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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⑱ 남과 동행하는 마음 기르기

신규탁
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범망경󰡕에서는 대승의 불자들이 실천해야 할 윤리 덕목을 크게 네 범주로 묶고, 각 범주마다 10가지씩 마음먹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발심하여 불도를 이루겠다는 마음>, 둘째는 그렇게 발심한 마음을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 셋째는 <금강석처럼 굳세게 먹는 마음>, 넷째는 마침내 <본마음 자리 드러내기>이다. 한문으로는 ⑴발취심發趣心, ⑵장양심長養心, ⑶금강심金剛心, ⑷지地이다. 이런 단계로 마음을 길러가자는 제안이다.
현재 필자는 ⑵장양심長養心, 즉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을 설명해 가고 있다. 여기에 열 가지가 있는데, ①자심慈心, ②비심悲心, ③희심喜心, ④사심捨心, ⑤시심施心, ⑥호어심好語心, ⑦익심益心, ⑧동심同心, ⑨정심定心, ⑩혜심慧心이다. 이번 6월 호에는 ⑧동심同心을 소개할 차례이다.
먼저 ⑧동심同心의 용어 뜻을 풀어보면, 중생과 더불어 동행하는 마음이다. 이 점에 대해 먼저 󰡔범망경󰡕 본문에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본문을 인용하기로 한다.


불자야, ‘함께 행동하는 마음[同心]’이란, 도성지道性智를 활용하여 공하고 무생인 진리 속에서 함께 행동하는 것이며, 무아의 지혜로 중생들과 하나가 되어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필경 공적하여 만법은 근원이 평등한 대상[空同源境]’과 ‘모든 법의 진여 실상[諸法如相]’ 속에서 (세간의 법이란) 항상 생성하였다가는, 항상 일정 기간 유지되었다가는, 항상 소멸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세속의 법이 상속하고 유전함이 무량하지만, (그러는 속에서 보살은) 갖가지로 몸과 마음을 나타내어, 모든 6도 윤회의 길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갖가지 일을 함께한다. 그러면서도 필경에는 공하여 (윤회 환상하지만 실제로는) 무생無生과도 같고, ‘나[我]’를 나타내나 무물無物과 같아서, 몸을 나누어 형상을 온 곳에 퍼트리니, 그러므로 동법삼매同法三昧에 들어간다.


2.
이하에서는 위에 인용한 본문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순서대로 본문을 살펴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내용을 먼저 설명하기로 한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주목해야 할 내용은, “모든 6도 윤회의 길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갖가지 일을 함께한다.”라고 생각한다.
이 인용문에 들어있는 단어의 뜻을 풀어보면, 먼저 ‘6도 윤회’란 생명을 가진 존재는 윤회한다고 고대의 인도인들은 생각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그런 윤회의 생각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었다. 윤회를 인정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부처님은 어떻게 하면 좋은 세상에 태어나는 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주신다.
부처님 당시 고대 인도 사람들은 이 세상과 세상에 사는 중생들은 모두 ‘브라만[梵天]’이라는 최고의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브라만’에게 기도하고 빌면, 죽은 뒤에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기도와 제사를 담당하는 브라만교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부탁해서 기도하고 제사 지냈다. 이런 사연들은 󰡔베다󰡕라는 브라만교의 성경 속에 자세하게 나온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방향이 좀 달랐다. 윤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윤회해서 좋은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그곳에서의 삶도 고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보다는 아예 어느 곳에도 태어나지 않는 길을 찾으려 했다. 그리하여 그 길을 찾은 결과,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만이 진정한 편안함이라고 했다. 또 ‘부라만’에게 기도해서, 또는 좋은 걸 바치고 제사 지내서 그 공덕으로 좋은 세상에 태어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은 본인의 업業으로 좋은 세상이건 나쁜 세상이건 태어나는 것이라 했다. 이를 세상 사람들은 ‘자업자득’이라 한다.
자, 여기에서 우리들은 생각을 좀 해보아야 한다. 전통의 브라만교에서 주장하는 윤회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명하는 윤회와의 차이가 있다. 부처님은 윤회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부라만교에서처럼 최고의 신神인 ‘브라만’에게 기도하고 제사 지내라 하지도 않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에서는 본인 또는 여러 사람이 결국 자업자득으로 윤회에 든다고 한다. 그러니 좋은 세상에 태어나 살고 싶으면 자기 스스로, 그리고 남과 더불어 좋은 일을 하라고 한다. 이렇게 가르치면서, 비록 그렇게 해서 좋은 세상에 태어나 살더라도 그곳에도 괴로움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 그러면 독자 여러분! 불교는 윤회를 부정하는 종교입니까? 긍정하는 종교입니까?


3.
필자가 생각하기에, 불교는 인도 문화에서 생성된 종교인 관계로, 불교 경전 속에 고대 인도 사람들의 사유인 ‘윤회’적 발상이 들어 있다. 그런데 불경 속에서는 그 윤회하는 원인이 자신에 있으니 스스로 노력하라고 한 점에서, 제사 지내고 기도를 중시하던 브라만교와 다르다. 또 윤회를 벗어나라고 한 점에서는 브라만교와 아주 다르다.
이렇게 윤회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면, 본문에 나오는 “모든 6도 윤회의 길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갖가지 일을 함께한다.”라는 말을 다시 살펴보자. ‘윤회의 길에 들어가서’라는 말은 내가 스스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인간으로 윤회하여 그들을 제도한다. 역사적으로 그런 사람이 있을까? 불교에서는 이렇게 ‘해석’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간으로 태어날 업을 지어서 인간으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게 아니란다. 석가모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중생 속으로 들어왔다는 ‘해석’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6도 윤회의 길에 들어간다.’ 짐승을 제도하기 위해 짐승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아귀를 제도하기 위해 아귀로 태어나기도 한다. 그런다는 말이다. 그렇게 6도에 윤회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그들과 같은 세상에 태어나, ‘갖가지 일을 함께한다.’
대승불교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모든 6도 윤회의 길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갖가지 일을 함께한다.”라는 구절이다. 우리가 지금 함께 읽고 있는 󰡔범망경󰡕은 대승의 정신을 잘 살린 율장律藏이다. 석가모니 당시의 초기 불교의 정신을 잘 계승하면서, 특히 이 세상에서 중생 속에서 중생들과 함께 기도나 제자가 아닌, 스스로의 노력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자는 발상이 󰡔범망경󰡕 속에 담겨있다. 그것도 혼자만이 아닌 함께 말이다. 이것이 바로 열 가지 <장양심長養心> 중에서 여덟째에 해당하는 ⑧동심同心이다. 동심同心을 필자는 ‘남과 동행하기’로 한글 번역했다.


4.
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제시했던 초기 불교의 교리가 󰡔범망경󰡕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본문에 말한 “도성지道性智를 활용하여 공하고 무생인 진리 속에서”가 그 답이 될 것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몸도 마음도 해탈하려 노력하고 그러는 동시에 남과 더불어 동행하라는 방식으로 가르친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도성지道性智를 활용하여 공하고 무생인 진리를 체험하고, 그런 체험과 더불어 중생들과 행동하라고 한다.
중요한 용어는 <도성지道性智>이다. ‘도성지道性智’는 ‘도종지道種智’로도 표기하는데, 이는 여러 가지 차별이 있는 온갖 도법을 배워서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의 지혜를 말한다. 이런 <도성지>를 활용하여 공, 무생, 무아 등의 진리를 체험하여 그런 속에서 중생들과 동행하는 것이다. ‘이류중행異流中行’하는 것이다. 즉, 종류가 다른 일체중생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면서 그들을 불도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대승이 말 그대로 큰 수레인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이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심지어는 모양이 다르더라도, 생명 있는 중생들이 서로서로 함께 살아가자는 것이다. 6월이면 우리나라도 새 대통이 선출되고 새 정부가 들어선다. 선거 과정에서 생각이 다르고 주장하는 점이 달랐어도, 이제는 그런 생각과 이념들을 함께 아우르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 동행同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동행의 마음에는 󰡔범망경󰡕의 가르침에 차용해서 말하면, <도성지道性智> 즉 종류가 다른 일체 중생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고락을 나누려는 마음이 근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