간에게 ‘참으로 노고가 많으십니다. 수시로 비틀거리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다. 위장과 비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수십 년 동안 음식물을 다루느라 참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하고 속으로 진정성을 담아 말하는 순간 속이 많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센스가 있는 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신장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밤낮으로 하는 고생을 누가 구체적으로 위로해 주고 있는가. 이상이 생기면 남들 몸에 있는 신장은 잘도 멀쩡하기만 한데 내 몸에 있는 신장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가 쉬운 것이 솔직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느라 정말이지 고생도 많으시고 참 대단하십니다.’ 하고 자신의 신장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보내면 보내는 그 순간에 허리가 쭈욱 펴진다.
앞의 내용으로 몇 줄 건너서 나오는 중용의 구절을 계속해서 읽어본다.


在上位 재상위
不陵下 불릉하
군자는 윗자리에 있을 때
아랫사람을 능멸하지 않으며


그래야지 그래야지 하다가도 막상 윗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평소에 생각했던 것과는 방향이 다르게 생각이 돌아가기가 쉽다. 입에서 나가는 말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경우에는 행동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在下位 재하위
不援上 불원상
아랫자리에 있을 때는
윗사람을 잡아서
끌어당기지 않으며


사장님은 왜 그렇게 어려운 일만 나에게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하기는 쉽고 저 사장님께서 나를 참 훌륭하게 키우려고 혹독한 훈련을 시켜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正己而不求乎人       정기이불구호인
則無怨            즉무원
자기 몸을 올바르게 하고
남에게 요구하지 않으면
원망하는 사람이 없어지나니


생각해보면 상식이지만 그 상식이 실제로 현실에서 실천되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上不怨天 상불원천
下不尤人 하불우인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려
아래로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일체중생에 감사드리는 마음을 더욱 가다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