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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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보살 월운스님의 자필 회고담

못다 갚을 은혜 : 월운당 도중사


박경희
도서출판 중도 디자인실장


『못다 갚을 은혜 월운당 도중사』
엮은이 신규탁
163*238
25,000원
도서출판 중도 펴냄



1929년부터 2014년까지
월운스님 자초연기自抄年紀
이 책은 <고려대장경>을 번역하여 <한글대장경>(총 318책)을 완간한 봉선사 월운당 해룡 대강백(1929~2023)의 자필 회고담이다.
스님의 칠칠재 회향식에 맞추어 책으로 출판되어 영전에 봉헌되었다. 이 회고담의 원고는 스님께서 출가하시던 1949년부터 쓰신 평생의 일기를 토대로,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며 80개의 항목으로 정리하여 연대순으로 회고한 것이다. 이 원고는 2010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2014년 2월에 완성한 것으로, 연세대 철학과 신규탁 교수에게 건네주며 사후 출간을 당부했다.
1929년 경기도 장단군, 지금의 휴전선 민통선 근처에 태어나신 월운 스님은, 18세까지의 어린 시절과, 1949년(21세) 출가해서 운허(1892~1980) 스님의 제자로 경전을 공부하던 시절과, 10여 년간 공부를 마치고 1957년 운허 스님의 대를 물려 통도사 강사로 학인들을 교육하던 시절, 1964년 동국역경원이 설립되자 사부 운허 스님을 도와 최연소 역경사로 <한글대장경> 번역 작업에 착수하여, 2001년 완간하기까지 자신과 주변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엮어가고 있다.
이러는 사이, 국가적으로는 8.15해방과 정부수립, 6.25전쟁, 농지개혁, 5.16군사운동 등이, 불교 교단 내부로는 비구-대처의 정화운동, 10.27법란, 93년 개혁종단 등의 큰 사안들이 발생했다. 본 회고록에는 그런 당시의 상황을 겪으면서 긴 세월 적어둔 월운 스님의 오래된 일기를 토대로 2010년대 당시의 시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또 이 회고록에는 6.26전쟁 통에 전소된 남양주 봉선사의 복원에 얽힌 무수한 사연들이 적혀있다. 한국불교의 근대교육과 관련하여 홍월초 스님과, 월초의 손자 제자 운허(이학수)와 태허(김성숙)의 독립운동과 이순재 스님의 항일재판기록 등에 관한 생생한 기록은 당시 봉선사 스님들의 시대정신을 읽기에 충분하다.
재가불자를 위한 포교 전략으로 세운 ‘삼화행도’ 이론을 비롯하여, 출가불자들의 전문 교육을 위한 강원(홍법강원, 능엄학림)의 운영과 배출 제자들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불경서당’을 개원하여 뒷날 대학교수가 된 이들을 길러내던 이야기, ‘통신강원’이라는 이름으로 카세트 녹음테이프 약 4,000개를 녹음하던 이야기, 등등 교육에 관한 기록은 참으로 장엄하다.
1957년(29세) 때부터 임종하시기(2023년, 95세) 1년 전까지 60여 년간 집필하신 총 98권에 달하는 저술의 원고 쓰던 당시의 상황과 심정 등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말년에는 조선시대 전통 강원에서 전래되던 필사본 초서 사기私記를 정리하면서, 그 때에 동참했던 제자들에게 칭찬 한마디 못한 게 미안하다는 고백은 수학 제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이 회고록을 월운 스님 자신은 “김월운의 회고담 자초연기自抄年紀”라 했는데, 이 책은 신규탁 교수가 출판 과정에서 󰡔월운당月雲堂 도중사途中事 못다 갚을 은혜󰡕로 책 제목을 붙였다. 신규탁교수는 대학시절인 1970년대부터 월운 스님 앞에 경전 펼친 인연이 있으며 이후 동경대학에서 화엄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94년부터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불교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신규탁 교수는 2018년 월운 스님의 90회 생신을 기념하여 백수를 누리시라고 망백기념望百祈念을 담아, 스님 생전의 저술 목록을 비롯하여 그 서문 및, 서간, 휘호, 기문, 논문, 유촉문 등을 모아 󰡔월운당月雲堂 가리사家裏事 화엄종주 월운당 해룡 강백 문집󰡕(조계종출판사, 2019, A4 총848쪽)을 헌정한 바 있다.
‘월운당月雲堂’은 운허 스님이 지어준 당호이다. ‘가리사家裏事’는 수행자 내면의 살림살이이고, ‘도중사途中事’는 수행자로 살아오는 과정에서 겪은 사건이라는 뜻이다. 이로서 엮은이 신규탁 교수는, 훗날 학자들이 월운 스님을 연구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학계와 출판계에 제공한 셈이다. 저간의 사연들은 󰡔가리사󰡕의 「서문」과 󰡔도중사󰡕의 「발문」에 자세하다. 그리고 월운 스님께서 소장하시던 해묵은 흑백 사진과 1970년 이후의 사진을 회고담 관련 기사에 안배하여, 그 시대와 당시의 인물을 공개했다.


책속으로


「자초연기自抄年紀」라 함은 글자 그대로 나의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며 기억나는 일들을 연도순에 따라 적은 일종의 회고록回顧錄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처리하며 살았는가를 되돌아보기 위함이지 결코 다른 뜻은 없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별로 긴요치 않은 일이나 남 보기에 좀 수치스러운 면도 가리지 않고, 있었던 일 그대로 적었고, 남의 일도 보고 느낀 그대로 그 당시의 소감을 적었을 뿐 다른 감정을 개입시키지는 않았다.
서술 방법은 나의 오늘까지의 생애生涯를 연도순에 따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80개항으로 나누어 적절한 제목을 붙여 서술함으로써 내용 파악에도 도움이 되고, 열람에도 도움이 되기를 도모했다.
나는 이 기록을 정리하면서 나의 생애는 기구하고도 구차했던 것이 자못 부끄럽고, 신세만 지고 하나도 갚지 못한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으나 그 ‘운명의 주재主宰는 늘 나였구나’ 하는 사실 하나를 터득한 것으로 금생의 소득으로 삼으련다.
-8쪽


그러던 어느 날, “통도사에 공부할 여건이 생겼으니, 오라”는 기별이 왔다. 서둘러 짐을 싸 가지고 와 보니, 홍법弘法 스님이 말하기를 “강주 스님(講主, 엮은이 주 운허)께서 지난 초겨울 결제結制 직전에 오셨는데, 그때는 아직 처소도 마땅치 않고 준비도 부족해서 연락을 안 했는데, 이제 해제도 되었고 해서 연락을 했노라”는 것이었다. 이어 말하기를 “때마침 부전 자리가 하나 나서 스님을 추천했으니, 서둘러 산철 방부房付를 들이고 함께 공부를 시작하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이튿날인 음력 정월 20일(양력 1954. 2. 23.) 보광전普光殿 큰방에 방부를 들이고, 이어 별당別堂 구하九河 노사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러고는 보광전 지대방에 머물면서 동년배인 홍법弘法 스님, 겸곡謙谷 스님의 상좌인 우리 또래 영관榮寬 스님 등 셋이 『대승기신론필삭기大乘起信論筆削記』를 보기 시작했다. 그간 속서俗書를 좀 본 실력으로 혼자 보던 불서佛書를, 이제 선생님 앞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시초가 되었다.
-84쪽


 사부님께서는 강주講主로서 패엽실貝葉室에 드셨고, 나는 중강仲講으로서 천자각天子閣 뒤의 딴방 하나를 쓰라고 해서 들었는데, 대교반은 나와 지관智冠, 홍법弘法 등 셋이 「십지十地」를 차렸고, 사교반은 정묵定黙, 철인哲印, 도안道眼 등 10여 인인데 내가 맡아서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해인사에서 프린트판으로 간행한 『능엄경환해산보기楞嚴經幻解刪補記』를 참고하면서 『능엄경계환해』 수업을 진행하여, 그 이듬해인 서기 1958년도 하안거 해제를 기하여 종강했다.
같은 해(1957년) 하안거 해제 무렵에, 『금강경오가해』를 마친 학인들이 ‘원각회’를 차렸는데, 역시 도환道還의 손을 빌어 날마다 당일분의 사기私記를 필경筆耕하여 프린트해서 강의의 진도에 따라 의용依用케 해 주니, 모두가 편케 그리고 열심히 보았다. 그런데, 그때 나는 ‘이 한문 경전만으로는 학인들이 자기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1주일에 하루쯤 할애해서 이론불교理論佛敎를 습득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6~117쪽


사람의 일과 세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학설이 있는데, 불교는 연기설緣起說을 표방한다. 모든 결과에는 인과 연이 있다는 것이다. 경험으로 논증할 방법이 알려지지 않은 궁극의 존재나 창조자를 운운하면 ‘삿된 원인’을 들었다 하여 사인설邪因說로 물리친다. 한편 세상사 모두가 저절로 또는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는 자연설自然說도 멀리한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결과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을 꼽으라면 그것은 월운 스님께서 생전에 ‘회고담懷古談’ 원고를 손수 써두신 일이다. 스님께서는 이 ‘회고담’을 때로는 ‘자초연기自抄年紀’로 표기하시는데, ‘연기’란 연도순 기록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님께서 젊은 시절부터 써오신 묵은 일기日記를 뜻한다. 그 일기를 대상으로 손수 선별 정리하는 작업을 ‘자초’라 하셨다. 무슨 기준으로 또 왜 그런 작업을 하셨는지는 독자들도 직접 이 책 앞에 실린 「자서自序」에서 읽으실 수 있다.
-3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