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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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철에 불현 듯

우봉규 / 작가


또 다시 입시철입니다. 많은 학부모들의 가슴이 타들어가는 시기지요. 전국 사찰에도 매년 그러했듯 수험생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입시는 사실 학생들의 전쟁이 아니라 학부모들의 전쟁으로 변질된 지 오래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그동안, 우리 대학이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들의 모든 인생행로를 결정해버렸으니까요. 지금도 어느 사찰이나 교회에서는 자식들의 명문대 합격을 바라는 부모들의 기도가 넘쳐나고 있을 겁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훈수 두는 사람들이 목청을 높여 서로 싸우는 형국이지요.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아주 바람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사회진출 기회가 보장되는 전문대에 취직이 어려운 웬만한 4년제 대학보다 학생들이 많이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요. 사실 우리나라 교육열은 말이 좋아 교육열이지, 잘 먹고 잘 살자는 천박한 배금주의의 산물일 뿐입니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환경도 되지 않는 학생들이 너도 나도 4년제 대학으로 대학으로만 줄달음질치는 나라는 아마 지구상에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소위 명문이라고 일컫는 몇몇 대학으로 하여 이토록 온 국민이 고통을 받는 나라 또한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그 학교를 나온 사람들만이 지도층을 구성하며 대대로 영화를 누리는 독과점의 나라도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겁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우리 정치권이나, 재계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부도덕의 원인이 사실은 이러한 독과점의 행태에서 비롯되었다면  과장된 이야기일까요?
그런데 이제 서서히 그런 맹목적인 현상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오래 전부터 예고돼 왔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옳은 지향점을 찾아 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변화가 오늘의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온 것이지요. 그저 고등학교의 성적만으로 소위 명문대학에 입학하면 일생을 보장받는 사회구조는 당연히 타파되어야 하지요.
그러나 아직 마음을 놓기는 이릅니다. 간판이라는 철옹성을 만든 사람들이 아직도 이 같은 사회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 공동체의 핵심적인 고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직 어깨에 힘을 주고 버티고 있는 곳은 우습게도 그런 비속한 양태를 만든 대학이고, 관료조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우리의 공동체를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대학은 그야말로 학문의 전당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 대학은 이미 엄청난 돈을 받고, 간판을 파는 사설학원으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예전 어느 정신 나간 소설가 한 사람이 영어를 공용화하자고 주장한 데서 보듯이 우리 대학의 도서관은 오로지 영어공부만 하는 독서실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디 대학뿐입니까?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4-50대의 장년층까지 휩쓸린 영어 광풍은 가히 뜨겁기 그지없습니다. 세태가 이런 지경이고 보면 학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연구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한국 문학과나 한국 사학과 학생들도 자고 나면 영어공부에 매달려야만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대학원 시험에서 영어가 당락을 결정하기 때문이랍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모든 비합리와 관료적인 발상들이 차차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아닌 젊은이들에 의해서입니다. 명문대의 우수학생 독과점 현상이 깨지고 있는 것이지요. 젊은 신세대들의 가치관이 명분보다 실리, 간판보다 취업 전망을 택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입시전문기관에 따르면 최근 수험생 5,53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 중 4년제 대학과 전문대에 함께 지원한 3,438명중 35.8%인 1,232명이 동시 합격 시 전문대에 진학하겠다고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전문대를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학생 및 학부모들의 실리적 가치관으로 그간 대학 서열화 현상이 눈에 띄게 파괴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4년제 대학에서 공부할 것이 있고, 2년제 전문대학에서 공부할 것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수평적 가치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멀지 않은 미래엔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4년제 대학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없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오로지 간판 하나만 들고 평생을 호위호식 하던 시대는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은 졸업생들의 정당한 학문적 성과나 사회 기여도에 따라 평가되어져야 합니다.  바람직스럽게도 이 같은 간판 파괴 현상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미 예전의 명문대학 출신들의 임원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검사나 판사보다 성실하게 일하는 기능공이 더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장, 차관 몇 명을 배출했다고 목에 힘을 주는 이른바 명문교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념을 가진 사람들도 없어져야겠지요.
그러려면 우선 우리 수험생들의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불안에 떨고 있는 부모들을 안심시킬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입시의 목표가 되었으면 합니다.
인간의 능력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관심과 열정이 다를 뿐이지요. 일등을 하든 꼴찌를 하든 지금은 나름으로 상급학교에서 공부를 할 곳도 많고, 그것도 아니라면 당장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일찍 뛰어드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당당함, 그리고 젊은 패기, 그것은 오직 청춘들만의 특권이 아닐까요? 간판을 들고 행세하는 사람들이 천연기념물로 기록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그 날을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