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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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신앙七星信仰에 대하여

편집부


칠석七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제해기薺諧記》입니다. 우리나라에서의 문헌기록으로는 《고려사高麗史》에 처음 등장하는데, 평안남도 남포 덕흥리 고분의 고구려 벽화에 견우와 직녀 설화와 관련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에 민속民俗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칠석의 어원語源
칠七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7월 7일의 날짜를 이르는 말이고, 석夕은 밤에 만났기 때문에 저녁을 이르는 말인데, 이를 합하여 칠석날(七夕日)이라고 합니다. 칠석은 3월 삼짇날, 5월 단오, 9월 9일 중양절重陽節과 함께 양陽이 겹치는 길일吉日로 인식되어 여러 가지 세시행사歲時行事를 해왔습니다.


칠석의 유래由來
옛날 옥황상제玉皇上帝가 다스리는 하늘나라 궁전의 은하수銀河水 건너편에 부지런한 목동牧童인 견우牽牛가 살고 있었습니다.
옥황상제는 견우가 부지런하고 착하여 손녀孫女인 직녀織女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시켜주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자 금슬琴瑟이 너무 좋아 견우는 목동일을 게을리 하고 직녀 또한 베짜는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이로 인해 천계天界의 현상現象이 혼란에 빠져 사람들은 천재天災와 기근으로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옥황상제는 크게 진노하여 두 사람을 은하수의 양쪽에 각각 떨어져 살게 하였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이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작교烏鵲橋이며 이로 인해 칠석의 세시풍속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숫자 칠七의 의미
동서양을 막론하고 7이 갖는 숫자의 의미는 같다 할 것입니다.
음력은 BC 5000년 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이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에 따라 1개월을 29일 또는 30일로 정하고 1년을 12개월로 나누어 사용하면서부터입니다.
또 양력은 이집트 천문학자들이 나일강의 범람을 관찰한 기록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그 후 AD 16세기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그것을 기초로 하여 달력을 만들었고, 이후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러 그레고리달력을 채택, 현재의 달력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태양과 달을 포함해서 일곱 행성에 따라 하루를 24시로 나눈 것과 일곱 행성이 돌아가면서 시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에서 유래되었는데 그것이 천문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민족 신앙으로서의 칠석
불교와 관련해서도 7이라는 숫자와 칠석이라는 명절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칠성신앙은 민속신앙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해와 달을 숭배하는 일월성신日月星辰 신앙은 우리민족의 오랜 신앙이었습니다.
특히 북두칠성은 우주의 무수한 별들 가운데 그 자리가 확고하고 동서남북의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영원불멸의 별로서 모든 생활의 지표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인간은 일곱 살이 되면 음양陰陽의 이치를 알게 되고 인격이 갖추어지며 영적靈的 두뇌의 감지 능력이 완성된다고 보았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따라서 음과 양의 합이 창조를 의미하고 북두칠성은 창조를 표상하는 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오면서 모든 것을 정복하면서도 해와 달, 별 등 하늘에서 빛나는 것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것이 불교에 접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