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유명한 반야심경의 한 구절이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는 뜻이다. 색은 물질의 세계, 공은 진리의 세계인데, 이 둘이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 풀어야 경전의 가르침에 더 다가간다.
우리는 세상의 현상을 분석해서 이해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겉과 속, 시작과 끝, 많음과 적음, 빠름과 느림, 이렇게 나누어서 인식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맞물려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의 구분을 지을 수 없다. 밭에서도 이런 이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농사에서 여름은 생장하는 시기인가 하면 소멸의 시기이기도 하다. 하루 14시간이 넘는 일조량과 따뜻한 기후로 인해 농작물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잡초들도 제때를 만나 기승을 부린다. 생동감이 넘치는 시기이다. 그런가 하면 여름은 긴 장마와 폭염의 시기이기도 하다. 물에 잠겨 뿌리가 썩고, 잎이 노랗게 타들어 가기도 한다.
생장과 소멸은 둘이 아니다
생장은 소멸을 향하는데, 밭에서의 소멸은 결실을 맺는 과정이니 사라짐이 아니다. 소멸은 결실을 맺어 생명을 먹인다. 소멸은 다시 태어남과 생장을 이끌어내는 생명의 약동이다. 그러므로 생장과 소멸은 둘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다. 굳이 나눈다면 생명의 한 살이 안에 들어있는 서로를 이어주는 다른 현상일 따름이다.
올해의 여름은 가혹했다. 한 달 넘도록 폭염경보 속에 살았다. 체감온도는 40도에 가까웠다. 새벽 기온도 25도를 웃돌아 잠을 설치게 했다. 한 실험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5도쯤 되면 인간의 활동은 더뎌진다. 뇌의 인지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고, 호흡과 맥박이 가빠진다. 도무지 집중할 수 없다. 육체노동이건 사무노동이건 이쯤 되면 일해내기 어려워진다. 상황판단이 흐려진다. 안전사고에 노출된다. 이 실험은 41도에서 멈췄다. 더 진행했다가는 인체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 죽을 수도 있다. 우리 몸은 더우면 땀을 배출해 체온이 37도를 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땀을 흘리는 것은 몸 안의 수분을 배출해 체온을 낮춰주는 활동이다. 땀을 많이 흘리면 혈액의 흐름이 느려진다. 혈액 속 전해질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땀이 흐르지 않는다. 땀으로 배출할 수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위험 신호다.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는데 열사병, 일사병의 증상이다. 더위로 인해 목숨을 잃는 뉴스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기후변화는 이미 위기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열사, 일사의 상황에 던져졌다.
사람만이 아니다. 고추는 35도를 넘으면 활동을 멈춘다. 꽃을 피우지 못한다. 그럴만한 에너지가 없다. 단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물을 빨아들이고 증발시키는 일만 한다. 대개의 밭작물이 그렇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는 농사의 위기이며, 식량의 위기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날들을 살고 있는 것이다. 시설을 지어 기후의 영향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고, 각종 약제와 품종 개량으로 어느 정도는 이겨낼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기후위기를 불러오는 탄소문명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답이다. 그 답을 알고 있지만, 실행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배부름과 안락함은 탄소 에너지에 기반하고 있는데, 여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탈탄소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경전에서 비유하듯 꿀맛에 빠진 것이다. 동아줄을 갉아먹는 쥐와 아가리를 벌리고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를 보고 있으면서도 꿀의 달콤함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자연은 생성하고 무너뜨린다
자연의 현상을 인간의 시각에서 보자면, 생성하면서 동시에 허물어뜨리는 거대한 힘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와 무더위, 태풍으로 우리가 사는 땅과 바다와 대기는 크게 꿈틀거렸다. 이러한 자연의 몸짓에서 뿜어내는 힘은 거대함이라는 표현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거대함이다. 장마와 태풍은 농사에서 가장 큰 장애다. 이것들이 지나간 뒤의 밭은 참담할 따름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풍경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는 경구를 되뇌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만물을 생성하고 약동하게도 하지만, 때론 이토록 파괴적이다.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바닷물이 증발해서 형성된 대규모의 비구름이 기류를 타고 움직이는 기상현상이다. 많은 비를 쏟아낸다. 태풍은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이동하는데, 이 과정에서 강풍을 동반한다. 비와 바람은 홍수와 논밭의 침수를 가져오고, 건물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태풍은 바다 기온이 오르면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한다. 자연은 태풍을 통해 물과 대기의 온도를 안정시킨다. 그러나 큰 피해를 피할 수 없으니 가혹한 일이다.
고추는 말라 죽었다. 48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만 살아남았다. 큰비와 고온, 높은 습도는 한 달 넘도록 이어졌는데, 이 와중에 뿌리가 썩어들어갔다. 식물은 뿌리를 통해 양분을 빨아들이고, 잎은 증산작용과 광합성작용을 하는 대사과정을 통해 열매를 맺거나 뿌리를 키운다. 긴 장마에 물이 차면 뿌리가 썩는다. 흐리고 습하면 잎은 증산작용을 하지 못한다. 나의 고추는 끝내 장마를 견뎌내지 못했다. 잘 알다시피 고추는 고온건조한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이후 우리 땅에 적응하도록 품종 개량이 거듭되어 토종화되었어도 애초의 성질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다. 
쥐눈이콩은 장마를 용케 이겨냈으나 태풍의 비바람에 넘어지고 말았다. 태풍이 지난 후 무더위 속에서 콩대 세워주는 일을 해야 하니 고역이다. 다행히 콩은 일으켜 세우면 잘 자란다. 쓰러진 콩을 그대로 두면 넝쿨을 뻗는데, 넝쿨을 만드는 본래의 성질이 살아난다. 꽃피우는 데 써야 할 에너지를 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 쏟으니 수확량이 줄어든다. 
농사를 짓는 일은 생업을 위한 경제활동이기도 하지만, 자연, 지구, 우주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일이기도 하다. 농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머금었는지를 몸으로 알아챘다. 노을빛과 달무리를 살폈으며, 구름의 높이와 색을 보아 씨뿌리고 거두고 갈무리하는 날을 정했다. 농사의 팔할은 하늘의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농사의 팔할은 하늘이 한다
농사는 생명 활동이다. 농사에서의 생명은 씨앗과 지수화풍(밭, 눈비와 땅에 담긴 불, 태양의 빛과 온기, 바람)의 조화로운 작용이다. 이는 우주의 질서에 따라 이뤄진다. 농부는 이 신비로운 과정에 참여한다. 신비롭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생명을 품어 싹 틔워 열매맺는 일을 통해 먹여살리니 고귀하고 나아가 생명 활동을 이어가니 성스럽다는 의미다.    
더위에 지쳐 밭에 나가는 날이 줄어들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폭염의 날들이었다. 8월 말에 큰비를 한 차례 더 겪고서야 기온이 꺾이기 시작했다. 한낮은 여전히 뜨겁지만 아침저녁의 공기는 한결 순해졌다. 습도도 많이 떨어졌다. 이제 밭은 새 단장을 한다. 김장에 쓸 배추, 무, 쪽파, 갓을 심었다. 시금치와 상추 씨앗도 뿌렸다. 더위가 누그러지기를 기다리느라 작년에 비해 한 주 늦었다.
더위가 길어지면 벌레 피해가 늘어난다. 올해는 늦더위가 길다. 대개 9월 말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 그러면 기승을 부리던 벌레도 자취를 감춘다. 벌레들도 내년 살이를 준비하는 것이다. 농부들도 이 시기를 지나면 내년 농사를 계획한다. 내년의 여름은 올해 같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