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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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박경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중국 당나라 때의 대시인 이백(李白)은 그의‘춘야
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무릇 천지란 만물의 여관이
요, 세월이란 영원한 나그네다(夫天地者萬物之逆旅光陰者百代之過
客)”라고 노래하고 있다. 참으로 명쾌한 통찰이다. 하지만 우리는 치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인생이 본래 나그네길이고 우리가 머무는 집, 그
리고 세계가 한낱 여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간다. 물론 언제부턴가 휴가문화와 그에 따
른 여행문화는 현대인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부분 여행
을 휴가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 무엇으로 가볍게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여행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행에는 휴식 이상의 의미와
의의가 내재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세상은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껏
해야 한 줄의 글을 읽은 사람에 불과하다”라고 하며 여행을 독려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글
로 읽을 수는 있을지라도, 그 향취까지 맡을 수는 없기에 여행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피코 아이어(Pico Iyer)는, “떠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뭔가
가 마음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일상적인 틀에 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떠나는 것은 불만의 토로가 아니라 긍정적 선택이다. 인생의 여정
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직장이든 습관이든, 버리고 떠
난다는 것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쪽으로 계속 움직이기 위한 방향전환이다.”라고 더욱 구체적으로 충
고한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에 의하면, 인간이라는 동물은 고정된 계급, 혹은 확고부동한 위치
로 존재하는 정착민이 아니라 새로운 삶 의 풍요로움과 사랑과 우정의 삶을 찾아 서 끊임없이 떠나는 노마드(유목민)이다.
이런 노마드적 본성을 지닌 인간 및 대부 분의 동물은 마치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사랑과 우정이 맺는 관계의 상 황과 조건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이동루트 나 길을 만들어나간다(장시기, 「노자와 들 뢰즈의 노마돌로지」, 당대). 우리의 노마 드적 본성을 시성(詩聖) 타고르는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님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그것이 님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님은 수없이 비우시곤 또
항시 신선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작은 갈피리를 님은 언덕 골짜기 너머로 나르셨습니다. 그리고 님은 그것을 통해 항시 새로운
선율을 불어 내셨습니다. ‘( 기탄잘리’중에서)
그러므로 본래 노마드인 우리는 우리 인생의 연약한 그릇에 신선한 생명을 채우기 위해, 작은 갈피
리에 새로운 선율을 불어넣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청마 유치환의
갈증은 엄숙하고 경건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지난 해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여행 이틀째 되던 날, 나는 벨기에의 브뤼셀에
서 묵기로 한 계획을 바꾸어 브뤼헤(Brugge)로 향했다. 브뤼헤는 중세풍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조용한 도시로서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인상을 주었다. 아침 일찍 창가에서 청아하게 노래하는 이름 모
를 새 소리에 잠이 깼다. 순간, 나는 작은 침대에 누워 한국을 생각했다. 엊그제까지 내가 머물던 한국
에서 지금 이곳 브뤼헤는 한낱 무(無)일 뿐이었다. 그 무 속에 이렇게도 예쁜 도시가, 건강한 사람들
이, 상쾌한 아침이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브뤼헤 사람들에게도 역시 서울의 한 마을은 무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삶이, 세계가 더욱 신비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나의 존재감
이 또렷하게 부각되었다. ‘지금까지의 내’가 사라지고 그냥 하나의 생명으로서의 이름 모를 내가‘살
아있다’는 강렬한 느낌이 전류처럼 흘러갔다. 여행길에서 흔히 경험하게 되는 이러한 생명감이 우리
를 또 다른 여행길로 나서게 하는 것일 게다.

필자는 그 때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릴케의‘엄숙한 시간’이라는 시를 음미해 본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세상 어디로든 훌훌 떠나고 싶어진다. 나를 얽어매고 있는 타율적 법과 관습과 도
덕의 그물망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래서 풍경을, 사물을, 사람들을, 참으로 솔직하고 편하고 자유
롭게 만나고 싶다. 그 낯선 대상에 나를, 나의 허상을 새롭게 비추어 보고 싶다. 타자화된 나를 버리고
진정한 나와 대면하고 싶다. 그리하여 푸르른 생명의 강물에 잿빛 실존을 흠뻑 담그고 싶다. 월트 휘트
먼은 이런 심정을‘세계에 대한 인사’라고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우리가 찾아가 들을 만한 대
상들을 그의 시를 통해 열거한다. 노동자의 노래와 농부의 아내가 부르는 노래, 멀리 아이들과 이른 아
침 짐승들의 목소리, 야생말을 쫓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의 신나는 외침 소리, 밤나무 그늘 아래 캐스
터네츠를 들고 3현악기와 기타에 맞춰 춤추는 스페인 무도, 프랑스의 힘찬 자유의 노래, 이탈리아의
뱃사공이 옛 시에 곡조를 달아 읊는 것, 무서운 구름 떼처럼 곡식과 풀을 내리 덮치는 시리아의 메뚜기
떼, 나일강의 가슴 위에 그리고 떨어지는 해를 향해 구슬피 반복하는 코프트 사람의 기도, 멕시코 사람
의 나귀를 쫓는 쾌활한 노닥거림과 나귀의 방울 소리, 이슬람 사원의 뾰족탑에서 아라비아 사람이 기
도 시간을 외치는 소리, 코작들의 외치는 소리와 오호츠크 바다로 떠나는 수부들의 노래, 희랍 사람의
율동적인 신화와 로마인의 힘찬 전설, 그리스도의 성스런 생애와 피에 젖은 죽음의 이야기, 3천 년 전
에 쓰여져 오늘까지 내려온 사랑과 전쟁과 격언을 제자에게 가르치는 힌두교도의 목소리….

여행은 무집착의 체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살다 길에서 돌아가신 분으로
한마디로‘무집착’의 삶을 살다 가신 분이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존재는 불교의 연기적 세계
관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적으로는 무상(無常)이요, 공간적으로는 무아(無我)이다. 무상과 무아의 진
리 역시‘무집착’의 실천을 토로하고 있다. 초기불교교단에서 출가수행자의 생활 규범이었던‘4의지
(依止)’의 원칙 가운데, 지붕이 있는 집에 머물지 말고‘나무 아래 머물라〔樹下住〕’는 가르침 역시 무
집착의 정신을 역설하고 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줄기차게 무집착을 설파하셨다.
라훌라야, 어떤 종류의 물질이든, 즉 과거·미래·현재 중 어디에 속하든, 밖에 있든 안에 있든, 거칠거나
미세하거나,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모든 물질들〔色〕은‘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며, 이것은 내가 아니며, 여행은 인생의 시기마다 느낌도 다르고 성격도 다를 것이다. 학창시절의 수학여
행과 청장년기의 배낭여행, 그리고 노년기의 가족여행은 그 내용과 목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성격과 목적에 걸맞는 여행이 되도록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테마여행을 권장하고 싶다. <산사 순례> <불교문화재 기
행> <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 <세계 불교 수행센터를 찾아> <부처님 성지 순
례> 등은 불교적 테마여행의 몇 가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이 아니다’고 바른 지혜로 보는 사람은 집착 없는 해탈에 이른다. 어떤 종류의 느낌〔受〕이든, 생각〔想〕이든, 의지〔行〕이든, 의식〔識〕이든 모두‘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며,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 자신이 아니다’고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相應部경전〕자기와 관계있는 어떤 것에 집착하여 다른 모든 것들은 열등하다고 보는 사람은 속박에 갇혀 있다고, 진리
에 통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자기가 본 것, 들은 것, 인식한 것 등을 무조건 신뢰하여 그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經集」798〕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經集」71〕학창시절 어느 노스님으로부터, 스님들은 항상 세 가지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법문을 들은 적이 있 다. 스님들은 항상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고, 설법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고, 죽을 준비를 하고 있어 야 한다는 것이다. 안거가 끝난 스님들은 대부분 만행의 길에 오른다. 스님들에게는 바랑 하나 걸머지고 구 름처럼 물처럼 길을 떠나는 그 자체가 또 다른 수행이고 곧 삶이리라. 불교인은‘바랑 하나 걸머지고 길을 떠나는 스님’의 모습을 늘 마음에 새기며 일상에 지칠 때나 타성과 안일에 빠져 있다고 느낄 때, 주저 없이 여행길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준비 없는 편안한 여행도 좋지만, 대부분의 여행을 위해서는 평상시 여행경비는 물론 필요한 정보
와 상식도 준비하고 챙겨두는 것이 좋다. 어떠한 정보가 필요한지를 알려주며 기본 상식을 제공하는 책들은
적지 않으니 가끔 서점에 들러볼 일이다. 필자는 롤프 포츠(Rolf Potts)가 쓴「여행의 기술」(강주헌 옮김, 넥 서스 Books刊)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성공적인 여행을 위한 다양한 지식과 관련 웹사이트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있어, 여행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안겨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한비야 같은 여행전문가들의 체험담도 읽어두면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여행은 인생의 시기마다 느낌도 다르고 성격도 다를 것이다. 학창시절의 수학여행과 청장년기의 배낭여
행, 그리고 노년기의 가족여행은 그 내용과 목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성격과 목적에 걸맞는 여행이 되도
록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특히 테마여행을 권장하고 싶다. <산사 순례> <불
교문화재 기행> <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 <세계 불교 수행센터를 찾아> <부처님 성지 순례> 등은 불교
적 테마여행의 몇 가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집을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라는 생각도 떨쳐버려야 한다. 일상 속에서, 속도에 이끌려가지 않
고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삶을 즐기며 삶의 아름다운 풍광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