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행 구룡사 불자
<지난호에 이어서>
칠일 째
라즈기르 왕사성에 있는 『법화경』의 설법지 영축산 가는 길.
지나가는 인도인들이 나뭇가지로 양치를 한다. 림 나뭇가지로 양치하는 거란다. 우리도 가지로 흉내도 내어보고 림 나무 재료로 만든 치약도 사고 비누도 샀다. 나중에 짐 부칠 때 무게가 많이 나가서 고생을 했지만~~.
버스에서 내려 20분정도 걸어 올라 갔다. 오르막이라 올라가는데 힘들다.
가마를 태우는 인도인들이 보여 스님이 가마를 타셨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젊은 인도인들이 안쓰러워 스님이 중간에 내리고 싶어 하시는데 끝까지 태우고 올라간다.
영축산 올라가는 이 길은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오르내렸던 길로, 빔비사라길이라고 한다. 사리불과 목련이 이곳 출신이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이곳에서 우리도 『법화경』을 독송하며 기도를 하였다. 독수리의 머리를 닮은 바위도 보여 사진도 찍고, 정상에 올라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와 있다. 왕사성은 칠엽굴에서 부처님 열반 100일 후 500여 명의 비구가 모여 1차 결집을 한 곳이다.
가섭에게 법을 설하시고 꽃을 드니 가섭이 웃음을 지었다고 하여 염화미소拈華微笑라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10달러짜리 염주를 사라고 따라오는 상인에게 막 깎아서 2달러 주면 산다고 했더니 도망간다. 우리도 인도 길거리 잡상인을 내쫓는 방법을 터득 한 것이라 웃음이 나왔다.^^
영축산을 내려와 부처님의 주치의 지바의사의 집터로 이동했다.
빔비사라왕은 기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기를 버리는데, 그 아이를 나무 밑에서 발견하여 왕사성에서 크게 되어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가 지바의사다.
다시 빔비사라 감옥터로 이동했다. 빔비사라왕은 점술가의 예언대로 아들을 얻기 위해 선인을 죽여 그 죄가 들통날까봐 늦게 얻은 아들을 영축산에서 굴려 죽이려 하다가 실패했다. 아들이 커서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아버지 빔비사라를 감옥에 가둔다.
다시 죽림정사로 이동했다.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과 수행자들을 위해 머무실 장소로 절을 만든 곳이다. 이것이 절의 시초가 된다.
죽림정사에 들어서니 공원 같은 분위기다. 죽림정사의 터를 기증했던 칼란다의 이름을 딴 칼란다 연못도 죽림정사 내에 있다. 까만 옷을 입은 일본식 불상도 보이는데 낯설다.
죽림정사를 한 바퀴 돌고 나란다 대학으로 이동했다. 나란다 대학은 가로 5키로미터, 세로 11키로미터이고, 십분의 일밖에 발굴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지금도 계속 발굴 중이란다.
5세기에 세워진 이 대학은 사리불 존자의 탑이 여기 있기 때문에 이곳에 탑을 만들게 된다. 이 지역은 사리불과 목련이 태어나고 죽은 곳이고, 용수보살은 뛰어난 과학자인데 여기서 공부했다.
벽돌로 튼튼하게 지은 기단과 벽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 그 시절의 학문의 전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무슬림의 침략으로 거의 소멸되고 터만 남았고, 아쇼카 대왕이 증축하게 된다.
우물과 수도원 터도 보인다. 많은 고승들이 거쳐 갔으리라 상상하며 작은 선방도 들어가 보고
사리불의 사리탑이 보여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사진도 찍고 우리 불자들은 전생에 이 대학 졸업생인양, 모교를 방문했다며 농담들도 하였다. 농담이지만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불교뿐만 아니라 인도문화가 7~8세기에 나란다 대학으로부터 아시아의 모든 불교 국가에 전파 된다고 한다.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내일로 예정되어 있는 전정각선을 비포장도로를 버스로 덜컹거리며 도착했다. 걸어서도 10분정도 오르막을 올라 걸어갔다. 오늘 일정은 영축산도 오르고 이곳도 올라가니 좀은 빡빡한 하루다. 가는 길에 법륜스님이 지은 학교도 보여 감개무량했다.
이 지역은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아주 낙후된 지역이라고 하는데 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인도 관광지 어느 곳이든 볼 수 있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이곳에는 더 많고 유난히 깡마르고 허름하고 누추한 많은 사람들이 우릴 보고 달려든다.
이 사람들을 외면하는데 우리는 익숙해져 있어 이렇게 인색해야 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하다. 올라가니 티베트 사원이 있고 전정각선 둥게스와리 입구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몇 명 들어가는 작은 굴 안에 줄을 서서 들여보내 길래 우리도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들어가니 부처님 고행상이 모셔져 있다. 기원전 5~6세기경에는 인도에서는 고행이 유행이었는데 여기 있는 고행상은 파키스탄의 간다라 영향을 받은 불교 조각이라고 한다. 진품은 파카스탄 국립 박물관에 있다.
5비구와 함께 고행을 하시지만 극단적인 육신의 학대는 도가 아님을 깨닫고 중도를 깨우치시고 이곳을 떠나 니련선하 강으로 떠나신다. 이곳에 계시는 산신이 부처님께서 고행을 하셔서 성도를 하라고 산을 내줬는데, 성도를 못하고 떠나시니 그림자만 두고 떠나셨다 하여 유영굴이라 한단다. 부처님이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에 올랐던 산이란다.
팔일 째
수자타여인의 집터로 이동 중 고행을 하시다가 가게 되는 니련선하 강을 우리는 지나간다. 강에 물은 말라있다. 성도하시기 전 지친 몸을 이끌고 수자타 여인의 유미죽을 드시고 니련선하 강에서 목욕을 하시고 농부의 길상초를 받는다. 가는 길에 갈대같이 보이는 것이 길상초란다.
몸이 쇠약해져 힘들어 있을 때 수자타 여인이 우유를 넣어 만든 유미죽으로 공양을 올려 기력을 회복 하시는데 수자타 여인의 공양을 받은 것을 보고 고행을 포기 한 것으로 생각하여 5비구는 부처님을 떠나 바라나시로 가게 된다.
수자타 여인은 니련선하 마을 촌장의 딸이다. 수자타 여인의 집터에 탑을 세워 공덕을 기리고 있다.
우리도 한 바퀴 돌며 참배를 했다. 부처님은 발우를 깨뜨려 버리고 보드가야 나무 아래로 가셔서 도를 깨닫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정진에 들어 진리를 깨닫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된다.
참배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근처 아이들이 나와 바깥청소를 한다. 청소를 하는 모습이 재빠르고 뭔가 훈련 된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우리가 그곳에 오니 학교에서 뭔가 받으려고 보여 주기 식 청소라는 설명을 듣고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우리는 성도지 보드가야로 향했다. 멀리서도 마하보디사원 52미터 대탑이 보인다. 숙소에서 10여분 거리에 있어 호텔에서 짐을 풀고 보드가야 대탑으로 향했다.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이 부처님의 성도지에 세운 탑인데 회교도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 1881년 영국의 커닝햄 장군에 의해 발견, 인도 불교에서 가장 뜻 깊고 중요한 장소이다.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신지 35년 왕의 자리를 버리고 진리의 길을 찾아나선지 6년이 되던 기원전 589년 12월 8일 그로부터 7일씩 7군데, 49일 동안 이 언덕 위에 머무시며 선정에 드신다. 7.7선정터는 다 찾지는 못했다. 그동안 다녔던 성도지 중 가장 규모도 크고 사람들도 많다.
핸드폰도 못 가져가게 한다. 법당 안은 기도드릴 공간도 없다. 그 법당에서 부처님께 가사를 입히시는 모습이 보인다. 사원은 온통 부처님 발자취이다. 우리 일행은 보리수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기도를 했는데, 나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보살들이 108배를 한다.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이 순간의 기쁨을 오래오래 간직하리라~~!
인도 성지순례 한번 가기도 힘든 귀한 시간이라 생각하니 환희심이 가슴속에 스며드는 듯하다. 온몸을 땅에 던지며 오체투지를 하는가 하면 명상에 든 이도 있다.
금강좌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이 첫발을 내디딘 곳에 부처님 발자국이 새겨졌다. 연못에 부처님을 휘감고 있는 용의 모습, 깨끗하게 정돈된 사찰 곳곳에 살이 찐 개들도 어엿한 식구인 양 드러누워 있다.
숙소에서 보드가야 사원 가는 길에 수많은 가게들이 있는데 어느 옷가게에 들어가 보살님이 우리에게 옷을 사주어서 하나씩 입었다. 다음날 입고 관광을 하니 이쁘다고 한다.
옷가게서 옷을 고르는데 한바탕 시원한 소나기가 지나간다. 그동안 매일 숙소가 달라, 짐 싸는 게 일이었는데 보드가야에서 2박을 하니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어 이튿날은 개별적으로 마하보디 대탑이 있는 사원에 가서 『금강경』을 읽으며 몰래 가지고 들어간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었다.
호텔에서 나와 그동안 구룡사에서 말로만 듣던 한국 절 고려사로 향하는데, 성도지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땅의 규모도 꽤 크다.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앞으로 이곳에 선방을 만든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앉아서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