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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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과 어울림을 가지는 불자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모든 것은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무언가에 치우쳐서 그것에 얽매이고 집착하며 살아가고들 있습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들은 본래 집착할 수 없는 일들인데, 그 집착으로 결국 돌아오는 것들은 불길 같은 고통과 괴로움뿐인 번뇌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나눕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어리석은 사람은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에 찌들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삼독심은 현실적으로 가장 큰 고통과 괴로움의 뿌리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생각은, 삶의 무게중심을 ‘내 인생’, ‘내 삶’으로 고정되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꾸미려하며 삽니다.


구룡사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1,500명이 넘는 원아들이 있습니다.
구룡사 유치원에도 100명, 길 건너편 어린이집에도 많은 유아들이 있습니다.
구룡사 앞마당 놀이터에는 원아들이 가족을 기다리는 동안, 어울려 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의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아도, ‘내가 나’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났다’는 생각 하나만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삶의 무게중심은 훨씬 더 가벼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번 생生이 처음은 아닙니다. 금생에 한 번만 태어나지 않은 요량을 가지면.” 반드시 이룰 수 있는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먼저 실천하고, 또 그 일을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물려주고 떠날 수 있는 삶, 그것이 수행자의 본분이자 불자들의 삶이길 바랍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모든 일에서 한 발씩 물러설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출가자의 본분을 잃지 않게 될 것이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일을 마치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년 전, 어느 스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은 언젠가는 내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세속에서는 이것을 정년퇴직이라고 하지만, 살아생전에 기꺼이 대물림해 주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소임자에게 그 일을 맡길 수 있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게 하게 되면, 살아생전에도 그 결실을 지켜보며, 도울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되는 것일테니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 되겠습니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낭패의 경우가 많습니다.
수십 년간 한 길을 걸어온 일을 마무리하며, 그 직책에서 물러나더라도 결국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 잘 이어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아생전에 스스로 그 자리를 정리하고,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여유를 갖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도 절에 와서 기도하는 시간만 정진하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초하룻날엔 평소보다 많은 불자들이 법회에 동참하지만, 오늘처럼 아침부터 비도 오고 날씨가 어수선해지면 법당에 자리가 많이 빕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내가 해보니까 좋더라.” 그 좋은 기도를 그저 나만 하다 갈 것이 아니라, 함께 동참하기를 권청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전도 선언을 하실 때, “자,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니, 조리 있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게 법을 설하자. 갔던 길로 되돌아오지 말고, 두 사람이 함께 떠나지도 말자. 모든 이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해서 길을 떠나자. 나 또한 우루벨라 병장촌에 가서 법을 설하리라.” 늘, 제자들에게 권청하셨습니다.


통도사에 1,400년간 봉안돼 온 부처님 금란가사와 자장율사의 친착 가사를 구룡사에서 가건물 법당을 마련하고 100일간 친견법회를 봉행했었습니다.
왜 그 법회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여러 차례 설명 드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보여주는 법회가 아니라, 지혜로운 방편이었습니다.
통도사에서도 친견하기 어려운 부처님 금란가사를 서울에서 친견할 수 있다는 소식에, 얼마나 많은 불자들이 구룡산 자락으로 발길을 옮겼는지 모릅니다.
구룡사가 있는 줄도 몰랐던 분들이, 그 인연 하나로 절을 찾게 된 것입니다.
백일 간 가사 친견법회를 통해서 간곡히 부탁드렸습니다.
“1만 부처님을 1만 명의 불자들이 한 부처님씩 원불願佛로 모시게 되면, 그 재원으로 만 불전을 짓고, 부처님 법을 널리 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발원은 불과 2년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2년 동안 하루 평균 15명의 불자들이 동참해 주신 셈입니다. 일산 여래사도 만불보전에 원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절은 이미 25년 전 다 지어졌고, 이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못 모셔도 괜찮습니다. 100년 후 불자라도 이 불사에 동참할 수 있도록 그 인연의 씨앗을 남겨두고 부처님 법을 전하겠습니다.


어제 새벽 네팔에서 돌아왔습니다. 이번 일정은 히말라야 협곡 넘어 티베트와 국경을 잇는 안나푸르나 고산 지역, 며칠 동안 자동차로 이동하며, 해발 4천 미터에서 5천 미터에 이르는 여러 사찰들을 방문하는 여정이었습니다.
한 사찰은 네팔 대지진으로 요사채가 무너져 어린 스님들이 생활할 공간이 없다는 말을 듣고, 요사채를 지어드린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얼굴은 본 적 없었지만, 그 사찰의 소임자 스님은 “한국의 어떤 스님이 건물을 지어주었다”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순간이었습니다. 그곳에는 20세 미만의 사미·사미니 스님들이 200명 넘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른 스님들께는 네팔 화폐 1,000루피(한화 약 1만 원), 어린 스님들께는 500루피(약 5천 원)를 공양금으로 드렸습니다. 이는 시주로 마련된 공양금 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남이 보시하거나 공양하는 것을 보고 시기하지 말라. 비록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였어도 그 기쁨을 함께 나눈다면, 공덕은 다르지 않느니라.”
이번에 다녀온 ‘무스탕’은 은둔의 땅이라 불리는 네팔 북부 지역입니다. 외국인에게 문이 열린 지 불과 30년 남짓 되었을 정도로, 이전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곳입니다. 걸어서 가려면 15일 이상 걸리는 깊은 협곡의 땅이었지만, 다행히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저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던 무스탕을 구룡사 소임본지 40년 만에 비로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 정진’은 무엇인가요? 바로 진지한 모습, 진정성 있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살아가는 것은 능사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어울려 살아야 하고, 서로를 살피며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세속의 저잣거리에서 방황하듯이, 그저 절에 다니는 외형만으로는 진정한 불자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믿고 따르는 불자라면 무엇보다도 세속의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모범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삶, 타인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환경에 노출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 자리에 함께한 불자들에게 전합니다.
수행 정진을 하는 목적은 고통과 괴로움을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에 드러난 고통과 괴로움을 이용해 마음을 성숙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번뇌와 망상에서 비롯된 근심과 걱정, 그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에 우리의 생활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름철의 매미는 일주일밖에 못 산다고 합니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고 그 삶이 짧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들여다보면 매미는 땅 속에서 7년을 살고, 유럽 일부 지역의 매미는 21년을 주기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21년간의 기다림 끝에 매미들은 단 1주일 머물고 사라지는데, 그 일시성을 통해 먹이사슬에서도 생존을 확보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매년 매미가 여름에 나오지만, 사람들은 땅속 7년은 생명으로 생각하지 않고, 세상 밖에서 일주일간 사는 것만 보면서 짧다고 말합니다. 매미의 일생을 통해서도 피상적인 판단을 되돌아보는 지혜를 배워가야 하겠습니다.
한 생각 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보되, 집착 없이 알아차릴 수 있는 그 자리, 거기에서 우리는 분별심 없이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배웁니다.
좋은 일은 10년, 100년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만, 고통이 있으면 15분도 여삼추如三秋라 느껴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시간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 현장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삼독심三毒心과 오욕락五欲樂으로 생겨나는 번뇌와 망상은 스스로 만들어낸 고통과 괴로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선근善根과 지혜智慧의 보리심菩提心을 자비慈悲의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삼아 잘 살아가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