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불국다원’에서
 
이서연
시인
빛살마저 푸르른 듯 녹음이 뚝뚝 떨어지는 날 서라벌 해 뜨는 곳을 다녀왔다. 햇살을 떨어내고(吐) 달빛을 머금은(含) 산 토함산 자락엔 연륜이 느껴지는 느린 바람이 있었다. 역사의 자리에는 바람도 범상치 않다. 서라벌이어서 그럴까. 가로수 잎을 흔들고 가는 바람의 속살까지 신라의 숨결이 그물처럼 엮어져 있는 듯하다.
볼 것이 많아서 기대치가 높은 곳, 한 곳을 몇 번 답사하더라도 풀어야 할 숙제가 남겨지는 곳, 역사와 문화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쉽지 않은 곳, 매력적인 이야기가 담긴 곳에 발길이 멈추면 눈길 머무는 곳마다 문학적 상상력을 끌어올리게 되는 곳이 서라벌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서툴고 부족함뿐이다. 그나마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자꾸 발견하고 거듭 감탄할 수 있음이 다행이다. 겉으로 보는 역사와 역사 속겹을 보는 눈이 생기면서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결이 달라지고 있는 증거라 본다. 그러나 솔직히 여전히 객관적 탐구력을 가진 미학 능력이 부족하여 감성적 미학에서 그치는 수준이 부끄럽기만 하다. 특히 불국사 도량에 들어서면 미약한 불심과 더 미약한 미학수준이 완연히 드러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인들은 우리 문화와 불교건축 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며 살펴보고 조사를 하며 여행을 하건만 정작 우리 문화의 위대함에 무관심했고, 막연하게만 알고 있다는 것에 많은 가책을 느낀다.
보문관광단지 길은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날에도, 빗물에 젖는 날에도 한결같이 정갈함이 느껴지는 풍경이 있다. 오래된 역사의 그윽한 향취가 있는 길은 아니지만 ‘불국사’로 향하는 마음 때문인지 불국佛國으로 인도하는 길이란 생각을 하면 그 정취에서 제법 정연함이 느껴진다.
아사녀를 잃은 아사달이 지금이라도 나타날 듯한 영지影池에 나비 한 마리가 지나간다. 나비는 모처럼의 나들이가 아닐 것이다. 일상의 몸짓이요, 산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나비 덕에 내 모습이 물 위로 떠오른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고
대단한 그 무엇도
대단한 그 무엇만도 아니다
 
그저 나비 한 마리 지나갔을 뿐인데
아사녀 잃은 아사달의 그림자가 연못에 뜬다
나를 잃은 내 그림자처럼
 
                               -<영지影池를 지나며> 중에서-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석가탑에 얽힌 아사달과 아사녀의 이야기가 슬프듯이 지금의 멋지고 늠름한 불국사가 되기까지 그 역사엔 갖은 수난의 흔적이 가득하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춘 석굴암이 해체된 뒤 다시는 그 완벽함을 갖추지 못한 채 유리함에 갇힌 임이 된 것처럼 불국사도 1796년 정조대왕의 하사품으로 비로전을 수리했다는 기록 이후엔 특별한 기록이 없다. 국가의 운이 절의 운과 같은 것일 수 없건만 중수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절의 퇴락 기운이 국운國運과 함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몽고란과 임진란을 겪으면서도 그 품격을 잃지 않았던 불국사가 일제강점기부터 제3공화국에 이르는 기간에 서서히 폐허가 되었다. 다보탑 기단 위 네 귀퉁이에 놓였던 네 마리의 돌사자 중 얼굴에 난 상처를 가진 돌사자만 하나 남았을 뿐 모두 그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아사달의 불심 담긴 진념으로 세워진 석가탑도 도굴꾼들의 횡포와 복원 공사를 할 때 옥개석이 떨어져 크게 훼손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불국사의 상징적인 회랑은 또 어떤가. 지금의 아름다운 회랑을 되찾기 전에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범영루만 덜렁 남은 자리를 바람이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1969년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문화재들이 복원되기 시작했다니 폐허나 다름없었던 그 긴 역사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었나 싶다. 특히 옛 모습이 어떤 형태였는지 그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완벽한 복원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예전의 기록을 갖고 있지 않아서 선조들의 과학적 미학적 건축기술을 모르고 공사한 복원이라 아쉬움이 크다. 그나마 오늘날 이 정도의 숭고미를 갖추고 1995년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여전히 흉내 비슷한 것도 내지 못하면서 세속은 삶에서 부처 세계에 오르는 수행을 하는 도량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일까, 수학여행 때 사진을 찍던 대표적 장소가 그때보다 더욱 성스런 모습으로 보인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사이의 아래를 보면 구름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길을 표현한 무지개문이 있다. 또한 양쪽 주변의 석축은 가구식 석축(보물 제1745호)이라 하여 자연에서 얻은 지혜에 기술이 더해진 미학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청운교와 백운교는 자하문을 오르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하紫霞’는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자줏빛 안개를 의미하는데 신비함을 나타내는 표현에 문학적 영감을 받게 된다.
청운교와 백운교의 서쪽엔 연화교와 칠보교가 단단한 멋을 갖고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 사이의 문은 안양문이다. 이곳은 극락으로 오르게 한다. 따라서 연화교는 10단에 연꽃잎이 새겨져 있고, 연꽃잎은 아미타불의 전생 법장보살의 서원을 품고 있다. 극락으로 갈 때 연못을 건너는데 그 연못은 일곱 보석으로 이뤄져 있다. 이 의미가 담긴 것이 칠보교다. 이곳을 거치면 안양문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본래는 무설전 옹벽에서 물이 솟아 대웅전 아래로 흘러서 구품연지까지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런 기록을 보면 당시 이 거대한 불교문화에 자연이 담당한 역할이 지대함을 알 수 있다.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또 계단이 나온다. 법장보살의 48대원과 관계가 있다. 지극한 마음으로 세우는 서원 하나하나가 공덕이요, 특히 공덕을 하나하나 쌓을 때마다 전생 업장 소멸과 내생 복업이 쌓이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된다.
혹독한 시련에 잎 떨어진 자리, 그 자리에 난 새 잎은 지난 그 잎이 아니듯 지금 내가 짓는 미소 하나가 새 잎이 될 때 새 잎은 공덕의 씨앗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도량을 돌다보니 ‘불국다원’이 보인다. 불국사는 산 중턱에 있지만 평지처럼 느껴지는 도량이다. 제법 넓어서 도량을 돌다가 마시는 차 한 잔은 저절로 불보살님의 감로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부처님 품에선 쓴 커피도 달콤하다
부처님 향기 마신 커피는 보기에도 향그럽다
 
풍경 소리 두 방울 떨어뜨려 보고
꽃 향도 슬쩍 담가 마시면 따라오는 새소리
 
그래, 그래
그렇구나 그렇지
이 도량이 그냥 도량 아니지
김대성 원력이 전생에서 전생을 타고 쏟아진 도량
불국이 보랏빛 불국의 서원으로 세워진 도량
물빛에 서리는 그림자도 차향을 돋우는 도량이지
                                       -녹음이 흔흔한 <불국다원>에서-
많이 다녔던 곳일지라도 색다름이 느껴질 때가 있다. 사나이를 위한 산수유차, 여인을 위한 오미자차, 냉연잎차, 비염에 좋은 목련차가 눈길 발길을 끄는 불국다원이 여름답게 녹음을 흔흔하게 담아 차를 내 준다. 겨울엔 겨울향을 담아 주고, 가을엔 가을맛을 담아 주고, 봄엔 봄빛을 담아 줄 다원에서 남루한 기억을 툴툴 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