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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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길러 가꾸어야 할 마음: 기뻐하는 마음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대승 경전이 그렇듯이 󰡔범망경󰡕에도 불교의 역사에 등장했던 여러 사상을 모아서 유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간단하게 불교의 역사를 말하면, 초기 불교, 부파불교, 그리고 그다음에 일어난 대승불교가 있다. 대승 경전의 일종인 󰡔범망경󰡕에도 이런 지난 세월 축적된 불교의 가르침이 녹아들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인도나 중앙아시아의 철학사상과 문학 등을 반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반야경󰡕과 󰡔화엄경󰡕 사상을 특히 반영하고 있다. 이달에 소개하는 ‘기뻐하는 마음’도 그렇다.
대승 경전이 만들어진 역사를 볼 때, 󰡔반야경󰡕이 먼저 등장한다. 반야 관계의 경전이 차츰 모이고 쌓여 최종적으로 완성된 600권으로 만들어진 게 󰡔대품반야경󰡕이다. 󰡔화엄경󰡕도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총 80권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초기에는 「십지품」에 해당하는 내용이 먼저 만들어진다. 거기에 보태지고 보태져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이렇게 대승의 경전을 만드는 이들은, 새로운 경전을 만드는 목적이 많이 있다. 그 시대에 필요한 삶의 덕목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것이 늘 관심의 핵심이었다.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님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부처님은 항하 강가에 가서 목욕하거나 기도해서 인생이 달라진다는 고대 인도인들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


2.
오늘 소개하는 ‘기뻐하는 마음’도 생활의 경험 속에서 매사에 기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일상에서 기뻐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인생을 좀 살아 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범망경󰡕에서 말하는 ‘기뻐하는 마음’은 결이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처님께서 살아내신 삶을 기뻐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삶이 거룩함을 찬양하는 사람이다. 드러내놓고 남에게 또는 나에게 자랑하는 게 아니라, ‘티 없음’이 중요하다. 이런 티 없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발상은 󰡔반야경󰡕 속에 등장하는 일관된 철학이다. 많이 알려진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범망경󰡕의 ‘기뻐하는 마음’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게 기쁘고, 그분의 중생 구제하시는 모습이 기쁘다.
대승의 추구하는 불자들이 <길러가야 할 마음> 즉 장양심長養心으로 10종류를 들고 있는데, 첫째가 사랑하는 마음, 둘째가 슬퍼하는 마음, 셋째가 기뻐하는 마음, 넷째가 편안히 하는 마음, 다섯째가 베푸는 마음, 여섯째가 고움 말하는 마음, 일곱째가 이롭게 하는 마음, 여덟째가 더불어 하는 마음, 아홉째가 참선하는 마음, 열째가 슬기로운 마음이다. 우리가 길러야 마음으로 많이 있지만, 그중 중요하고 간절한 것을 󰡔범망경󰡕에서는 이렇게 꼽고 있다.


3.
󰡔범망경󰡕 원문은 원체 축약이 심해서 그 뜻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주석서를 활용하여 읽으면 이렇다. 남이 잘된 일을 기뻐하되 기뻐한다는 티를 내지 말고 기뻐하라는 것이다. 기뻐함의 대상은 남의 잘됨이다. 세상에서 잘된 일 중에서 가장 잘된 일은 무엇일까? 독자 여러분들도 잠깐이나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아무리 불자라도 쉽게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이 세상에 오셔서 중생을 구제하고 마지막에는 불성의 영원함을 보여 주신 일이다.
󰡔보현행원품󰡕에서는 이를 ‘수희공덕隨喜功德’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들의 일상에서 만나는 남들의 기쁨을 공감하여 나도 따라 기뻐해 주는 것도 포함되기는 한다. 그런데 근본적인 것은 부처님의 출생과 성불과 열반이다. 죽어서 사라짐이 아니라, 육신肉身은 인연 따라 생성소멸하지만, 법신法身은 영원하다는 소식이다. 부처님께서 깨침을 얻으시는 과정이며 깨침의 순간을 우리 불자들은 모두 따라 기뻐해야 한다. 중생들을 구제하느라 다양한 방편을 펼치신 무수한 가르침을 따라 기뻐해야 한다. 따라 기뻐하는 속에서, 그럼 나도 그렇게 따라 해보아야겠다는 마음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일생을 잘 배워두어야 한다.
부처님의 일생을 펼쳐놓은 것이 불경이다. 불자로서 부처님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당연히 불경의 내용을 숙지하고 실천해야 한다. 잘 숙지하여 날로 실천하고 때마다 기뻐하는 속에서 그 습관이 몸과 마음에 배이게 한다. 몸에 씨앗이 맺히게 한다. 진리를 틔우는 씨앗 말이다. 이를 󰡔범망경󰡕에서는 ‘도지道智’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도지道智’가 생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음에 맺히고 ‘깡지’져야 한다. ‘깡지’는 사투리인 데 무나 고구마나 바나나 등에 박힌 ‘심지’를 말한다. 부처님의 깨침과 일생을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이 보여 주신 자기완성과 이타적인 삶을 기뻐하며, 그리하여 나 자신도 그렇게 살겠다는 마음을 먹어, 그 먹은 마음이 ‘깡지’가 져야 한다. 그게 바로 󰡔범망경󰡕에서 말하는 ‘도지道智’이다.


4.
‘도지道智’를 때로는 ‘도종지道種智’라고도 한다. 이때의 종種은 종자를 말한다. 씨앗이다. 우리 마음속에 이 씨앗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다양한 중생들의 삶으로 들어가 그 싹을 틔워, 부처님 그러셨듯이 또 불교의 역사에 훌륭한 스님들이 그러셨듯이 한편으로 자신의 완성을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위에서 필자는 󰡔범망경󰡕 속에는 지난 역사 속에 축적된 불교 경전의 다양한 사상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반야경󰡕이다. 󰡔반야경󰡕의 핵심 사상은 공성空性을 체험하고,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이타적 즉, 6바라밀을 실천하라는 주문이다. 󰡔범망경󰡕의 이 부분에서도 이런 사상이 그대로 영향을 준다. 그것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중생에게 공관空觀을 일으켜 도에 들어가게 하여, 악한 사람을 버리고 선지식을 만나게 하여, 나에게 좋은 길을 보여 주게 하며, 중생들을 불법의 집에 들어가게 한다. 불법 속에 항상 기쁨을 일으키게 하여 법의 지위에 들어가게 하며, 다시 여러 중생을 바른 믿음에 들어가게 하며, 삿된 사상을 버리고 6도 윤회의 괴로움을 등지게 한다.


5.
공관空觀이란, 󰡔반야심경󰡕에 잘 나타나 있다. 모든 사안이 조건과 관계 속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영원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아는 일이다. 이런 생각이 사무쳐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선지식이다. 수행자는 이런 선지식을 만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선지식이 나에게 좋은 길을 보여 준다. 그런 선지식은 우리를 불법의 집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해서 그 집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 속에서 우리는 항상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래야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재래 인도에서처럼 강물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제자 지내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인용문에 “악한 사람을 버리고 선지식을 만나게 하여”라는 부분은 잘 읽어야 한다. 선지식 만남을 강조하는 문장이다. 악한 사람 만나지 말라는 데에 방점이 있는 문장이 아니다. 제대로 된 선지식을 만나라는 말이다. 제대로 된 선지식이란, 공관空觀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남들에게 정확하게 말하고, 또 실천하는 수행자를 말한다. 그런 수행자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표현이다.
악한 사람도 만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만나서 부처님 말씀을 들려주어 그들도 불교의 좋은 가르침을 받아 함께 행복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도지道智’ 즉, ‘도종지道種智’가 몸과 마음에 그 씨앗이 ‘깡지’ 박혀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악한 사람을 만나면 그들에게 물들어버리고 만다.
우리 모두 마음에 불교의 지혜를 ‘깡지’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꿈속에서도 부처님 말씀이 떠오르고, 인생을 잘 살다가 죽음의 순간에도 부처님의 말씀이 눈앞에 나타나, 그 말씀 인도하는 대로 생을 마쳐야 한다. 죽음의 순간에 힘들고 무섭더라도,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살아온 습관의 힘으로 한 발 내디딜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 불경 읽고, 외우고, 그리하여 마음에 ‘깡지’져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도록 꾸준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의 일생을 본받아 그분의 삶을 따라 기뻐하며 실천하는 사람이 불자이다.