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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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환자는 약을 멀리 한다

 


문상돈
한의학 박사 | 전 원광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 | 햇살고운 한의원 대표원장


밥을 맛있게 먹고 싶다던 할머님의 이야기다.
원래 한의원에는 보약 처방으로 내원하는 분들이 많다. 이 할머님 역시 으레 밥맛이 없거나 떨어진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보약 짓고 싶어 하는 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할머님의 내원 이유는 보약이 아닌 20년 전부터 먹기 시작한 고혈압 약을 끊기 위함이었다. 처음에는 1알을 처방받은 이후 점점 알약 개수가 늘어 이제는 매끼마다 먹는 약이 15알이나 된다는데, 물과 함께 약을 먹고 나면 배가 불러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치료약을 먹거나 식사 후 소화제, 잠들기 전에 수면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단순한 감기로 병원에 갔을 뿐인데 4~5가지 처방을 받아오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열나니까 해열제, 머리 아프니까 진통제, 기침이 나서 천식약, 콧물이 나면 비염약, 식욕이 없다면 소화제, 약 때문에 위가 아픈 것을 막기 위해 위장약을 처방한다.


한 달 동안 매일 5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65세 이상은 44%, 1년간 매일 5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경우도 10%에 달한다는 국내 통계가 있다. 이런 통계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이나 일본 또한 마찬가지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위산역류억제, 심장병, 우울증, 불면증 및 기타 질환과 관련해 20개 이상 약을 복용하는 사례도 흔했다. 일본 지바대학교 병원 조사에는 노인 환자의 26%가 약을 10개 이상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먹는 약의 개수가 많을수록 우리의 몸은 더 건강해질까?


복용 약량이 많아지면 건강하기 위해 약을 먹는 건지, 약 먹기 위해 사는 건지 헷갈려 한다.
약과 독은 한 끗 차이다. 잘 쓰면 명약名藥이고 잘못 쓰면 독약毒藥이 된다. 약은 양날의 검과 같다. 병을 낫게 하는 순기능과 인체에 해를 주는 역기능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약물 부작용이 역기능에 해당한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오랫동안 몇 개씩 복용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약 성분이 혈액 속으로 들어가면 약효를 발휘하지만 남은 약 성분은 혈액과 함께 온몸을 돌아다닌다. 몸 안에 들어온 약 성분이 정상 부위로도 갈 수 있는데, 이때 일어날 수 있는 부적합한 효능이 바로 약물 부작용이다.


항생제를 먹으면 가스가 차서 속이 더부룩해지는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나고 장내 유익균이 줄어서 변비나 설사가 발생한다. 또 인체의 화학공장인 간과 정수기 역할을 하는 신장은 장기간 다량의 약을 먹게 되면 기능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 간은 체내 유해 성분을 해독할 수 없고 신장은 혈액을 여과해 불필요한 이물질을 몸 밖으로 소변과 함께 배출하기 어렵게 된다. 나으려고 먹는 과다 약물이 오히려 간 신장 위장 등 오장육부를 멍들게 만드는 것이다.
노인들의 손가방 속에는 약이 가득하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약물 의존도가 아주 높아서 한 끼라도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두려워하는 노인들을 자주 본다. 심지어 실제 의사가 약 처방을 줄이려고 하면 “왜 약을 안 주느냐”며 따지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약물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한 일환으로 처방 줄이기 운동이 확산되면서 약을 처방하지 않고 치료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이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었으나 아직 뚜렷한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질병을 개선하고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약물의 순기능의 이면에 역기능의 대가가 너무 크다.
제도적인 문제점이 해소되기 전이라도 약물 부작용에 대해 의료소비자인 환자가 깨어 있으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소비자 스스로 불필요하거나 과잉으로 처방된 약은 마치 독약과 같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할머님처럼 복용하는 약이 많다면 주치의에게 약을 줄여줄 것을 요청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가능하면 약물 의존도를 낮추고 올바른 생활 습관을 통하여 약물을 줄이거나 끊는 게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