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사 ‘연지원’에서
이서연
시인
서서히 지구가 화가 난 듯 보인다. 여름이라지만 그 뜨거움이 연일 기록을 이룬다. 그런 여름이 깊어갈수록 초록빛 잎새가 숲을 이루어 푸른 물이 시야를 점령한다. 그 숲으로 들어갈수록 나무의 향기가 가슴을 촉촉하게 해 준다. 산사를 찾아가는 매력은 그 향기에 젖어보는데 있다. 그렇더라도 무더위로 깊은 잠을 이루기 어려운 계절이 여름이다. 그러나 잠시 숲에서 나무 그루터기나 나무를 기대어 앉아서라도 잠을 자 본 사람은 안다. 꿀맛 같은 잠이 무엇인지, 그리고 숲에서 잠이 들면 꿈 속 조차 푸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 꿈에선 바람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바람을 얹어 달인 차맛도 볼 수 있다는 것을. 낮잠을 자도 편안한 곳은 숲이다.
도시인들의 커다란 쉼터 중 하나가 서울의 명산 북한산이다. 수 십 번을 가도 수 십 번 다른 풍경을 주고, 나무 아래 바위 위 어느 곳에서 잠시 쉬더라도 지친 심신을 달래도록 충분한 기운을 뿜어 준다. 그리고 많은 사찰을 품고 있다. 그만큼 좋은 기운을 갖고 있는 곳이라서 많은 도시인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북한산에 많은 산사가 있지만 고려전기 제8대 현종이 승려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한 진관사는 맛있는 사찰이다.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사찰음식을 맛보기 위해 진관사를 방문했었고, 오바마 대통령의 전속 요리사를 비롯해 세계적인 요리사들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팀이 방문하여 맛을 본 사찰이다.
진관사는 사찰음식의 3요소로 ‘청정, 유연, 여법’을 꼽고 있다. 깨끗하게 먹기 좋게, 불가의 법도에 맞게 요리를 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진관사의 가장 중요한 전통인 ‘평등’을 담고 있다. 음식에서 ‘평등’의 의미는 신분이나 재력을 보고 차등을 둔 밥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진관사는 목종이 죽은 후 현종이 된 대랑원군이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목숨을 구해 준 진관스님의 은혜를 갚고자 세운 절이다. 그 뒤 진관사는 임금을 보살핀 은혜로운 곳이어서 여러 임금의 각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1090년(선종 7)에 왕이 행차하여 오백나한재를 베풀었고, 1099년(숙종 4)과 1110년(예종 5)에도 왕이 행차하여 참배하고 시주하였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1397년(태조 6) 태조가 이 절에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여러 번 육지와 수중의 고혼과 아귀를 위하여 법식法食을 공양하는 수륙재를 지냈고, 이 수륙재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승을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를 위한 수륙재를 준비하면서 진관사가 사찰음식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진관사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제작하여 3.1만세 운동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항일독립운동 승려 백초월白初月의 태극기와 독립신문류 등이 칠성각에서 발견되어 등록문화재 제458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에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는 제143호부터 149호까지 지정된 소삼존불상塑三尊佛像, 소십육나한상塑十六羅漢像,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십육나한도十六羅漢圖, 칠성도七星圖, 명호스님초, 산신도山神圖가 있고, 문화재자료로는 제10호 석불좌상, 제11호 독성상獨聖像, 제12호 독성도獨聖圖, 제33호 칠성각, 34호 독성전 등이 있다. 한 마디로 진관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을 살리는 도량, 독립정신이 깃든 도량으로서 사찰 자체가 우리나라 보물인 셈이다.
이승을 숨박꼭질하며 허기진 영혼들이여
허상을 붙들고 서방정토 가는 길을 잃은 영혼들이여
덕 높은 스승이 베푸시는 법문을 가슴으로 듣고
진관사 마음의 정원에서 흠향하시거든
한의 껍질에서 벗어나 해탈하소서
 -수륙재를 올리는 진관사에서-
진관사에서 음식공양을 받아 본 사람은 음식이 설법이요, 법공양이라는 것을 느낀다. 스님은 한 젓가락 음식으로도 설법을 담아내신다.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은 한 젓가락에 담긴 부처님의 진리를 자신의 몸으로 스며들게 한다. 진관사로 사찰음식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찰음식 자체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치유의 약이요, 감로법이기 때문이라 본다. 만약 사찰음식을 체험해 보지 못했다면 <연지원>이라는 찻집을 들어가 차 한 잔 하길 권한다. 겨울엔 대추차가 직접 달여 나오기 때문에 진국이지만 시원한 여름엔 팥빙수도 괜찮고, 냉매실차가 그만이다.
일주문 앞 커다란 바위에 ‘마음의 정원’이라 새겨진 것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의 정원’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면 진관사 도량의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뜨거운 여름을 녹색으로 진하게 품고 있는 진관사를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문구다. 이 정원은 종교를 넘어 많은 대중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불교 용어를 종교적인 색깔을 넣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음의 정원’을 ‘종교를 넘어’ 거닐어 보면서 속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게 하려는 스님들의 자비한 생각이 많은 젊은이들을 오게 하는 비결이란 생각이 든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의 풍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산책로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바람의 방향대로 자란 소나무들이 시원하게 펼쳐진 공간은 가슴을 짓누르던 아픔 한 조각이라도 떼어줄 자세다. 번뇌의 뿌리는 중생의 힘으로 풀 수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원을 왔다갔다 하다보면 바람에 씻겨가는 것이 세월만이 아니라 근심의 무게도 덜어지지 않겠나 싶다. 소나무 숲을 뒤로 하고 앉아계신 마애불 앞에서 잠시 합장을 하고 이 정원 안에 들어온 인연에 감사를 표했다.
피어있는 꽃길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테라스에서 책을 보며 차를 마시는 사람,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종무소 가기 전에 디귿자형 초가지붕 한옥이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가 쉬게 되는 찻집 ‘연지원蓮池院’이다. 연못은 없지만 작은 석곽에 수련이 피어 있다.
찻집 입구엔 ‘송풍자명松風煮茗’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솔바람으로 찻잎을 달인다’는 뜻이다. 글귀만 보아도 솔향이 느껴진다. 입구 오른쪽에 차를 주문하는 곳을 보니 쌍화탕, 대추차, 계피차 등은 직접 만들어 제공되는 것 같다. 가을에 다시 와서 계피차를 맛보리라 생각하며 빙수와 매실차를 주문했다. 여름에 한 번쯤 맛을 보고 넘어가야 할 빙수를 산사 찻집에서 주문한 것이다. 매실차는 여름에 보약과 다름없는 차다.
마당엔 능소화가 피어 있고, 그 밑에 도라지꽃이 아주 편안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파라솔 아래에서 차를 마실까 하다가 한옥 안으로 들어갔다. 보시, 지계, 정진 등과 같은 수행의 이름을 딴 방들이 있다. 한옥은 역시 여름에 모든 창문이 열려 있어도 아늑하고 편안함을 주는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여름풍경을 창에 새겨 둔 것처럼 창마다 다른 여름이 들어 있다. 풍경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으로도 산사카페를 찾아 온 의미는 충분하다. 테라스는 보현다실이라고 이름이 지어져 있다. 보현다실에서 바라다보는 건너편에는 석탑이 시간의 터널을 건너 온 듯 역사의 무게감을 보여 주고 있다.
솔향이 이끄는 길로 왔어요
마음의 정원에 이르러서야
잘 찾아온 길이구나 싶었어요
솔향이 달인 찻물에 마음을 담급니다
혀에 솔향이 닿으면 솔향에 길들여지고
솔향이 혀에 닿으면 솔즙이 되고
솔즙은 파란 핏물이 되어 수련을 키웁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처럼
지금
나를 깨우는 솔향이 그대인가요
 -솔바람으로 달인 차를 마시며-
여름 산사에서 가슴에 솔향 문신을 하고 왔다. 여름은 지나도 솔향은 지워지지 않겠지 싶다. 비록 요령없이 살고 있지만 백초월 스님이 사용하신 태극기에 세월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것처럼 이 숲을 사랑하는 마음은 문신되었으니 지워지지 않으리라 아니 지워지지 않도록 자주 자연을 찾으리라 당연한 결심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