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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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백중기도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합창단에서 인로왕보살님을 아름다운 음성공양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인로왕보살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는 신심을 지니고,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는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기며 보리심으로 삼라만상을 바라보면, 그 답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인과를 믿고 윤회의 도리를 부정하지 않으며,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면서 선근을 닦고 자비심을 실천한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인로왕보살입니다.
우리가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이요, 대희대사 대세지보살이며, 대원본존 지장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합창단에서 음성공양으로 “반야용선을 타고 가자” 하는데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자체가 반야용선般若龍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여러 불자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법문이 있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염염보리심念念菩提心이면 처처處處가 안락국安樂國이요,
염염삼독심念念三毒心이면 처처處處가 삼악도三惡道이니라. 나무~~~ 아미타불
보리심을 잃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가는 곳마다, 내 발이 닿는 곳마다 그곳이 바로 안락국이며 불국정토입니다.
그러나 생각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곧 탐·진·치 삼독심을 품고 살아간다면 어디를 간들 삼악도가 아닌 곳이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라는 거대한 반야용선을 타고 있습니다. 내가 머무는 곳마다 안락국이고 극락정토라 생각해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먼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요?
과학적으로 살펴보니 지구는 완전한 원이 아니라 럭비공처럼 생겼습니다. 가장 둘레가 큰 곳의 위도가 적도인데, 그 둘레가 약 4만km입니다. 적도에 사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하루에 4만km를 이동하며 움직이는 셈입니다.
시간적으로 계산해 보면 적도에서는 시속 약 1,666km로 자전하고, 1분이면 약 27.8km 움직입니다. 자동차가 시속 100km만 가고 있어도 굉장히 빠르다고 느끼는데, 사실은 지구 위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는 중력의 힘으로 아무 흔들림도 느끼지 못한 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북위 37~39도 부근에 있기 때문에 적도보다는 조금 느립니다.
그래도 시속 약 1,300~1,400km의 속도로 자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하루에 3만 2천km를 이동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하루에 8km, 10km 걸으면서 “오늘도 많이 걸었네.” 하며 흐뭇해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걷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지구라는 반야용선을 타고 하루에 수만 km를 여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극과 북극은 6개월은 겨울이고 6개월은 여름이라고 합니다. 백야와 극야가 계속되는 신비로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곳에도 지구는 팽이가 돌듯 쉼 없이 돌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숨만 쉬고 있어도 우주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매일 수만 km를 여행하는 나그네요 여행자인 셈입니다.
그 자전보다 더 놀라운 것은 공전입니다. 지구는 태양계 둘레를 1년에 한 바퀴 도는데, 과학적으로 지구는 태양 주위를 초속 30km로 돌고 있습니다. 자전은 1분에 28km인데, 공전은 1초에 30km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속도로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과학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살 만큼 살다 보니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먼 길을 여행했을까?’
앞으로는 지금처럼 마음껏 걷지 못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괜히 낙심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더 지혜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안경 쓰신 분들 많습니다. 안경 썼다고 웃는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잘 보기 위해 도움을 받는 것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지팡이를 짚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휠체어를 타는 것도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걸을 수 있을 때, 지팡이라도 짚고 걸으십시요. 다닐 수 있을 때, 다니세요. 지팡이가 어렵다면 휠체어라도 타세요. 보행기 밀고 다니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젊은 사람들은 따뜻하게 도와드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 나가세요. 누워 있으면서 한숨만 쉬지 마세요.
태양을 돌고 있는 공전의 궤도 속도는 거리가 9억4천만km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루에도 257만km씩 태양계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고, 일할 수 있을 때 힘껏 일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스님은 예전부터 아침에 일어날 때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힘차게 일어나 하루를 열심히 살고, 저녁에 누울 때는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이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살면 날마다 유언을 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그 세상에는 숨겨 놓은 것도 많고, 움켜쥔 것도 많아서 떠난 뒤에 남은 사람들은 계산하느라 힘들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줄 것이 있으면 미리 주세요. 어떤 분이 그럽니다. “스님도 좀 드릴까요?”
“그러면 좋지.” 하고 웃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끝까지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합니다. 과연 그런 삶이 바람직한 것일까요?
손바닥을 털듯 훌훌 내려놓고 여유롭게 사는 것이 훨씬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시속 10만 7천km의 속도로 태양계를 돌고 있습니다.
문득 불교에서 말하는 ‘10만 8천’이라는 숫자도 이런 우주의 질서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속도로 우주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디로 갈까, 저리로 갈까, 망설이지 말고 이 거대한 우주여행에서 보리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제 나이가 어머니 태중에 있었던 시간까지 합하면 일흔 다섯입니다.
지구가 1년에 9억 4천만km를 여행한다고 하니, 수백억km에 이르는 우주여행을 한 셈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여행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여행하는 나그네입니다. 그 여행 속에서도 주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배를 타고 하루 4만km를 자전하고, 1년에 9억 4천만km를 공전하며 우주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반야용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지로 반야용선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이미 우리는 그 반야 용선을 타고 있습니다.


보리심만 잃지 않는다면 지금 이곳이 곧 극락정토요 안락국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주를 바라보면 지구는 아주 작은 별에 불과합니다.
그 작은 별도 수많은 천체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거대한 인드라망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우주의 질서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거대한 반야용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치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종말론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종교에서는 말세를 말하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말세를 말하지 않습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이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이치를 이야기합니다. 욕계와 색계, 무색계,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그리고 태란습화의 모든 생명들이 인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우리 역시 부모님의 은혜 속에서 태어나 살아오는 동안 지구와 함께 수백억km를 우주여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중을 맞아 오랜 세월 저를 낳아 길러 주신 부모님과 선망 조상님들의 끝없는 은혜를 생각하며 우란분재일 백중 입재법회 발원문으로 염원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저희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우란분절 백중기도를 입재합니다.
자비하신 부처님.
우리가 숨 쉬는 이 순간에도 지구는 하루에 4만 km를 돌고 있으며 1년에 9억 4천만km라는 광활한 우주를 공전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우주적 여정 속에서 우리가 부모님과 자식으로 조상과 후손으로 만난 것은 무량겁의 세월 동안 쌓아온 지중한 인연의 결과입니다.
그 기나긴 윤회의 여정 속에 저희를 위해 가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저희가 지극 정성으로 올리는 이 공양과 기도의 공덕으로 이미 이생의 여정을 마치신 선망 부모님과 유주무주 애혼 고혼 영가님들이 모든 집착과 고통을 벗고 극락정토에 왕생하시기를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