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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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生死) 해결하려면 정진 열심히 해야”

방장 원명지종 대종사, 60년 대중 외호 한길
주지 아산정우 스님과 영축총림 안정 이끌어


유철주
조계종 기획실 홍보팀 주임


통도사는 양산 영축산(靈鷲山)에 있다. 1000m가 넘는 높이에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험한 산세에 주눅이 들지만, 절 초입에서부터 굽이굽이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드넓은 대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논과 밭 사이에 자리한 암자들의 모습이 아담하면서도 포근하고 넉넉하다. 스님들은 여기서 농사를 지으며 영축산에서 생활하는 대중들의 양식을 마련한다.
원래 영축산이라는 이름은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인도 마가다국(Magadha) 왕사성 동쪽에 있던 산의 이름이다. 이 산에서 부처님이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여 많은 중생을 구제했다. 신라시대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이곳에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고 절 이름을 통도사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산의 모습이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는 의미에서였다.
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영축산에 자리한 통도사는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로 불린다. 한국 불교의 으뜸이자 가장 큰 절이라는 것이다. 20여 개의 산내암자와 수많은 선지식(善知識)만으로도 통도사는 이 수식어를 사용할 자격이 있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통도사가 최근 들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바로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원명지종(圓明智宗) 대종사와 주지 정우스님이 부임해 다양한 불사(佛事)와 포교로 불자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를 찾은 8월 24일에도 원명스님과 정우스님은 사중의 대소사를 챙기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특히 경인년 하안거 해제를 준비하느라 통도사 전체 대중이 눈코 뜰 새 없다. 
통도사 방장실에서 만난 원명스님은 “정우스님이 일을 잘 챙겨 통도사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며 주지스님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우스님은 “방장스님이 대중들을 보듬어주시고 솔선수범하여 정진하시니 절에 활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원명스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원명스님은 1960년대 초반 군에 입대 했을 때와 1973년 영월 법흥사에서 100일 기도할 때를 제외하곤 60년간 통도사에만 머물러 온 영축산의 역사 그 자체다. 스님은 “영축산 만큼 좋은 수행처가 세상 어디에 있느냐”며 “오늘 아침 통도사의 우거진 녹음을 보니 이렇게 좋은 도량은 없다는 생각이 다시 들더라”고 했다.
깨달음을 얻은 많은 선사들은 오랫동안 한 곳에 주석하며 많은 후학들을 가르쳤다. 조주스님은 40년간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에 머물며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선의 황금기를 열었던 마조 선사도 개원사(開元寺)에서 30년을 머물며 수많은 선지식을 길러냈다. 원명스님의 머묾과 조주, 마조스님의 그것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 장소이지만 그 안에서 해제와 결제를 거듭했고, 매 순간 머무름과 떠남을 반복했으리라.
원명스님은 방장실을 찾은 기자들에게 “할 이야기가 뭐 있느냐”며 말문을 닫았다. 그렇지만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거듭 한 말씀을 여쭈자 스님은 “수좌 스님들도 이 한 몸을 받아 세상에 왔다. 그리고 이렇게 왔다가 또 간다. 어디를 가느냐? 생(生)과 사(死)의 문제를 해결하려 정진하는 것이지, 특별한 것 없다”고 했다. 짧지만 강렬한 말씀이다.
원명 스님은 “그렇게 알면 된다”며 옆에 있던 다포(茶布)를 들어 보인다. 다포에는 ‘한산습득 가가소 수능식(寒山拾得 呵呵笑 誰能識)’이라고 쓰여 있다. ‘한산과 습득이라는 두 스님이 껄껄 웃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라는 뜻이다. 한 자 한 자 읽어주며 “산철에는 이것을 화두 삼아 공부해 보라”며 자리를 정리했다.
원명스님의 말씀을 조금 더 채우듯 통도사 주지 정우스님이 말씀을 보탠다.
“참선이 좋긴 하지만 참선만 고집하면 안 되고, 염불이 좋긴 하지만 염불만 고집하면 안 됩니다. 무언가에 치우치거나 얽매이면 참된 수행이 아닙니다. 집착은 고통을 수반하니까요. 주지 소임도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안거 철에 납자들이 공부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성심껏 뒷바라지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근본을 잃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을 꿋꿋이 살아내는 것, 그게 수행입니다.”
짧은 인사가 끝나고 자리를 통도사 설법전으로 옮겼다. 원명스님의 법문은 설법전에서 열린 하안거 해제법회에서 계속됐다. 원명스님은 “범부와 성인을 뛰어넘는 근본 도리를 밝혀 보려고 모두들 한 철을 두문불출하고 애를 썼다”며 “혼신을 다해 깊숙이 살펴서 넓고 큰 바다가 되어야지 얕은 물처럼 소리만 요란해서는 안된다”고 설했다.
스님은 이어 “일견하납임풍진(一扁霞衲任風塵)이여 정정공부불시진(定靜工夫不是眞)이라, 호혈마궁수처락(虎穴魔宮隨處樂)하니 소요천지작한인(逍遙天地作閑人)이로다”란 게송을 읊었다. ‘어깨에 누더기 걸치고 풍진에 내 맡김이여. 고요한 곳의 공부는 진실하다 할 수 없네. 호혈과 마궁에서도 마음대로 즐길 수 있어야, 천지를 소요하는 한가로운 이라 하리라’란 의미다.
원명스님은 “해제는 자신의 막힌 곳을 선지식에게 묻고 골똘히 해서 명철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며 “한 철 동안 애쓴 것이 헛되지 않게 운수납자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와서 다시 한바탕 애를 써 보기 바라며, 그래서 진정으로 무수한(無事漢)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우스님도 인사말을 통해 “종무소와 외호대중은 정진하는 대중스님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으나 부족함이 있었을 것”이라며 “용맹정진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우스님은 이어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안거를 성만하신 모든 대중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열심히 공부한 만큼 해제 이후 좋은 성과를 이루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영축총림에서는 이번 하안거 동안 보광선원 47명, 극락암 호국선원 28명, 서운암 무위선원 21명, 조계암 대적선원 7명, 석남사 정수선원 49명, 내원사 동국제일선원 39명과 재가자 106명 등 총 297명의 사부대중이 함께 정진했다.
한편, 전국선원수좌회가 전국 선원의 정진대중 현황을 정리한 ‘경인년 하안거 선사방함록’에 의하면 총림 5곳, 비구선원 61곳, 비구니선원 38곳 등 전국 104개 선원에서 비구 1189명, 비구니 864명, 총림 204명 등 총 2257명의 대중이 안거를 성만했다. 1/7에 가까운 대중이 영축총림에서 정진한 셈이다.
원명스님은 방장 취임 초기부터 주지 정우스님과 함께 줄곧 화합을 강조해왔다. 통도사 일주문 양쪽 돌기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방포원정상요청규 이성동거필수화목(方袍圓頂常要淸規 異性同居必須和睦)’. ‘삭발염의한 수행자들은 항상 청규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대중이 모여 사는 데는 반드시 화합하고 우애롭게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안거 해제일에 찾은 통도사에서 만난 선지식(善知識)들은 그렇게 대중들을 제접하고 외호하며 ‘종가’의 위용을 되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